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창업박람회 65세 이상 관람객 단독 입장 제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35

고 백


BY 인 연 2004-10-08

고 백

나는 주기도문 중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어,라고 시작하는 첫 문장 밖에
암송하지 못한다. 사도신경도 마지막에 아멘.이라는 단어만 기억한다.
십계명은 다는 외우지 못하더라도 나 이외에 다른 신은 섬기지 말라는 것과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 그리고 살인, 간음, 도적질 등을 하지 말라는 계명 정도는 기억한다.
558절의 찬송가도 대중들 사이에 흔하게 불려지는 몇 곡의 제목들도 아직 모른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음계에 맞게 부를 줄은 몰라도 남들이 선창하면 대충
따라 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탁월한(?) 능력은 부모님께서 나를 낳으실 때 가난한 부모를 만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주신 하나의 선물이라 생각한다. 나의 유추가 틀려도 상관은 없다.
내가 음치로 태어나지 않게 해 주신 부모님에게 고마운 마음 때문에 선물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구약전서와 신약전서를 구분을 할 줄 안다.
바이블에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구약전서고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가 신약전서이다.
구약전서의 내용이 신약전서에 비해 곱절이 많은 걸 보면 아마도 구약시대 사람들이 더
힘들게 살았나 보다.
구약전서에서 처음 시작하는 이야기가 창세기라는 것을 알지만 신약전서에 처음 시작한
이야기는 불행하게도 아직 모른다.
내가 바이블 내용을 이 정도 밖에 구분하는 것을 보면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경을
치시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어쩔 수 없다.
알면서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되지만 모르면서 행하지 못한 것은 죄가 되지 않다는 것을
아는 목사님과 장로님이기에 나를 용서하실 줄 믿는다.
그래도 십계명을 절반이상 기억하고 있는 것 보면 내 자신도 대견스럽고 신기하다.
아마도 영혼도 맑고 머리도 녹슬지 않은 십대에 십계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기독교에 대해 기본은 알고(?) 있는 것 같아 하나님께 덜 미안하다.

사실 이 정도라도 기억하는 것은 얼마 전부터 이제는 종교를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예전에 마누라 덕분(?)에 일요일이면 개 끌려가 듯 교회를 가끔 나갔는데 도무지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교회에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아무리 정신무장을 철저히 해도 쏟아지는 졸음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졸음의 무게는 천근만근 상상을 초월하였다.
한 번 졸음이 시작되면 누가 옆에서 허벅지를 바늘로 찔러야 잠이 달아날까 그 놈의 잠은
한 번 눈꺼풀에 붙으면 요지부동이었다.
어렸을 때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밥을 먹다가도 밥상 위에 머리를 박고 잠이
들었던 상황과 매우 흡사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목사님 설교가 언제 끝났는지 모르겠으나 성도들의 찬송가가
울려 퍼진다.
그때서야 화들짝 놀란 잠은 첫닭이 울면 잿밥을 먹던 귀신들이 달아나듯 한놈 두놈 눈에서
떨어져 나갔다.
아마도 하나님의 영접도 끝났고 목사님께서 입술이 부르트도록 외치던 헌금도 적절한
금액을 하였으니 집에 가서 마음 편하게 지내라고 잠이 달아난 것 같았다.
이렇듯 교회를 다녀 온 날은 몹시 피곤했으며 교회를 가야 하다는 생각조차 고문이었다.
따라서 일요일은 가능한 다른 스케줄을 만들어 교회 가는 것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고국을 떠나 오던 날, 배웅 나온 어머님께서 마지막으로 내게 남기신 말씀이 생각난다.

"미국에 가면 일요일 마다 교회에 나가야 한다며? 이왕, 교회 믿으려면 확실하게 믿어라."
"그리고 교회 믿으면 부부싸움도 덜 한다더라. 미국까지 가서 살면서 서로 싸우지 말고
오손 도손 살아라."

어머님은 하나님과 교회 조차도 구분하실 줄 모르는 분이다. 그래서 어머님은 어떤 신도
섬기지 않는다.
다만 인생을 살면서 남에게 피해 안주고 착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신다.
그래서 이웃집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능력이 되는 한 발벗고 나서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밤새 걱정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신다.
어머님은 당신의 아픔 따윈 더러운 걸레 팽개치듯 하시지만 자식의 아픔, 이웃의 아픔은
하루 빨리 낫게 해 달라고 하늘을 향해 정성껏 기도하신다.
어머님은 돈도 많이 벌어 자식들 잘 가르치고 어려운 이웃도 도우라고 하시며 당신께,
형제들에게 전화도 자주하라고 하신다.
확실한 믿음을 가져라, 부부싸움하지 말고 정겹게 살아라, 이웃을 도와라, 가족에게 안부
전화해라.
이쯤 되면, 다른 교회는 가면 안 된다. 집이 멀어도 우리 교회를 나와야 한다.
헌금을 많이 하라. 그래야 복 많이 받는다. 나는 어느 목사들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더
많이 받았다는 등 하나님을 빙자하여 충직한 성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목회자보다
어머님이 더 훌륭하다.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섬기고 말씀을 신뢰한다.
어머니가 교회와 하나님을 구분 못해도 부끄러워하지 않듯이 내가 아직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단숨에 암송하지 못해도 부끄럽지 않다.
그리고 십계명을 다 외지 못하고 찬송가의 제목을 알지 못해도 낯을 붉히고 싶지 않다.
다만 어머니의 마음을 섬기듯 하나님을 섬기고 어머니의 말씀을 신뢰하듯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이다.
이제 가을이 오나 보다. 조석으로 창을 넘나드는 바람이 제법 살이 쪄 보이고 가을
냄새가 난다.
온 마을에 단풍이 형형색색 물들면 내 마음속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단풍처럼
곱게 곱게 물들었으면 좋겠다.
.
.
.
뉴저지 포트 리에서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