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결혼 6년차된 주부입니다.
이제는 신랑과 붕어빵처럼 똑같은 아들도 하나 있고,
제법 살림도 손에 익어 결혼 생활이 이런 거구나 말할 수도
있게 되었지만 미혼 땐 결혼이란 정말 신기루 같아서 어떤
날은 불타는 사랑을 해서 결혼하고 싶어지기도 하다가, 어떤
날은 요리, 청소, 육아 등 현실생활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혼자 살아야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다 지쳐버린 여동생이
마침내 저보다 먼저 결혼해 버렸습니다.
제가 좀 보수적인 기질이 있는지 임자 있는 사람이 먼저 가라고
흔쾌히 축하는 해주었지만 왠지 좀 서글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런데 동생 결혼식이 바로 제 인생의 반쪽을 찾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아버지의 사촌 여동생, 즉 고모 되시는 분이 결혼식 후 뒤풀이 겸
저희 집에 오셨다가 저를 예쁘게 보셨었나 봅니다.
얼마 뒤, 집으로 고모님의 연락이 오고 처음으로 선이란 걸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27살이었고, 대학시절 이래 소개팅은 해보았어도
어른이 소개하시는 중매자리는 처음이었습니다.
일요일 오후, 모 호텔 커피숍에서 약속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선본다고 호텔로 정장입고 나간 제가 좀 우습기도 합니다.
물론 당시 저는 정장 차림으로 출퇴근하던 회사원이어서 그런
차림이 어색하지는 않았는데, 선 보러온 남자, 즉 지금의 신랑은
면바지에 좀 후줄근한 옷차림이었습니다.
약간 실망했지만, 어차피 빈 일요일 오후 시간 재미나게
보내자고 각하여 신나게 수다를 떨었지요. 내숭도 안 떨고
말이에요.
우리 남편 지금도 말수 적고 웃는 인상이지만 그때도 저의 긴
수다를 열심히 듣더니, 왈,"원래 아줌마들이 모여 시끄럽게
수다떠는 것 안 좋아하는데 ○○○씨 말은 전혀 수다처럼 안
들리고 너무 재미있다고요"
그때 벌써 눈에 콩깍지가 씌었었나 봅니다.
저는 사실 그 날 이후 만날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저녁식사를
1인당 7만원 짜리를 하고 나니, 좀 미안해지더군요
그래서 한 번 만 더 만나보자 했던 것이 지금 365일 계속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 방에 전화가 없고 당시 요금이 비싼 휴대폰이 있었는데
남편이 밤마다 전화하느라고 전화요금이 한 달에 20만원이
넘게 나왔답니다.
시어머니 눈이 휘둥그레지신 것은 물론이지요.
그리고 항상 전화로 정태춘, 박은옥의 "사랑하는 이에게"를
불러 주었는데 아마도 한 밤 중에 자기 방에서 노래하면 어머님이랑,
시누이랑 다 들었을 텐데,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 지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심지어는 한겨울에 출장 가서도 바깥에서 추위에 부르르
떨면서도 노래를 해 주었지요.
물론 지금은 전혀 안 불러 줍니다.^^
중매로 만난 지라 3,4개월 데이트를 하니, 이제 날을 잡자고
졸라대서 저희 부모님께 신랑을 소개시켜 드렸습니다.
그 때 저희 아빠가 "내가 우리 집으로 초대할 때까지 아직 결혼
허락 한 거 아니다" 그러셨어요.
그 뒤로 아빠가 2달 정도 끌다가 남편을 집으로 초대했는데,
우리 집으로 막 쳐들어온다는 남편 말리느라 혼났지요.
지금도 그 일이 조금 서운한 일이었는지 장인 어른이 자기를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하면서 괜히 튕기신 것이라고 주장하네요.
아무튼 저희는 7월 여름에 만나 나름대로 재미있는 연애 기간을
거쳐 이듬해 3월 짜잔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그리고 저의 탁월한 선택이었는지 나름대로 만족하며, 알콩달콩
생활의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아직 인생의 반쪽을 못 찾으신 처녀, 총각분 들, 기혼자로서 제가
어줍잖은 조언 한 마디 해드린다면 무엇보다 자신에게 잘 맞는,
고운 심성의 소유자를 만나시라고 하고 싶네요.
다 들 말은 쉽지만 막상 결혼 상대자를 찾다 보면 조건에만
휩쓸리기 쉽상이죠.
운명의 상대자는 분명 있는 것이지만 그 운명을 만드는 것은 본인
스스로의 노력과 마음가짐 인 것 같습니다.
쌀쌀해진 가을, 외로움에 떠는 여러분들, 평범한 진리를 잊지
않으시면 다가오는 봄엔 정말 자신의 마음에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모두들,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맺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