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이라는 말에선 향기가 느껴집니다.
아이들의 소꿉놀이마냥 풋풋하고
아이들의 초등학교 입학처럼 설레이고,
모두들 핑크빛으로 꿈꾸죠.
그런데 신혼의 향기에는 곧 다가올 폭풍우도 있었음을 미처 몰랐죠.
저는 대학교 1학년때 만난 동갑내기 첫사랑과 ,스물 여섯 나이에 98년도에
신혼의 둥지를 틀었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온 선물인 100일정도 된 아가랑 함께 말이죠.
결혼전에 먼저 아기가 생겨서 두렵기도 했지만
서로 같이 있을 수 있다라는 생각만으로도 기뻤죠.
우리의 신혼은 이렇게 셋이서 출발했답니다.
준비되지 않았던 탓이겠죠?
시댁의 무관심과 친정집의 어려운 형편탓에 천만원짜리 방에
이백오십만원의 살림살이로 소꿉놀이를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그 곳은 우리에겐 어느 화려한 저택보다도 더 소중하고 아늑한 보금자리였죠.
날마다 눈을 뜰 때면 기쁘고 또 감사했죠.
둘이서 극장에 가 영화를 볼 순 없었죠.
그렇지만 아기를 재우고 과자를 먹으며 텔레비젼의 영화를 볼 수 있었고
둘이서 신혼의 데이트를 즐길 수는 없었죠.
그러나 밤에 아기를 재우고 단 10분이나마 손잡고 떡볶이를 사러 갈 순 있었죠.
어럽게 출발한 탓에 서로에게 멋진 선물도 해줄순 없었지만
신랑이 회사 회식이 끝난뒤 술에 취해서도
내가 좋아하는 김밥을 꼬깃하게 주머니에 가져올때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선물이였답니다.
신혼의 1장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소박한 행복으로 가득 했었죠.
그런데 뒤늦은 절차 덕분에 서로 할퀴게 되었어요.
결혼식 ! 물론 다른 사람들도 결혼식 절차상의 문제로 많이 갈등이 있기도 하죠.
시댁에서 예단비로 500만원을 요구하네요. 친정에 여유가 있으면 가능하겠지만
저희쪽은 부모님도 이혼하신 상태고 너무 어려워서 무리한 요구였죠.
아버님쪽 친지뿐아니라 어머님쪽 친지분들까지 수를 헤아리면서 한사람에 30만원씩
곱하기 하시는데 정말 너무 슬프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아무말도 못하는 신랑은 정말 미웠죠. 정말 아무말도 못하더라고요.
서로 할퀴는 말도 많이 하고 이런 답답한 사람이랑 평생 살 수 있는지
회의가 들더라고요.
저는 날마다 울고 신랑은 날마다 담배만 피우고..... 후후 정말 그때는 안개낀 세월이네요.
그러기를 한달여..... 어느날 신랑이 편지를 썼더라고요.
마음 몰라서 미안하고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
앞으로는 강한 신랑이 되겠다고요.
헤어질까 생각 했었던 제 마음을 돌려 놓은 건 바로 편지속에 씌여져 있던 시였답니다.
길을 가다가
진흙속에 장미를 보았다.
그 아름다움은 나에게
감동을 주었네
그대를 만났네
그 기쁨은 장미보다 더 즐거움을 주었네
그대의 음성은
아침에 들려오는 새의 노래소리보다 맑았네
그대가 던져준
황금의 불꽃이 재가 될 때까지
잃지 않으리
이 시가 제 마음을 울려서 어렵게 눈물의 결혼식을 치루고, 지금까지 알콩달콩하게
살고 있답니다. 예쁜 아이들 둘이랑요.
저의 신혼기는요, 요렇게 폭풍우 한번 지나갔답니다.
그런데 비온 뒤 의 날씨가 더 쾌청하잖아요. 저희는 동갑내기 부부라 가끔은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친구처럼 연인처럼 자~~알 살고 있답니다.
(지루했을지도 모를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