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써늘한 바람이 겨드랑이 사이를 간지르며
한편으론 온몸을 휘감아 돌아나간다.
6년전까지만해도 난 결혼이란걸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였었다
처음엔 나 자신에게 자신이 있어서인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나 보다(가족이 아닌 남과 그것도 남자와 산다는거에---)
특별히 내세울 미모도(그래도 미인이라 봐준 남자는 몇 있었수 믿지 않겠지만 ㅋㅋ),
학벌도, 직장도 별로면서 무얼 믿고 그랬는지 남들 생각도 하지 않는 고고함을
나름 즐기며 주변에는 "난 독신으로 살거야! 왜 여자가 혼자 못사니 얼마든지 혼자
살 수 있어!" 라며 자만을 부렸다
그런 자만이 깨진것은 30이라는 숫자를 넘기고 주변에서 친구와 친히 지내던
동생들이 떠나가면서였다.
누가 말했던가 "결혼은 혼자가 외로워 둘이 하나가 되는거라고---"
진짜 그랬다.
주변에서 사람이 하나 하나 떠나가자 그 텅빈자리가 여간 크게 느껴지는게 아니었다.
그러던차에 직장동료이며 전에 한사무실에 있던 지금의 작은 시누에게서 조심스레
물어보는 전화가 왔다
"언니! 혹시 만나는 사람 생겼어?"
콱 꽂이는 여자의 예감
"아니, 회의 때문에 바쁜데
소개해 준다는 사람은 있는데 만날시간이 없네, 왜? 할 말 있음해----"
그 와중에도 한번 튕겨봤다(그러다 아주 튕겨졌음 어쩔뻔 했어 휴우--ㅋㅋ)
"으응, 다름이 아니고 전에 내가 소개해 줬던 우리 큰오빠 아직 애인 없는데
엄마가 언니 만나는 사람 아직 없음 다시한번 만나게 해 달라해서 안 될까?"
속으로야 그때 싫지 않았지만 연락이 없었으니 존심에 그냥 허락하긴 그렇고
그렇다고 둘러대면 속모르고 싫다한 줄 알고 끊을거고 짧은 순간 여러생각이
오갔다.
"으응, 한번 안됐는데 두번째라고 될까 싶네---"
"싫은거 아님 한번 더 만나봐라 언니, 또 보고 아님 말지 뭐-, 부담갖지 말고
나와서 차 한잔 한다 생각해"
"그-으-래, 그러지 뭐"
전화 받기 2년전 늦여름으로 기억되는 어느날 그때도 작은시누로부터
오빠를 소개해 준다는 연락을 받고 커피숍에 들어섰던 난 삐쩍마르고 얼굴은
온통 기미로 뒤덮힌 새까만 얼굴의 남편과 첫만남을 가졌다.
이목구비는 잘생겼는데 홀로 생활을 하다보니 잘 챙겨먹지도 않고 대충대충
살며 일에 치여 털털한 지금의 성격대로 살다보니 영양도 피로도 쌓여 그랬었던
모양이다
그때 콩껍질이 씌였는지 다른때 같으면 "별로네, 차나 한잔 하고 빨리 가야겠다"
했을텐데 웬걸 이남자 웬지 안쓰럽고 계속 만나게 되면 밥 좀 잘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거다(미쳤지 결혼 안한다고 큰소리 쳐놓고 무슨생각을 하는거야 했다)
하여튼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이남자 나중에 전화드릴께요 하더니 감감무소식---
전화 할려고 했었는데 일이 바빠 좀있다 해야지, 좀 있다 해야지 하다 시간이
지나니 미안하고 그러다 잊었다나---
(누군 모처럼 맘에든 남자라 생각했다 딱지라곤 별로 안 맞아봐서 자신했다
전화 기다리다 속좀 상했었는데---)
이유야 어찌됐든 그런남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니 한편으론 말도 못하고 연애라곤
못해본 나로썬 설레는 기분이었다.
그 앞전에 몇번 선본 남자들이 계속 만나자고 연락와도 싫다고 버티던 내가 몇년전
한번 본 남자 때문에 떨리다니 좀 우습기도 했다.
만나기로 약속한날 작은 시누와 약속을 했다.
지금의 시어머니(엄마라고 부름)도 궁금해서 같이 나오신다고 해서 좋다했다
차라리 덜 불편할 것같아서(남들은 날더러 거꾸로 생각했단다)
만나기로한 약속장소에 도착한 난 어리둥절해야 했다.
얼굴 새까맣고 삐쩍마른 남자가 앉아 있을 줄 알고 나갔던 자리에
적당히 희뿌연 두리뭉실한 남자가 앉아 있는거다
작은시누에게 물어보니 일 그만두고 시골에서 한6개월 쉬며 잘 챙겨먹고
겨울이라서 햇볕에 얼굴이 타질 않아서란다.
꼭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기분이었다(물론 맘속으론 좋았죠-옹 ㅋㅋ)
예비 시어머니, 작은시누, 시누 아이둘, 남편과 5:1데이트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처음인 자린데도 편안하고 평상시 나 답지 않게 엄마와 시누, 나 셋이서
많이도 쉴새없이 웃고 떠들었다(커피숍 접시 다 깨졌을거다)
우스웠던건 맛선보러 온 남자가 사라진 것도 몰랐다는거다(대단한 세여자---)
한참 떠들다 보니 사람이 없어서 찾아보니 우리가 너무 재미있게 얘길 하는것
같아 조카들 데리고 커피숍 구석에서 놀고 있었단다(지금 생각해도 기막힌다)
얼마동안의 두사람만의 시간을 재미있게 가진후 이남자 일요일날 시간이
어찌 되냐며 시간 비워두란다 전화할지 모른다고---
물론 가볍게 튕겼다
속없는 여자는 평상시 답지않게 얼굴 부을까봐 일찍 일어나 튕기던 마음은
어디두고 전화옆에 하루종일 앉아 있어야했다.
그날저녁 있는대로 화가 나 내 다시는 기다리나 봐라 했다.
다음날 저녁 9시가 좀 넘어 전화가 왔다.
한편 반갑고 한편 쥐어박고 싶었다
"접니다! (멋없는 목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다)
뭐해요? 저녁은? 일찍 쉬어야 낼 직장에서 안 피곤하죠." 그리고 몇마디 끝----
어쩜, 어쩜, 얼굴 보고 얘기할 땐 잘도 하더구만 전화론 의례적인 몇마디가 끝이다.
그리고 만나자는 말고 없이 한열흘 저녁을 똑같은 멘트를 날리며 녹음된
테입처럼 몇마디후 전화를 끊곤했다( 나중엔 열나는데 존심에 말도 몬했다 )
당시 친정엄마 모처럼 노처녀가 남자전화가 오니 기대했다가 10분도 안돼
전화가 끊기니 몹시 궁금했던지 일주일이 지나니 전화내용을 물어본다
들은대로 얘길하니 어쩜 둘다 그리 똑같냐며 그러니 연애를 못하지 한다. ㅋㅋ
이렇듯 연애도 제대로 못해본 두 늦다리가 결혼은 또 쉽게 했다
5개월간 철로처럼 앞만보고 가던 두사람이 그흔한 연애 경험자들의 얘기속에
등장하는 감미로운 키스며, 팔짱 한번 제대로 못껴보고 양가상견례에서
일사천리 결혼날짜 얘기가 오가더니 결혼행진곡 속에 팔짱을 끼고 걷고 있었다
그렇다고 후회하진 않는다
어차피 콩껍질은 처음 새까만 기미낀 얼굴의 남자를 만났을 때 씌어버렸으니
그 많은 남자를 선 본들 마음에 들리가 없었지이----
물론 외형적인 모습에 반해 남편과 결혼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주변에서 소개며, 선이라는 걸 보라 해서 만난 사람도 적진 않다.
허나 대화속에서 진실함과 같은생각, 느낌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것 같다
비록 학력은 나보다 못했지만 남편은 모든면의 시사에 밝아 대화중 막힘이
거의 없었다.
알고 보니 신문과 사설, 뉴스를 거의 흩다시피 보는 습관이 있어 그랬던 모양이다.
결혼식장에서 보았던 희뿌연 얼굴은 어디가고 지금의 남편 얼굴은 거의 까맣다.
논과 밭을 일구며 자신은 농사가 자신에게 맞는거 같단다.
지금도 언제나 제자리에 놓여있는 밥통처럼 또한 질릴듯 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밥알처럼 무뚝뚝하면서도 가끔 나를 감동시킨다.(가뭄에 콩나듯- ㅋㅋ)
신문지에 돌돌 말아들고 오는 시든꽃이며, 흙덩이가 먹을 재료보다 더 묻어있는
감자, 고구마며, 새까만 얼굴로 기대에찬 어린애 얼굴을 하며 "널 위해 가져왔단다"
한편으론 조선시대 남존여비, 남아선호사상이 꽉 들어찬
밖에서만 풍류객인 남자지만 한번씩 드러내는 그런 천진난만함에
속없는 이여자, 오늘저녁은 뭘 먹일까 고민하며 이 글을 남김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