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정말 웃기게 생겼다"
지금 내 신랑에게 처음 만났을때 내가 던졌던 한마디다.
그이는 그 당시 그 말에 상처아닌 상처를 입고, "머 저런 누나가 다 있나.."싶었단다. 푸훗.
때는, 1996년 봄..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잠시 심신의 휴식겸, 재충전이라는 이름 하에, 휴학중이던 나는,
그간 발길을 끊었던 동아리에 분위기 달라졌다며 이끄는 동기의 손에 다시 발을 들이게 됐다.
그때, 만났던 후배녀석들... 난 아무말도 안하고 그 녀석들이 나누는 얘기만을 듣고 보았을 뿐인데, 난 배꼽을 부여잡고 웃었다.
한녀석은 교정기를 하고 맹구처럼 웃어보이며, 재미난 얘기를 친구들에게 하고, 한녀석은 구영탄같은 눈으로 팔다리로 재미난 얘기를 까무라칠정도로 재미있게 얘기하고, 후배 여자아이는 그녀석들의 말에 입을 한가득 벌리고, 너무 재미있게 웃어주고 있었다.
그 옆에서 나도 덩달아 웃다가, 그 녀석들과 인사를 뒤늦게 나눈 후,
내가 구영탄 같은 눈의 녀석에게 건넨말...
"너 정말 웃기게 생겼다"였다..
그리고는 가끔 동아리를 찾을때마다 그 후배녀석들을 먼저 찾았다.
오늘은 무슨 재미난 행동들을 할려나..하는 기대와 동아리를 나와서 내 친구들을 만날땐, 난 어느샌가 그 얘기를 전달하고, 너무 재미있는 아이가 있다고 좋아라했다.
그랬던 그 녀석을 마음에 담기 시작한건 낙엽이 떨어질 준비를 하는, 딱 이맘때쯤..
그 녀석은 동아리 창립제에 사회를 맡았고, 그 행사를 무사히 잘 치른 후 뒷풀이 자리..
그 녀석은 한껏 취해,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어느사이 내 옆자리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너 오늘 잘하던걸~"하고 건넨 술잔에,
그 녀석은 취한 목소리로 내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기다렸어요~"
두둥.....
순간 찌릿..했다. 당황스럽기도 했고, 놀라긴 했는데, 싫진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날..그 녀석은 기억을 하지 못했다.
내가 그 녀석에게 그 얘기를 말하지도 않았지만, 그 녀석은 평소와 똑같이 날 대했다.
약간 어려워 하듯이 예의 바르게 대하고, 동기들에겐 너무 재미있게 행동했던 그 녀석..
그때부터였다. 이런이런...내 마음이 그녀석에게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왜 날 건드려가지고...
처음엔 "후배니까 이러면 안돼 이러면 안돼.."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7살에 학교를 들어갔기 때문에 우리 둘은 동갑이다.
그런데다가 왠걸, 그 녀석은 나보다 생일이 15일밖에 뒤지지 않는데다, 하는 행동들이 나를 좋아하듯이 행동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마음을 안키우려 애썼는데,
나도 모르게, 후배중에 그 녀석을 제일 챙기게 됐다.
동아리 농구경기를 보러 가도, 그 녀석이 지고 나서는 속상해 하는 표정을 보면,
내 마음도 안타까웠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까.. 겨울이 오고, 방학도 하고,
더이상 학교에 가도, 그 녀석을 볼수 없었다.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는 바에야...
그러던중, 한달하고 조금 남았다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그녀석 군입대일을 들었다.
그 전에는 자제됐던 내 마음이 그 이후엔 더욱 커졌고,
고백하진 못하고, 가끔 있는 동아리 술자리에서, 취하지도 않는 몸을 술에 취한척 그 녀석에게 기대어 은근슬쩍 표현해 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안타까운 시간이 흘러, 마지막 환송회날...
우리 동아리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그 녀석에게는 7배주와 폭탄주가 주어졌다.
자신도 군입대가 안타까운지, 단숨에 다 마시고는, 뻗어버렸다.
기분도 우울했던 나...
잠시 화장실에 갔는데, 남녀공용화장실이었던 그곳에서 한 선배오빠가 그녀석을 부축하며 나오고 있었다.
그때!
그 녀석이 나를 보더니, 선배오빠에게 잠시 둘이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그 선배오빠...먼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갔고, 화장실엔 그녀석과 나 단둘이었다.
근데, 그녀석, 화장실 문을 잠그는 것이 아닌가..
"왜그래~ 괜찮아?"라고 묻는 나를,
와락!! 그 녀석은 나를 껴안았다.
그 순간 나는 그동안 참고있던 눈물이 폭발해 쏟아졌다.
"너 편지써!! 꼭 편지써야해!!" 라는 내 말에 그 녀석은 취해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내 눈을 한참을 보다가 화장실에서 나갔다.
난 확신을 가졌다. 마음도 편했다. 그날밤은 너무 기분 좋게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나, 제가 어제 실수한거 없죠? 선배들이 제가 제 동기 여자애를 껴안았다는거예요. 제가 그랬어요?"
슬펐다. 이녀석..기억을 못하는구나..게다가 동기 여자애라니...
"아냐, 아무일도 없었어. 늘 건강조심하고 잘 다녀와라"
"네~ 누나. 정말 저 실수 없었던거죠?"
"없었다니까. 왜 나한테 물어? 네 동기여자애한테 물으면 되겠네! 그럼, 그만 끊자"
울었다. 그날 하루종일 울었다.
그녀석은 그렇게 군대에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