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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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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벌써 열세 번째 기일이 돌아온다.


BY J... 2004-10-08

그냥 보내기엔 너무도 맑고 푸르른 가을날이다.

멋스럽게 물들을 단풍을 기다리는 사람들.

티 하나 없는 하늘을 보며 논밭의 남은 일거리를 재는 사람들.

같은 하늘아래서 서로 다른 일들로 가을은 분주하기만 하다.

 

오래전에 시어님을 오늘 새삼 떠올려본다.

돌이켜보면,

한없이 여리시면서, 강인하시고, 뚝심 있는 시어머니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겐 무서운 시어머니셨다.

신혼 3년쯤까지는............

 

사투리가 어렵다고 해도 그렇게 어려울 줄이야.

“야야, 쪽 좀 가와레이.”

“예. 뭘 말인가요.”

“쪽 말다 쪽.

아니,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말. 쪽을 가져오라니 그것도 부엌에서. 

“어머님. 뭘 말씀하시............는...건지....요.

“야야, 니는 쪽도 모리나 말다. 바보 아이가 바보. 쪽도 모리고로. 

 

남편이 피시 웃으며 국자란다 국자. 

국자를 국자라 부르지 않고 쪽이라 불렀으니. 바보 소리 들을 수밖에.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유난히 막걸리를 좋아하신 어머님.

농촌 일이란 게 쉬운 일은 없다. 

더군다나 아버님은 몸이 많이 편찮으신 터라 어머님의 몫이 배로 많다.

어머님은 늘 막걸리를 마셔야 힘이 난다고 하셨다.

 

우린 서울에 살면서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시댁을 간다. 

 

어머님은 부엌 선반에 막걸리를 두고 한두잔씩 드신다.

식사 전에 막걸리를 드시는 어머님께, 건강 챙겨 드린답시고. 

행여 속이 편치 않으실 까봐.

 

“어머님, 밥을 잡수고 드세요”란 말이 입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됐다마, 니가 술 사주나” 

 

생각지도 않았던 어머님의 느닷없는 강한 어조의 대답에

순간 너무 놀라고, 무서웠다.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목이 메여왔다. 더 뭐라고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어머님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어머님이 출타중일 때 남편과 둘이 장에 갔다가 왔을 때도 

여지없이 된소리를 들어야 했다. 

 

남편이 

여름날 밤에 저수지로 낚시 따라가자고 했다가 둘 다 야단맞고, 

그날 밤 내내 억수 같은 비가 내리고 말았다.

난 속으로 “에이 차라리 잘 됐다”

 

...어쩌면 저렇게 말씀을 하실까.

그냥 부드럽게 말씀하셔도 알아듣고 안 갈텐데.

같이 가자는 남편보다 옆에 있는 내가 더 민망스러웠다.

 

첫 아이 때 일이다.

 

아기 귀저기는 물론 천 귀저기를 썼다.

그땐 집에 차가 없으니 고속 버스나 기차를 이용했었기에

먼 거리를 가야 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종이 귀저귀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 역시나 차 안에서만 사용했다.

그땐,

지금처럼 종이귀저기를 흔하게 사용하지 않을 때 였다.  

물론 가방은 아이 귀저기로 꽉꽉 채워진다.

.........

시아버지께서

"전번에 갈때 귀저기를 놓고 갔다고 니 엄마가 빨아 놓더라.

물어봐라"

"예, 저 귀저기 한개도 안 빠뜨렸던데요"

 

듣고 계시던 시어머님 말씀 하시기를.

 

"버렸다. 귀저기에 오줌만 싼것 같아 아까버서 빨아 봤더니

속에서 뭔 솜이 삐져 나오고 마, 정신 사납고 몬 쓰겠드라. 말려서 태워다.

 

요센 시상이,

우째 귀저귀를 다 사서 쓰고. 아한테 젖을 안주고 우유를 묵이고.

담엔 아한테 우유 묵인 며느리는 내사 새르팍도(대문) 몬 들어오게 할끼다 마"

 

첫아이 5개월 모유 먹인 다음 우유를 먹이기 시작 했다.

 

"엄마가 아한테 젖을 묵이야제.
 요새 아들은 소젖을 묵인께 말을 안듣는기라. 소 맨키로"

 

 

저요, 그냥 웃고 말지요.

친정 엄마였으면 토를 달아도 탈이 없겠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워서 그냥 웃으으로 답을 하고 말지요.

 

휴가가 있어 시댁을 갈 때는 친정집을 먼저 들려서 시댁으로 가곤했다.

난 남편한테 어머님 무서우니까 절대 말씀드리지 말자고 약속을 하고

우린 둘이서 어머님께 비밀로 했다.

 

그런 여유도 그리 길게 가진 않았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부터는 포기해야 했다.


휴가,

그래 길어봐야 일주일이다. 무슨 말씀을 하셔도 꾹꾹 삼키면 되지.

그렇잖아도 살갑지 못한 내 성격에 어머님과는 꼭 필요한 말만 했었다.

 

아주 사소한 말씀도 내겐 크게 와 닿았고,

모르는 사이 내 맘엔 서운함으로 가득 채워져 갔다..

 

추석...........

며느리가 다섯이면 뭐하남. 

동서가 도라지나물을 볶다가 까뭇까뭇 태웠다.

어머님께서 장독대에 가서 그중에서 안 탄 것들만 골라서 한 접시만

만들라고 하셨다.

 

그것도 모자라 또 사고를 쳤다.

 

밤을  한 되 샀으니 쓸 것 두고 삶아 먹으라고 하셨는데.

이번엔 내가 

상에 올릴 생밤을 하나도 안남기고 홀라당 다 쪄버린 것이다.

 

접시에 차례 음식을 하나하나 담고,

큰 형님이, 그 담은 밤.

으앗...........

“어머님 생밤을 안 남기고 다 쪄버렸어요.”

 

“입 다물어라. 제사는 정성이다.  아무소리 말고 가져오너라.”  

 

그렇게 무섭기만 하던 어머님이 위기에 처한 모자란 며느리들을 

이토록 감싸주시다니...............

 

무뚝뚝하고 정없는 어머님으로 마음에 새겨 왔었는데.

정말 난처할 때 너그러움을 배 푸신 그 모습에서 어머님을 

내 맘에 다시 그려 넣었다.

 

역시 어른이시다..................

 

마을 회관에 나가시어 막걸리로 친구분들에게 인심쓰신 어머님.

 

"우리 아가 왔는데 막걸리 받아 묵으라고 돈 주드라  그래서 내 안 사나"

 

멀미가 심한 난

집에 도착하면 여전히 멀미로 기진 맥진이다.

다행이 시어머님께서 멀미에 대한 묘한 속을 아시기에

 

"야야, 고만 한숨 자고 , 쉬었다 밥 무라. 그 멀미 그것 몬쓰겠더라.

사실 평소엔 절대 낮잠은 없음이다.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옆집 친구분께 무슨 장랑을 하셨는지.

어머님 친구분인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

 

"하이고 맨날 니그들 자랑이다. 다섯개가 다 좋다고. 내사 뭐 좋도 안하그만.

니그 엄마는 며느리 흉하는 법이 없다. 참말로"

 

그 이후로, 

어머님에 대한 두려움이나 무서움도 내 맘에서 서서히 거치기 시작했고, 

편안한 맘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가끔씩 친정이야기며, 어머님 시집살이 이야기며.

 

언젠가는 동서에게 대뜸하신 말씀이

맘에 걸리신다며 

제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안할 말을 내가 한 것 같아

맘이 좀 편치가 않다.

며느리가 많이 서운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  어머님만의 책임으로 돌리기엔 하나의 핑계에 불과했다.

내게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어머님에게 다가 설 나의 맘 자세가 아니,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시어머님과 , 친정어머님의 차이는 크지만,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미운맘 들면 남편 어머니란 사실에 또 참고.

들어주는 남편이 있어 시어머니 흉을 보기도 했다.

 

그렇게 어머님에게 정을 느껴가기 시작했다.

 

어머님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는 3년이란 긴 시간이 흘러야 했다. 

 

어머님을 이해하고 맘을 열어 겨우 정이 들어 갈 때쯤 어머님은 

우리와 아주 긴 작별을 해야 했다.

 

 벌써

11월 1일이면 열세 번째 기일이 돌아온다.

 

시어머님이지만 가끔씩은 그립다.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해 기억이 가물거린 두 딸에게  

남편보다 내가 더 자주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 주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