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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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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


BY 최미화 2004-09-20

나이 서른에 그를 만났다..

당시 금융회사에 다니던 나는 외모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이뻤다(죄송)

많은 남자들의 프로포즈에도 나는 퇴짜를 놓기 일수였다.

직장이 좋으면 키가 작았고, 키가 크면 직장이 좋지 않았다는 정말 이유아닌 이유로..

 

그러던 어느날 다섯째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발 올해는 시집가야 되지 않겠냐고... 조카가 입원한 병원에 .. 그러니까 그이의 큰어머님 며느리 딸애가 입원을 하고 있었다. 언니와 큰어머님과 서로 눈인사를 하고 지내다가 친하게 되어 내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러니, 그쪽에서도 당연히 작은집 아들(지금의남편)얘기를 했고, 우리는 언니가 사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맞선을 보았다.

키 177cm에 훤칠한 외모... 그보다도 너무 착해보이는게 마음을 끌었다.

그래서인지  싫지만은 않았다.

후로 우리는 당시 남편이 살고 있는 진주에서 구미로 정말 주말에만 만나는 그런 애절한 사랑(?)을 시작했다.

 

서울 모연구소에 있던 그는 당시 너무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사표를 던졌는데... 그후 직장을 알아보는 과정에 그만 IMF가 터져 버린것이다.

정말 운명의 장난인지...

일곱언니들의 각각 다른 찬.반에 휩쓸려 난 정말 또 마음속의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저울질은 사랑이라는 커다란 바위를 밀어낼 수는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6개월이라는 교재동안 사랑을 하고 만것이다.

정말 그렇게 콧대높던 내가.. 이제 직장도 없는 그를 모든걸 뿌리치고 선택한것이다.

산을 오르며 그는 내게 이렇게 프로포즈를 했다.

'이렇게 힘들게 올라왔지만, 우린 정상을 보고 달려 왔지! 그렇듯이 우리둘이 같이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일이 있더래도 나만 믿고 따라와 준다면 당신 손을 영원히 놓지 않을거다'

난 그를 믿었고, 우리는 1998.9.20일 바로 오늘 결혼을 했다.

사는 동안 정말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우린 아직도 신혼처럼 사랑하며 살고 있다.

아들하나에 딸하나!

그리고 지금은 든든한 직장도 다니는 우리남편!

아직도 신혼처럼 손길이 오면 떨려온다.

항상 말을 해야 사랑하는지 아느냐며 내 어깨를 올리는 그이를 난 정말 오래오래 영원토록 사랑할 것이다.

오늘 따라 수족관 고기가 너무 앙징스러워 보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