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태국의 음주 규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17

아버지와 함께한 여름휴가이야기


BY 반짝반짝 2004-09-06

 마음만이라도 함께한 대가족 남해여름휴가 사진입니다.

 

매년 돌아오는 여름휴가때가 되면 맘한구석이 싸늘하게 식어옵니다.
놀기좋아하고 떠나기좋아하시던 아버지가 일년중 가장 기다리는때는
바로 여름휴가때입니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칠십(70) 평생가까이 사셨던 아버지는
기껏 떠나봐야 읍내시장이나 복상꽃잔치가 전부이셨지요.

그리고 흩어진 자식들을 보는 낙으로 사셨던 아버지가
이집저집 며칠씩 다니시는것이 여행이면 여행이였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2년전에 지상에서의 마지막 휴가를
우리들과 보내고 훨훨 날아서 하늘나라로 가셨지요.

대가족인 우리집은 돌쟁이 아이에서부터 아버지까지
다 모이는 유일한때가 바로 여름휴가입니다.

딸들로 구성되어있기에 여름휴가만큼은 친정식구들과
함께 보내기로 10년전부터 약속을 해서 지금까지 변함없이
여름휴가땐 다 모입니다.

아버지가 떠난 그 해 여름휴가는 특별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당신이 마지막이라는것을
너무나 잘 아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욕심이라고는 절대 없으셨던 당신께서 그해 여름휴가는
아버지가 원하는곳을 꼭 가자고했었지요.
바로 셋째언니 사돈이 사시는 남해였는데
살아생전 그렇게 가고싶어하셨습니다.

20명이 넘는 대가족이 이동하는데는 만만찮은 경비.숙소.먹거리..
하나에서 열까지 불편한것이 너무 많았기에
아버지가 계시는 시골집으로 잡아놓고 가까운 바닷가로
이동을 하는것이 우리집 휴가방식이였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큰맘을 먹고 남해로 떠날려고햇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간암말기라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휴가를 얼마남겨놓지않고 벌어진 상황이라서 어떻게 해볼수도
없이 아버지의 몸상태로 보아선 남해로 떠나는것이
무리였습니다.
남해로 떠나자는 계획을 접고서
다른해와같이 아버지가 계시는 시골집으로 모든 자식들이
모였습니다.

자식들이 모여서 먹고 노는것을 보시는것만으로도
너무나 흐뭇해하셨는데 당신께서 몸져 누워계시니
너무 미안하다며 우리들을 먼저 배려하신 아버지의 눈망울이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여름휴가 내내 우리집은 아버지때문에 웃음이
끊어지지않았습니다.
간암말기라서 몇달을 채 살지못하셨지만
아버지는 다른해보다 더 표정도 좋으시고 얼굴에 웃음도
많이 지으셨습니다.
별로 우습지않는 손자의 이야기에도 얼마나 크게 웃으시는지
정말 아버지가 너무나 건강한 사람같아 보였을정도입니다.

그동안,,,,,,,,

각자 살아오면서 형제들끼리 가족끼리..그리고 엄마아빠의 부부끼리..
맘을 터 놓고 이야기할 시간이 많이 없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 서로들 살기바빠서 일년에 연락을 하지못했을때도
있었고 나의 언니가 나의 오빠가 어떤 음식과 음악을 좋아하는지
통 모르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아버지가 마련한 그 이야기장엔
눈물도 웃음도 한도 모두모두 쏟아내면서 밤새 가족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비록 슬픈그늘이 우리가족에게 닥쳤지만
현실은 무시할수없으니 그 슬픔을 최대한의 기쁨으로
승화시키려고 우리가족은 노력했었습니다.

아버지의 일화중 하나에
육이오(6.25) 사변 이야기가 있습니다.
굶는날이 더 많았던 어린시절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검정 고무신을 사 주셨나봐요.
그래서 아버진 너무 좋아서 그 고무신을 평소엔 신지도 않고
품에 안고서 동네친구들에게 자랑하면서 아끼고 아끼셨다는군요.
잘때도 머리맡에 고무신이 없으면 안될정도로 검정고무신을
좋아하셨는데
인민군이 아버지동네로 와서 그 검정고무신을 가지고가고말았답니다.
그래서 열흘동안 고무신 빼앗긴것이 억울해서 밥도 안먹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하셨지요.
우리형제들은 다들 아버지의 순수한 그 마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좋아라 이야기하는 13살의 아버지로 돌아간듯해서
너무 기뻤습니다.
아버지도 우리처럼 어린 시절에 어린동심을 가지고 계셨다는것을
그해 여름 휴가때 처음 알았습니다.

휴가생각하면 어른이나 아이나 떠난다는 자체가 너무
가슴이 설레이잖아요.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는데도 아이보다 내가 더 밤잠을
못잘만큼 설레이는때가 있습니다.
아버지도 우리 아버지도 어린마음처럼 그렇게 휴가를 기다리고
기다렸나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처럼 우리가족이 하나의 사랑으로 뭉쳐진 때가 없었는것같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이야기를 너무나 천진난만하게 하시면서
표현하는것에 너무나 인색했다는 소리를 하셨지요.
나는 아버지가 무뚝뚝하고 말씀도 크게 없으셔서 그냥 감정이
없는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어린시절 내가 생각하기론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면 다들 우리아버지처럼 입을 다무시는것인줄 알았지요.


그해여름의 휴가는
아버지가
우리형제들이 앞으로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며 서로에게 행복을 줄수있는지를 가르쳐주고 가셨기에 특별할수밖에 없습니다.

암세포의 진통을 참아가면서 활짝 웃으시던 아버지의 해맑은
얼굴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다음해 8월에 우리형제들은 엄마를 모시고
아버지가 그렇게 가고싶어했던 남해의 작은섬으로 떠났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원했는 바로 남해로 여름휴가를 2박3일 보내고왔습니다.
아마도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며 별 탈없이 우리들을
지켜보았을것으로 생각해요.
마음만 간 아버지도 행복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버지...올해도 우리 자식들이랑 여름휴가 함께 보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