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나이 스무세살, 한창 미팅에 열을 올리며 쫒아 다녔던 때가 있었다.
회사 직원들도 그냥 예사롭게 보이지않고 장단점을 따져보던 영특함도 있었을 때였다.
가정을 가진 삼사십대 남자 상사들의 가정도 공공연히 여사원들과 이야기를 하던시절
회사에서는 그렇게 매너좋고 인텔리라고 자부하시던 부장님들 퇴근후에 모습이 종종 사내에 소문이 퍼지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분들과 심지어 버젓이 낮에 사무실로 전화하던 낮선 여자들의 소문으로 나의 이상형이 차츰 깨어지고 있을 때였다.
나의 이상형은 깨끗한 외모에 매너가 좋고 옳고 그른것이 분명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그분들의 하이칼라 뒤에 감춰진 무분별한 생활에 실물이 나기 시작 하면서 나의 이상형이 깨진 것이다.
그러다 내여동생이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잠깐 시골에 가 있는동안 동생의 남은 월급과 퇴직금을 받기 위하여 동생회사로 전화해서 찾으러 갈려고 하니까 평소에 동생에게 언니있으면 소개 시켜달라고 졸졸 따라 다닌직원이 있었는데 그남자 직원이 퇴근후에 월급정산해서 가져온다고 만나자 해서 가까운 찾집에서 만났다. 처음만날때부터 별로 신경을 안썼던 사람이라 돈만받고 나올려는데 밥사준다해서 고맙게 잘얻어 먹고 돌아와서 잊어 버리고 있었다. 어느날 그날도 퇴근하고 쓸쓸히 자취방으로 가서 할일없이 보낸다는게 싫어서 밥이나 사먹고 들어갈려다 이왕이면 내돈들이지말고 얻어 먹을때없나 생각하다가 동생회사 경리직원이 생각 났었다. 그때는 참 이상했다. 그냥 전화하면 나올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꼭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기쁜마음으로 나와 주어서 밥먹고 생맥주 한잔씩 하고 다음 주일날 만나기로 하고 헤어져 돌아왔다.
만나기로 한 그주일날 난 그의 모든것을 사랑해 버렸다. 여름인데 긴 가을 잠바를 입고 청바지에 소매 끝은 때가 절여서 냄새가 풀풀났었고 그는 자기의 자란 환경과 지금 혼자 살고 있는데 부모 형제가 같은 부산에 있으면서 군대갔다 제대해 나오니까 형제들이 집을 팔아서 나누어 가진 상태고 어머니는 어머니 몫을 가지고 큰형님네서 함께 사시게 되었는데 그리로 제대해서 가니까 큰 형수님께서 부엌에서 일하다가 나와서 삼재수가 끼어서 도련님과 함께 못산다고 나가라 하던 이야기며 그말 말고도 자기 집안에 대한 수치르러운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이야기하는데 하이칼라에 목을 뻣뻣하게 들고 다니던 사람들에게서 실물이 나던때라 그의 사심없는 말이 나의 가슴을 헤집고 들어와 버린것이다.
그때 부터 우리의 테이트는 자주 있었고 내여동생이 그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이미 그의 대한 나의 신뢰가 많을때라 아무리 단점을 이야기 해도 내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였다. 동생말이 그의 성격이 과격한데다 쫌생이에다가 욕도 잘하고 사장하고도 잘싸우고 막무가네고 아무튼 동생은 그사람과 결혼하면 절대 형부라고 부르지 않을거라고 펄펄 뛰었다.그래서인지 형부라고 부른지가 결혼하고 십년이 넘어서 겨우 불러 주었던것 같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들이고 결혼식 하기전에 혼인신고부터 하고 일년후에 결혼식했던것도 그의 형제들이 아무것도 해줄수없다고 해서결국 우리힘으로 벌어 혼수와 신혼방과 결혼식비를 다해결 했어야 했다. 형님과의 일들은 내가 살아 보니 남편이 했던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음을 재확인하는 결과 였고 아무리 결혼해서 잘해볼려고 해도 주는것 보다 받는것을 좋아하던 분께는 해도해도 모자라는 일이 된다는것을 깨닫고 이제는 큰 길흉사에만 왕래한다.
결혼하고 바로 임신이 되어서 나는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집에서 살림만 하게 되었는데 이게 내가 벌어서 마음대로 쓸대는 별로 몰랐는데 남편월급만 바라보고 살자니 그것도 넉넉하면 괜찮지,집에서 살림하다 보니까 먹고 싶은것도 많고 사야 될것도 많고 남편이 갔다준 돈으로는 도저히 살수가 없었다. 한달 쓰라고 갔다준 돈이 열흘이면 빈손인데 어떡해야 할지 머리만아프고 자존심 상해서 남편에게 돈달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지 그나마 비상금으로 가끔 충당하고 겨우 견디어내다 결국엔 남편이 내가 말도 없고 맨날 죽을 상으로 있으니까 이렇게는 못산다고 이혼하자 하고 이혼서류 준비해서 법원에 가기전에 마지막으로 밥을 같이 먹다 둘이 마주보고 울다 없었던걸로 했던일 그이후,그나마 나는 나대로 생활을 좀더 규모있게 살게 되었고 남편은 월급을 다 가져다준게 아니고 삼분에이만 생활비로 주고 나머지는 모두 저축을 했었다는것도 알게 되었다.
첫딸을 낳고 몇년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단칸방에서 두칸으로 두칸에서 단독주택 전세를 전세에서 지금살고 있는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이사오기까지 그저 주위에서 참 좋아보인다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동생이 이야기 했던 남편의 성격은 틀리지 않아 시시때때로 나를 힘들게 하지만 과격한 성격은 내것 빼앗기고도 도로 찾아올줄 모르는 나에게는 오히려 살아 가는데 도움을 주었고 씀씀이가 많은 나에게 쫌생이 남편 때문에 모두들 어렵다 그래도 남에게 돈빌리려 가본적없게 되었다. 네살 터울로 아들이 태어나고 한달에 한번씩 꼭꼭 외식을 시켜주던 남편이 IMF가 터지자 회사에 부도가 나고 실직자가 되었다.
남편은 회사가 부도가 나고 딱 삼일 놀았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하는게 지금의 자영업인데 그나마 성실하고 꾸준히 해서인지 아이들교육 시키고 우리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다. 문제는 내가 마음의 방황을 많이 했었다는게 문제였다. 딸이 중학교 다니고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때IMF가 왔었는데 남편이 직장이 없어지니까 내가 희망을 잃고 좌절해서 머리를 싸매고 누워 날마다 내삶을 생각하는데 이건 이혼하자니 내아이들이 나중에커서 나를 보고 혼자 잘살려고 즈그들 버렸냐고 할것 같고 남편을 보자니 희망이 없고 혼자서 울고 또울고 결론 내리는게 그래 설마 죽지는 않겠지 함께 살아보자 하고 마음을 먹고 나닌까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지방으로 마음껏 자기 장사 수완을 넓혀가는데 내가 집안에 들어앉아 아이들 교육 시키고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하는일마다 잘되어 나갔다. 아마 남편 마음도 가정을 지키고 있는 내가 있어서 마음이 편안했을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편은 다른일로 나를 실망시킨적이 한번도 없다.
딸은 서울로 대학가서 지금 2학년이고 아들은 고1인데 착하고 공부도 상위권이고 난 나대로 내차한대 남편이 사주어서 서툰 운전이지만 가고 싶은데 마음껏 가고 달달마다 명목상 나의 품위 유지비라 해서 용돈도 받아 가면서 잘살아 가고 있다. 그때 이혼했으면 지금쯤 나는 어떡해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성경말씀에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준다고 했고 지혜로운 여인을 얻는것도 여호와께로 난다고 했다. 부부는 남남으로 서로 살다가 같이 하나가 되어 가정을 꾸리고 미래를 향하여 서로를 위로하며 보듬어 가면서 살아갈때에 아름다운 것이리라.
내삶의 20년의 결혼생활을 지나고 보니 실망이 있으면 반듯이 희망도 있다는것을 알게 된 세월이였다고 회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