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은 바다로 향했다.
태풍이 빗겨간 성난 동해바다가 우리를 불렀다.
"내 푸른 가슴에 안겨보세요~~"
우린 감사하게도 주차 요금도 모래세도 내지 않았다.
모래위에 자리를 깔고 텐트를 쳤는데 돈 안 받는 곳에 우연하게 안착을 하게 된거였다.
이 바다는...
남편과 아이들과 자주 왔던 곳이다.
툭하면 바다 가자 하면서 때론 안개 널널한 한계령을 넘고
고향 길목을 스치는 대관령을 지나고
곤두박질칠 것 같은 어지럼증의 미시령을 꿀꺼덕 넘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도박을 하다 새벽에 들어와도 아침이면 벌떡 일어나
가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잘못함을 무마하기 위해, 피곤한 기색도 내지 않고
동해안으로 잘도 떠나곤 했었다.
난 알고 있었다.
남편이 도박으로 인해 새벽에 들어왔다는 것을
그리고 그 걸로 인해 집안이 송두리채 뿌리 뽑힐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위해 나를 위해 남편과 같이 동해로 떠나야만 했다.
집에 있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고 여행비를 아낀다고 해서
뽑힐 기둥이 똑바로 서 있지 않을 것임을 난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남편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떠날 땐 가슴에 쇳덩어리를 안고 동해로 출발을 했지만
아이들이 바다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내가 바다를 보며 가슴에 있는 덩어리를
잠시라도 쓸어 내릴 수 있어 고등어처럼 등푸른 동해 바다가 좋았었다.
한 여름에 그것도 한창 휴가철인 8월 초입에 동해로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해는 농가 울타리에 복사꽃이 피는 봄에 오거나
가을이 쓸쓸히 내리는 날 가거나 겨울 눈발이 솔솔 뿌려질 때 와 보고
여름 휴가철에 이 바다로 떠난 다는 건 처음이라 생소하고 겁이 좀 났었다.
소문으로 듣자면 여름 휴가철의 동해바다는 사람에 치이고 차에 걸려 꼼짝을 못하고
고생만 직살나게 한다고 북쪽인 일산까지 소문이 떠들썩 했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여기에 잔치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리 밀리지도 그리 복잡하지도 그리 험난하지도 않았다.
소문나지 않은 해수욕장을 잘 찾아 들었기 때문이겠지만...아주 아주 다행이었다.
지금 한여름 동해 바다엔 내 아이들은 없다.
딸아이는 처음부터 휴가를 아빠랑 둘이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들아이는 엄마를 생각해서 눈치를 보다가 결국은
"엄마 혼자 다녀오세요.전 아빠랑 갈래요."했다.
우리 부부는 오래전부터 남남으로 살았고 몇년전엔 남보다는 못한 남남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그 사람의 핏줄이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천륜인 것을...
나는 나대로 여행 가방을 챙기고 아이는 아이들대로 가방 하나를 챙겨주고
같은 날 다른 장소로 휴가를 떠났다.
아이들은 고속기차로 부산 해운대로 간다고 했다.
남편은 이주일전에 같이 휴가를 갔음하고 전화를 했었다.
남편은 나와 남남이 될 때 자리를 잡으면 다시 시작할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난 아니었다.두번 다시는 달빛이 창백하게 스미는 창가를 바라보며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 남편을 창백하게 기다리고 싶지 않다고 남편에게 말했었다.
그걸 남편은 잊었나보다.수없이 많은 밤과 아침을 나 홀로 남겨둔 것을 잊었다보다.
담배 냄새에 찌들고 밤새도록 도박을 하느라 도박이 그려져 있는 몰골로 들어와서는
도박에 지쳐 방바닥에 쪼그리고 잘 때,
혼자 거실로 나와 눈물로 아침을 맞이한 걸 남편은 모를것이다.
빚을 갚으라며 내게 전화를 하고 친정집에도 전화를 해 대고
현관문의 벨을 신경질나게 눌러대던 빚쟁이들을...
그 많은 빚쟁이를 자기 손으로 잘 빚어 만들어 놓고 본인은 벌써 잊었나보다.
홀로 바다를 보았다.
눈이 부셔 갈색 썬그라스를 끼고 갈색빛이 스민 모래사장을 오래도록 보았다.
파란물에 하얀 파도에 몸을 부딪히며 와하하핫~~웃고 있는 가족들을 또 오래도록 보았다.
그러다 아이들이 보고싶어 문자를 보냈다.
"같이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아빠에게 잘해 드려라."
딸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장이 왔다.
"아빠랑 해운대야.엄마도 즐겁게 지내다 와."
아이들을 같이 만든 남편이라는 사람은 지금에 와선 남보다도 못하구나...
남하고는 이박삼일동안 놀러오고 숟가락을 비벼대며 찌개를 떠 먹고
한 이불속에서 얼굴을 맞대고 자기도 하는데...
부부란 참으로 이상하고 야릇하고 묘한 사이구나 했다.
지는 해를 보며 동해를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또 하나의 문자가 왔다.
아이들 아빠였다."같이 왔으면 좋았을 걸.오늘 당신 생일이었네.생일 축하해."
언제나 자상하고 다정했던 사람이었다.생일 잘 챙겨 주었고 결혼기념일을 잘 알고 있었다.
찬밥 먹으면 못 먹게 하고 자기가 먹던 사람이었고,
아프다고 하면 뛰어가 약 사오고, 여행가고 싶다고 하면 어디든 가 주었고,
사고 싶은 거 맘대로 사라며 카드를 내 손에 들려주던 사람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항상 빌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만난 남자들 중에 제일 착하고 오랫동안 나만을 사랑해 주던 사람이었는데...
딸아이가 큰 눈에 눈물을 그득 담아 놓고 이렇게 말했었다.
"엄마에겐 나쁜 남편이었지만 나에겐 좋은 아빠였어.
대학 졸업하고 취업하면 아빠는 내가 모시고 살거야."
토끼란 별명을 가진 딸아이 눈에선 토끼눈동자 닮은 붉은 눈물이 투둑 투두둑 떨어졌다.
그래서 그래라 했다.
너에겐 하나밖에 없는 아빠니까...
지금 아이들도 해운대를 벗어나 아빠랑 조잘조잘 떠들며 저녁을 먹으러 가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