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86

눈동자가 까만 소녀와 피카소와 가우디


BY Dream 2004-10-04

투명한 가을빛이 거실가득 들어오고
막내아이는 어디서 박스를 주워왔는지
그 박스안에 쏙 들어가 앉아  책을 읽고
큰아이는 피아노를 칩니다.
제가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게 하나 있는데
그건 저희집에 그랜드피아노가 있다는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딸이 그 그랜드피아노앞에 앉아서
쇼팽이나 슈베르트 곡을 연주하면....
저는 서혜경 엄마가 부럽지 않습니다.
평화로운 그림이지요?

 

이렇게 평화를 그려내고 있지만
사실 마음속에선 전쟁이 일어나고 있답니다.

저희남편은 호텔에서 일했더랬습니다.
연봉도 많았고
생활하는데 별 걱정없이
사실은 제분에 넘치게 편안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했습니다만
남편은 늘 마음에 갈등을 겪더군요.

 

"사람이 말야.. 건설적인 일을 하고 살아야지.
이거야, 원, 맨날.......
건설적인 일을 하고 살아야되는데....."

이러더니만
그 돈많이 주는 회사를 때려치고
그야말로 건설적인 일을 한다고
전문건설 주식회사를 차리고
기술자들을 모아서
차사주고 전셋집 마련해주고
장비 사고...
내속을 뒤집으면서
폼나게 원없이 건설적인 일은 일사천리로 펴나가는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좋아진것도 있습니다.

남편,
남편이 말이죠... 그동안, 그렇게 밉던 남편이
딱하고 안쓰럽게 여겨지더란 말입니다.
그렇게 자기 맘대로 인색하게 굴던 남편도
새벽에 곤히 자는 마누라를 깨울까
조심조심 일어나 물소리 시끄러울까 세수도 안하고
살금살금 옷 꺼내입고 나가더란 말입니다.

한밤중에 모기소리 들린다고
일어나 모기잡으라고  짜증을 내던 남편이었는데....

 

이 짜증 잘부리던 남편
술 좋아하는 저희 남편이
유럽여행중 가장 기억에 남는곳이
바로 스페인의 바로셀로나 랍니다.

바로셀로나에서
민속촌 같은곳엘 갔는데
그곳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때였습니다.
스페인의 음식중 빠에야라는것이 있는데
새우며 홍합 오징어 같은 해물과
쌀을 버터에 볶다가 토마토소스며 핫소스를 넣어 지은 밥인데
그맛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것이었습니다.
식구수대로
그 빠에야와 스파게티를 주문해놓고 기다리니
맨먼저 음료를 내 오더군요.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까만 어린 웨이추레스가
하얀 미니 앞치마를 치고
아이들에게 콜라를 나누어 주고
남편에게는 보기만 해도 쉬원한 맥주한잔을 건네주는데
더운날씨에 목이 탔던 남편은 반가운 나머지
헐레벌떡 그 맥주잔을 집어 들다가
그만 맥주잔을 쓰러트려 그아까운 맥주를 홀랑 쏟아버렸습니다.

눈이 까만 그소녀는  안타까운듯 미간을 좁혀 미소를 짓더니
어쩌구르르르르
저쩌구르르르르
알아들을수 없는 스페인말로 뭐라 말하고 돌아갔습니다.

남편은 입맛을 다시며
베낭에 넣어다니던 캔맥주를 꺼내서
그잔에 부어 반잔쯤 마셨는데
잠시후 그 예쁜 소녀가 맥주한잔을 다시 가져다 주더군요.

남편, 어찌나 좋아하던지요.
여자중에 스페인 여자가 최고라고요...

 

맛있는 식사와 시원한 맥주를 싫것 마신 남편은 기분이 좋아
흥얼흥얼 노래까지 불러가며
저희 가족을 이끌고
피카소 박물관으로 데려갔습니다.

피카소...
저는 피카소가 알 수 없는 요상한 그림이나 그려대고
늙어서는 젊은여자나 디립다 밝혀대는 참 별난사람중에 별난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피카소가
처음부터 그런 별스런 그림만 그렸던것은 아니더군요.
어렸을때는 사실주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가 말하길
"나는 이미 열세살에 라파엘로를 능가하는 그림을 그렸다."
하더니
어렸을때 그림은 우리가 알기 쉬운 참 잘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우리의 바보산수화가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그런 우리가 잘아는 잘그린 그림을 그리는데
하등의 의미가 없다는걸 일찌감치 깨달은거죠.
왜냐면,
그는 천재니까요.
그는 모든그림을 청색톤으로 그리던 청색기,
또 홍색기를 거치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피카소가 되었던것입니다.

피카소 박물관...
그림에 문외한인 저같은사람
또 저희 아이들이 아주 흥미롭게 돌아본곳이었습니다.

 

바로셀로나는
건축가 가우디의 도시라 해도 과장이 아닐듯 싶었습니다.
성가족 성당이며 독특한 가우디만의 기법이 나타난 건물들이
시내 곳곳과 구엘공원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직선이 없었으며
파도형체럼 이리저리 구부러진 건물의 선이
꼭 동굴의 자연스런 선을 연상케 했습니다.

시내 거리엔 가로등도 가우디의 작품이 많았는데
지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광장엔
키 큰 야자나무와
가우디의 작품 가로등이 여럿 서있었습니다.

아이들과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쳐다보며
야자나무 구경을 하고 서있는데
키가 작은 여대생 두명이
가우디의 알쏭달쏭한 가로등을  사이에 두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것좀 봐. 대단하지?"

"이런건 가우디니까 만들어낸거야."

'그래 가우디의 천재적인 광(狂)기가  이렇게 나타난거지..."

 

옆에 있던 이 무식한 아줌마도 끼어 들었습니다.

 

"맞아요 맞아. 이 작품엔  가우디의 광(光)기가 네개나 나타났네요. 킥킥킥"

보름달모양 전등갓 네개가 디룽디룽 매달린
가우디의 가로등을 진지하게 감상하던 학생들은
서울대 수학과 학생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