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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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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BY 옛 이야기 2004-08-20

나이가 들어 갈수록 어릴적 기억들이 왜 이리 또렸해 지는지 모르겠다.

별반 귀하게 자라지도 못했고, 잘 먹고 잘 살지도 못했던 그 시절이....

지금은 먹고 살만 하다는 반증일까.

허긴 옛날에 비하면 지금의 생활은 어느 부자 부럽지 않다고 말 할수있지.

 

우물이 없어 남 의집 눈치 봐가며 물 길어 오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부엌이든 ,화장실이든  수도 꼭지만 틀면 시원스레 물 이 쏟아진다.

어릴때 소원이 집 안 마당가에 우물이 있는거였다.

 

기와집에 사는 부자들은 당연히 우물이 있었지만, 보통으로 사는 집 들은

우물 있는 집 이 드물었다. 집 에 우물이 있다는건

괜찮게 산다는 표시처럼 여겨졌다.

남 의 집에 물 길러 간다는게 그리 쉬운 일 이 아니었다.

 

어떤 집 들은 물 인심이 야박해서 가까운집

우물을 두고 동네 반 을 지나서 혼자 사는 할매네 집 까지 가서 물 을 길어다

먹었다. 비록 마당에 물 흘리면 잔소리를 하였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 할매가

사시면서 큰 덕 을 베풀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물 을 길어 주었지만 바쁠때는 내가 담당이었다.

 

지금도 비쩍 마른 기집애가 물지게를 지고 가쁜 숨 을 몰아쉬며 물 길어 오던

모습이 잔영처럼 남아 있는듯하다.

그때 우리집 가까이에 내 친구 집 이 있었다. 꽤나 살림이 넉넉하였고

부엌앞 장독옆에는 우물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친구네 샘 물은 여름이면 유난히 차갑고  맛 이 좋아서

사람들이 좀 길어다 먹었으면

했지만 사람 들락 거리는걸 싫어하는 친구 엄마 때문에 어려워서

다 들 발걸음을 못하고 있었다.

같은 반 친구 였는데 그집 아지매 성격이 워낙 차가워서

말 붙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길 에서 만나면 인사를 해도 웃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 갔다.

엄마도 그 집 에는 물 길러 가지 말라고 했다. 싫어 한다고

그래서 탱자나무 울타리가 빙 둘러 쳐진 그 친구네

골목길을 일부러 지나쳐서

다리가 아프게 물 길어 오던 기억이난다.

 

그렇게 차갑던 친구 엄마가  남편이 갑자기 죽고

큰 아들이 말썽을 피우자 어느날부터인가

우리집에 놀러도 오고 물 길어다 쓰라고 인심을 썼다.

그때는 이미 마을에 상수도가 들어와서 

한결 물 이 풍족해 졌을때 였다.

엄마가 농담처럼 그러게 진작에 인심 좀 쓰지 그랬노 우리 딸 이 맨날

그 집 샘 있는거 부러버 안했나.

 

항상 자기네가 잘 살고 우리는 못 살거 같아서 무시를 하였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 친구는 보험을 다니는데 느닷없이 어느날부터 친한척을 하면서

안부 전화를 자주해 왔다.

어릴적 친구라는걸 강조 하면서 그래도 내 친구는 엄마 안 닮아서

 

성격이 좋고 인정도 있는 편이다. 이왕이면 싶어서

필요한 보험은 친구한테 들었다.

형제들이 하나같이 고생을 하고 있었다.

친구 엄마는 당뇨로 오랫동안 고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엄마는 우리집보다 잘 사는 사람에게 비굴하지 않았으며

나보다 못한 사람을 낮춰 보지도 않았다.

 

언제나 열심히 살려고 애를 썼고 남 헐뜯을 시간 있으면  자식들

옷 만들어 입히느라 바지런을 떨었다.

누가 마실와서 남 흉 을 봐도 그러려니 여기며 말없이 들어 주었다.

 

또 다른 이웃중에 남 을 업신여기고 인심이 고약했던 아지매가 있었다.

그 집 이 딸 만 넷이었는데 딸 들 이 돈 벌어다주어서

잘 나갈때는 정말 대단 했었다.

엄마를 닮아 딸 들도 거만하고 잘 난 체를 하는 성격이었다.

우리집이 자기네보다 못 산다고 대놓고 무시를 하는가 하면 입 만 열면

동네 사람들 흉 보느라 바빴다.

 

그 집 이  남보다 일찍 텔레비젼을 샀는데  엄마가 못가게 해도

호기심에 몇번 가서 보곤 하였다.

그 집 세째딸이 나하고 친해서 빽 믿고 가서 보았는데

 

어찌나 별난지 그 집 식구들 눈치 보느라 제대로 연속극도 못볼 정도였다.

내가 옆에 있는데도 자기네 식구들끼리

고구마니 과일등을 먹으며 유난을 떨었다.

 

세월이 흘러 딸 들도 다 시집을 가고 그 아지매도 나이가 들어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되었다.  어느때부터인가

혈압이 높고, 눈 이 나빠져서 사람을 겨우 알아볼 정도로 병 이 들었다. 

어디 다니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는데 엄마가 보기 안 됐다면서

맨날 들여다보고 먹을거 갖다주고 그랬다.

 

내가 친정가면 꼭 떡 이니 음료수 사다가 인사 하라고 시켰다.

처음에는 솔직히 마음이 안 내켰지만 기가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

이내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나중에 돌아 가실때 대 소변을 못 가릴때 엄마가 뒷 치닥꺼리를 다해 주었다.

큰 딸 하고 같이 살았지만 장사를 하느라 밤 늦게야 들어오니 하루종일

방 안에 텔레비젼 켜놓고 누워만 있는게 일상이었다.

엄마는 매일 가서 기저귀 갈아주고 밥 함께 먹고

돌아 가실때까지 돌봐 주었다.

 

엄마는 늘 말 하기를 사람 일 모린다. 양지가 음지 될때가 있고 음지가 양지

될때가 있느니라. 절대로 사람 아래로보고 무시하면 못 쓴다고 입버릇처럼

그랬다. 어렸을때는 엄마의 그런 말 이나 행동이 이해가 안 갔으나

이제는  그 깊은 속 뜻 을 알것도 같다.

비록 많이 배우지는 못했으나 지혜로웠던 엄마였다는것도 이제는 알겠다.

 

날씨가 선선해지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일까. 문득문득 그립고 보고싶은

혈육의 정 이 새삼 더해만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