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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줄을 찾지 못한 여인


BY 바람꼭지 2004-08-20

전래동화의  오누이가 호랑이에 쫓기어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던 말들을 생각해보았다.

<우리를 구해주시려면 튼튼한 새동아줄을 내려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썪은 새끼줄을 내려주십시오. >

난 한 여인에게 새 동아줄을 가장한 썪은 새끼줄이었다.

 

 

보라색 옷을 즐겨 입던 도라지꽃을 닮은 단아한 여인, 이름은 여기서 편리하게 훈이엄마라 하자.

 

훈이 엄마를 처은 알게 된 것은 한 이년전 쯤 가을이었다.

 처음엔 시내버스안에서 옆자리에 앉기도 하고 때로 시장본 짐등을 들어 주기도 하며 친해졌다.

 대화 중에 부끄러운 미소를 살짝 지을 때면 나보다 나이가 한 두살 적게 보이기도 하고

어느 때 어른스런 말투로 의젓하게 말하는 투가 그 반대로 두어살 많아 보이기도 하였다.

 

 

마음으로 많이 가까워졌다 싶을 때 우리집 전화번호를 물었다.

< 왜 손전화로 해도 되는데?..>

그는 집전화로 해야 욛금이 적게 나온다고도 하고 밤늦게 전화해도 되느냐해서 그러라고 했었다.

 

정작 밤늦게 전화를 한 적이 두어번 있는데

예의 수줍은 모습이 수화기 너머로 보이는 듯한 여린 목소리로그는

그냥 전화 해봤다고 하였다..

뭔가 할말이 있단 예감을 느꼈지만  캐물을 수도 없고 전화로 더 이상 말을 주고 받진 못했다.

 

얼마전의 일이다.

시외 버스 터미널에서 우연히 마주치자그가 얼마나 반가워 하든지 우린 이산가족 상봉한 듯 서로 끌어 안고 팔딱팔딱 뛰었다. 그리고 내가 완행버스를 타자 좌석 버스 타련던 것을 그만두고 완행버스에 오르는 것이었다.

훈이 엄마는 딸을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하면서도 내가 내리는 사거리에서 나를 따라 내렸다.

서로 커피를 사주려고 우기다가 편의점에서 우유하나씩을 나누어 먹었다.

 

우유 하나 마실 동안의 짧은 시간에  그 여인은 그 동안 하고 싶었던 아니 참았던 말을 하는 것이었다.

 

결혼후 몇 년 안되어 신혼의 단꿈도 저버리고 저 세상으로 떠난 남편, 몇 년뒤 교통사고로 중학교 1학년때 아빠를 따라 하늘로 간 딸, 외출시간도 허락을 받아야하고 용돈도 허락 받아야 쓰는 완고한 시어른을 모시고 사는 고달픔, 시어른의 위암 발병에 따른 병구완, 힘든 농사일등...

 

몇 마디 말로 그녀의 살아온 세월의 무게와 연약한 몸으로 감당키 어려운 삶의 애환을 위로 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봄에 볼 때의 흰 피부가 약간은 검게 변 한 것과 몸이 피곤하고 아프며 다리와 허리도 관절아ㅣ 안 좋다고 해서 모든 일을 제치고 건강진단을 받아 보라고 권유했다.

시어른의 건강도 잘 돌보살펴드려야 하겠지만 자기 자신의 몸부터 챙기라고 그랬더니 무서워서 병원에 도저히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만약 암이라도 걸렸으면 어떡하느냐고..

 

 

그저께 그 동네에 사는 다른 아주머니가 출근길 버스에서 내게 다가 왔다.

 

훈이 엄마에 대해 묻지도 않는데 자청해서 얘기를 했다.

 훈이 엄마가 며칠전 죽었는데 간암이었다고 나를 보고 싶다고 말 한 적이 있다고...

 " 나, 그 어마이 너무 너무 좋아여 " 하더라는데..

보라색 옷과 고운 미소가 눈 앞에 선명하게 나타났다.

 내게서 무슨 그녀의 외로움과 아픔을 구해 줄 동아줄이라도 발견 해던 것일까?

난 단지 썪은 새끼줄 이었을 뿐인데..

 

아무런 슬픔의 위안도 되지 못하고 이제껏 잘 견뎌나왓듯이 참고 사노라면 아이들이 다 자라고

행복한 나날이 올 거라고 거짓 희망을 심어 줬을 뿐 이었는데..

 

훈이 엄마가 자기의 삶의 인간 관계를 참고 견디기 보다는   진정한 자기 자신의 행복과 웃음을 위한 돌파구를 찾았더라면 그런 엄청난 병에 걸리지 않았을 지 모른다.

 

 

삶에 있어 진정한 자각은 너무 늦다는 것을 한 번 더 깨달았다.

 

살아 있을 때 누구나 잘 알지만 자기 자신의 건강을 소중히 하자.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는 알맞게 일하기, 배고픈 이후에 배부르게 포만감을 채우기 보다는 적당히 목마르거나 음식이 생각날 때 먹기, 잠도 적당히 자고 인간관계도 지나친 집착이나 사랑이 없는 평상신의 마음으로 살아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다 같이 사는 동안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자

... 기도하는 마음으로...

훈이 엄마 좋은 곳으로 좋은 모습으로 환생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