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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44

결혼 이야기.


BY 도영 2004-09-07

22년째 같이 살고 있는 내 남편과의 첫만남은 그가 카투사로 군복무를 하던

22년쯤 지금은 친정인 내고향 강원도  원주에서 만났다.

깡마르고 대머리 증세가 약간 있는데다 곱슬머리에다 주걱턱인 남편은

당연히 내가 꿈꾸는 이상형의 근처도 못가는 악조건 이였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무시 했고 남편은 무시 하는만큼

집요하게 나를 따라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사는 반경이  좁은탓인지

아니면 인연이라 그런건지 두어번의 우연한 만남이 있었다

첫번째는 눈오는 길거리에서 만난 기억이 있고

두번째 우연한 만남은 크리스마스 이브날 나이트 에서  만남 이였다..ㅎㅎㅎ

그 나이트에서 만남이 내가 남편하고 결혼 하는 발단이 될줄이야..

 

사연인즉.

당시 내나이 스물한살째 맞이 하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거리는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가 고조 되고

레코드 가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송들이

나와 친구들 마음을 붕뜨게 만들기에 충분 했다.

그러다 어찌어찌하여 나이트를 가기로 했는데.

나는 나이트가 처음이라서 설레임반 기대반에 마음을 동당 거리며

쌍다리 분수대 옆 ""쌍쌍클럽'"이란 나이트의 첫발을 디뎠다.

문제의 크리스마스 이브날

그것도 처음 디뎌보는 나이트에서 큰사건이 일어날줄을...

상상도 공상도 아닌 커다란 사건이 일어 날줄이야.

한참 고빨이 올라 스테이지에서 친구들은 미꾸라지 소금친듯 흔들어 제끼고.

나이트란곳에를 처음 가본 나는 자리에서 애매한 맥주만 홀짝이고 있는데

내가 무시만 하고 만나주지 않는 그가 나이트에 출현? 한것이였다.

백인과 흑인 미군을 두명을 대동 하고 들어 오는 카투사 군복 입은 그가

나이트에 들어오자마자 나와 마주친순간.

그는 빙긋 웃으며 반가와 했고.

나는 고개를 싹돌려 내 이상형이 아닌 그를 쌀쌀 하니 외면을 했었다.

잠시후..잔잔한 음악이<모나코로 추정됨>나오면서

그는 내게 부루스를 청했고 

그가내민 손을 냉정히 거절 하고 새쪼구리한 표정을 짓고

친구들의 광란?적인 춤사위?를 바라다 보는데

조금전 거절 당한 남편이 굳은 얼굴로 나를 끌고 일행이 있는 자리로 가려 했다.

안가려고 밀고땡기는 와중에 친구들이 사태 파악을 감지하고 우르르 몰려와

나를 낚아 채면서 소동은 벌어졌다.

이미 전주가 있었는지 취한 그와 그의 일행 미군들 ..그리고

예닐곱명의 내친구들과의 싸움이 벌어졌다.

나를 쟁탈 하려는 내 친구들

시건방지고 되도 않게 도도한척 하는 나를 버르장머리 고치려는듯 놓치 않으려는

남편 일행과 내 친구들과의 몸싸움 으로 나이트를 발칵 디집어 놓기 직전에

다행히 12시가 다되어 나이트 문닫는 음악<잘있어요 `~~잘가세요`~'>이 나오고

양쪽의 싸움은 장내에서 장외로 이동 되었다...ㅎㅎㅎ

여전히 그는 내 팔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고

내친구들은 열받은 황인종인 남편과 백인과 흑인의 무대뽀에 열세를 금치 못하였다.

번번히 바람맞고 무시당한 그는 술기운지 오기인지.

그의 억센 손아구에 잡혀 있는 내팔은 떨어져 나갈것만 같았고

그날따라 얼마나 춥던지.. 나는 공포와 추위에 개떨듯 바들바들 떨면서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친구들과 그쪽 일행의 대치 시간은 새벽 한시가 넘자

내친구들은 그의 독함에 혀를 차기 시작 했다.

""와아.!저런 독종 내낳고 처음 봤다."둥

""뭐 저런 개뼉다구가 굴러왔냐.""둥

친구들의 말에 남편은 ""죽으려면 독사랑  키스를 못하냐..""응수를 하고

백인과 흑인은 쌸라쌸라 영어로 지껄이며 팽팽한 새벽은 깊어만 갔다.

손목 시계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지난 25일 새벽 두시가 다 되고

친구들은 그들의 동서양이 합체된 힘에 에 번번히 길거리에 패대기 쳐지자

동서양 합체의 막강한 위력에 친구들은 나를 쟁탈 하려는것을 포기 하고

발발 떨고 있는 내게 자신들의 목덜이를 던져주는것이 고작 이였다..ㅎㅎㅎ

그러다 나의 삼십년지기 친구인 미애가 궁리끝에

지금은 돌아가신 내 엄마에게 내가 납치직전 이라고 알리기로 하고

딸이 이브날 나가서 소식두절 되어 대문앞에서  초초히 기다리던 엄마를 모시고 왔다.

엄마가 나타나자 그는 언제 독하게 그랬냐는 식으로

90도로 넙죽 인사를 하고 그제야 나를 풀어주고

쌸랴쌸랴 대는 미군들을 데리고 사라져 갔다.

당시 엄마가 그상황을 묘사 하기로는

""니가 12시간 넘어도 오지않아 아버지 눈치가 보여 대문앞에서 발동동 굴리며 널 기다리는데 미애가 왔더라..해서 현장에 가보니 도영이 니가 뭘 뒤집어 쓰고<친구들이 던져준 목도리> 있길래 쟈가 누군가 했더니 딸인 바로 너더라...동네 창피하고 기가차서 증말..""

암튼 그사건 이후로 구박을 해도 초지일관 밀어 부치던 그남자.

우리집 안방에 군화발로 들어와 신문지 한장 깔고 앉아 아침까지 버티던 그남자.

당시 남동생 친구들중 인상 험악한 조폭 냄새 나는 애들을 풀어

겁을 줘도  눈도 꿈쩍 안하는던 그남자.

당시 고등학생 이였던 남동생과의 한바탕 결투에도

집요하게 따라 다니던 끝에..마침내 아버지가 감복?하셨다.

""도영아..저런 끈질김 하나면 뭐라도 하겠다 .니가 정싫음 살살 달래서 헤여져라 저녀석도 고향 가면 귀한 아들일테니..""

그리고 그후.

달콤한 연애가 아닌 .쫒고 쫒기는 스릴 있는 연애를 하면서..

남편에게 선택 받은 여자가되어.

남편 제대 보름만에 결혼식을 하고보니

대소가 많은 집안에 종부란 자리가 떠억 허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시집살이와 문화가 딴판인 경상도에서 적응도 쉽지는 않았지만.

22년 세월이 흐른 지금의 내남편은

친구들이 말한 독종도 아니고 개뼉다구도 아닌

부모님께는 효자요.

마누라에게는 무조건 져주는척 하고

두 아들들 한테는 너그러운 아버지 이다.

다만 남편의 배경은 아직도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더 좋은 조건의 배경보다

남편의 성실함과 아내에 대한 일관적인 사랑은 견줄수가 없기에.

22년 살아본 결론을 엣세이방에 내릴까 한다.

다시 세월을 22년 거꾸로 돌려 놓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 하겠냐?

누가 묻는다면 조금은 망설이다 " 흠...yes.."라고 할것이다.

그리고 이글을 읽는 결혼 초년생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한마디 한다면.

""남편을 내손에 넣으려면 시댁식구들을 꽉 잡아라..""

시댁식구에게 잘하려고 노력 하면 남편은 저절로 아내에게 후해지니..

주걱턱도 대머리도 옥니도 다소 별난 시집 배경도

성실하고 어진 남편 하고는 게임이 될수가 없더란 말을

이번 기회에 강조 하고 싶습니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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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오늘 22년전 낳은 저의 큰아들이 두시간전 해병대에 입대 했습니다.

조국의 부름으로 조국의 바다를 지키려고 송다의 태풍을 뚫고 입대 했답니다.

 남자라면  다가는 군대지만 시어머니의 눈물과 아들의 붉어진 눈자위를 보고

저역시도 울컥 눈물을 쏟았답니다.

아들이 스무두살에 입대 하던날  스무두해전에 이야기를 우연히 올리게 되었네요

엣세이방님들 저 위로 좀해주세요.

 

 

마음이 휑한 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