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나.. 1971년 모월 하고도 모일에 태어났다고 한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
언니와 큰오빠는 내가 태어난게 기억난다고 '넌 엄마가 낳은거 확실해.'라고 해서 그냥 믿고 있다. 후후..
어렸을때 동네 어르신들이 다리밑에서 주워왔다고 얼마나 놀려댔던가.. 첨에는 그냥 수줍어 하면서 '아녜요~' 하면서 당당히 말하다가 두 번 세 번 들을수록 정말인가 싶어서 부엌 한켠에서 눈물 흘렸던 때가 생각난다. 바보 후리지아~ ^^
별탈 없이.. 정말이지 특별한게 거의 기억나지 않을만큼 너무나 순탄하게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던 듯 하다. 한마디로 재미없었다~ ^^
대학을 졸업하고 무슨 맘이어서인지 대학원엘 진학했고 하다보니 계속 하게 되서 99년 2월에 이학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내가 좀 단순해서 옆길로 새는걸 잘 못하나부다.
그렇게 죽자사자 학교만 다니니깐 박사학위를 줍디다. 왜그리 바보 같았을까.. 쩝..
면이와의 만남도 그때였다.
대학원 생활에 회의와 분노, 사람에 대한 배신감, 억울,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의 미움 등등.. 그 해 그때의 기분이었다.
후후.. 아무래도 난 그때가 사춘기였었다.
늘 학교 집 학교 집 하다가 학교가 싫어지고 집이 싫어지니까 갈 곳이 없더라.
논문도 끝내고 졸업식만 남은 그때.. 우리끼리는 실험실 생활을 노가다라고 한다.. 실험을 안하니 당연히 시간은 만빵으로 남는데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시간이 무섭다고 느낀건 그때가 첨이었던듯.
그때 내가 그렇게 한심했을때 나랑 면이랑 어찌 어찌해서 ^^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 만났나를 이야기하라면 지금도 쪼금은 당황스럽다. 우린 컴퓨터에게 술 석 잔 사 주어야 한다. 흐흐흐..
첨부터 야자로 시작했던만큼 정말 초등학교 동창을 만난 듯 편하고 좋았다.
정말이지 이 남자가 내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내 사랑하는 사람일줄이야~~~
그때 면이는 청주에.. 난 광주에 살았었다.
첫 만남부터 일이 될려고 그랬던지.. 정말 우연찮게 면이의 숙소 그것도 남자들만 우굴대는 그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날 위해서 기꺼이 자기의 침대를 내주고 자긴 옆 방 친구의 방으로 갔던 면..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상상이 안되지만 첫 날부터 그렇게 됐다.
아무래도 나.. 그때부터 면이한테 폭 빠졌던게 분명하다. 히히..
두 번째 세 번째도 내가 청주엘 갔다.
세 번째 만났을때도 같이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ㅋㅋ.. 별 이야길 다하네..
내가 확실히 면이에게 폭~ 빠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만남..
밤새도록 놀아보잔 심산으로 놀려는데 새벽 2시 아니 3시가 되니 넘 재미도 없고 피곤하고 그래서 우린 비디오방을 가자고 했다.
가자고는 했지만 그때 내 속은 콩당콩당 뛰었고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부러 태연한척 하고, 그래서 비디오방엘 들어가서 영화를 골랐다.
그때의 콩닥거림은 분명 사랑의 콩닥거림이 아니었다. 낯선 남자에 대한 두려움..
식스 데이스 세븐 나잇.. 하도 떨려서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쌀쌀했던 새벽에 자기의 외투 자락을 덮어주고는 잠을 청한 면이..
그때 면이 후리지아에게 손끝 하나 건들지 않고 밝은 해를 맞이하게 해 주었다.
그때의 면이의 모습이 지금도 내 가슴 가득 남아서 믿음을 주고 사랑을 주고 행복을 주는 듯 하다. 면아~~ 내 맘 알지? 쿠쿠..
닮은 구석 하나 없고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전혀 없고 정말 너무도 하얗게 모르던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사랑하면서 한 집에서 산다는게 난 가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맘 놓고 사랑하면서 살 수 있게 면이를 내게 보내준 하느님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옛날 이야기지만 새록새록 가슴에 새겨져 진한 추억으로 물들어 있다.
다음에 계속..
발그레 상기된 후리지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