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친구들은 말한다.
옛날의 그 성질은 다 어디에 버렸느냐고...
글쎄...어디다 버렸을까...
가슴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쟁여놓느라고 뿜어내지 못해서
몸이 그렇게 나빠진것 같다.
워낙 강적을 만났기 때문일거다.
쓰고 싶은 욕망은 항상 가슴속에서 뜨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방학이면 나는 방구석에 들어앉아서 한없이 책을 읽는다.
천주교에서 말하는 무신론자의 금서부터 골라 읽었다.
그렇게 나는 수녀님들께 반항적인 아이였다.
고등학교 삼학년때의 일이다.
학교가 끝나면 종로에 있는 학원으로 향한다.
배가 고팠다.
유난히 배고픔을 못참는 나.
배가 고프면 신경질을 무지 내었던 나.
건강한 나.
나는 결혼 전까지는 고등학교 일학년때 맹장수술 한번 했던것
이외에는 감기나 배탈이 걸려본 적도 없었다.
학원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배고파. 근데 돈이 없어.'
엄마는 당황하셨다.
급기야 엄마는 내게
'언니랑 형부될 사람이 아까 미도파로 나갔으니까 아마 좀 있으면 도착할거야.
미도파 앞에서 한번 기다려보던지...'
오케이...학원이고 뭐고 언니랑 형부는 나한테 걸리기만 해봐.
배가 터지도록 빵을 사달랠꺼니까...
미도파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린 나...
드디어 버스에서 내린 언니와 형부 되실 분이 저만치서 걸어온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짜잔...
길을 막은 나를 본 언니의 놀란 얼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처제의 배고픔을 그냥 넘어간다면 연애전선에
큰 차질을 초래하게 하리라...
언젠가 언니가 몰래 나부터 형부를 선보인 자리에서 형부는 틀림없이
말했었다.
'하나밖에 없는 처제인데 언제든지 먹고 싶은 것은 얼마든지 사주겠어.'
이 말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지...
'형부 나 배 고파서 여태 여기서 기다렸다우.'
이럴땐 형부라고 에누리 없는 부름을 서슴치 않는 법이다.
형부되실 분은 감격 하실 수밖에...
미도파 건너편에 비엔나라는 도나스가 일품인 집으로 우리는 옮겨갔다.
그날의 기억은 나보다 지금 나의 형부가 더 자세히 꿰고 계시다.
지금도 가끔 그날의 이야기를 하시니까...
도나스 열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장래의 처제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셨을까...
어이 도나스 열개.
가끔 이렇게 놀리기도 했으니까...
그날의 꿀맛같던 도나스의 맛은 잊지 못한다.
그런 내가 지금은 밀가루 음식을 잘 못먹는다.
이상한 일이다.
도나스를 먹고 싶은 일은 전혀 없으니까...
나는 완전히 탈바꿈을 한 모양이다.
인간도 탈바꿈을 할수 있다는것을 나는 나로 인해서 알았다.
오빠가 없는 내게 형부는 오빠이기도 했다.
지금의 나의 남편과 형부가 처음으로 대면을 하고 온 날...
'두사람 잘 살아낼수 있을까...너무 예민한 성격들이 만나는것 같아서...'
지금도 형부는 잦은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옛날처럼 맛있는것
사주겠다는 말을 한다.
나는 형부앞에서 고기를 마음껏 먹는다.
어제는 형부가 돌아오시는 날이다.
오라고 전화하는 언니...
어제는 갈수가 없었다.
형부는 하나밖에 없는 처제때문에 가슴이 많이 아프시다.
언제든지 내자리를 비워두겠다는 형부...
처음의 약속을 어김없이 지키시는 형부...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