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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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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린 빗물


BY 동해바다 2004-08-19



    지금도 여전히 비는 하늘에서 쏟아붓고 있다. 
    어제 일을 생각하면 끔찍하기도 하고 무리한 산행이긴 했지만 동행한 사람들의 
    툴툴 거림이 산을 타는 기본이 없는 몰지각한 푸념인 것을 왜 몰랐는지 새삼 
    두렵기까지 했다. 

    누가 산을 얕보는가. 
    산을 오르며 백두대간의 능선을 타는 날렵함에 스스로 자화자찬하며 뿌듯했던 산행 
    전반은 후반에 있을 악몽과도 같은 고생길을 모르고 희희낙락 다시 뭉친 어제의 
    용사처럼 8월의 숲속 길을 씩씩하게 헤쳐 나갔다. 

    일정이 잡혀져 있는 산행일지라도 우천시 당연히 취소할 것이라는 예측을 뒤엎고 
    무조건 산행 을 감행하였다. 나 역시 무척이나 기다렸던 산행인지라 모두를 믿고 따라 
    나섰다. 

    호우경보까지 내려진 영동지방에 전날 내렸던 장대비는 웬일인지 이른아침 말끔하게 
    개어 있었다. 무사히 잘 다녀오라는 계시였을까. 
    석달째 똑같은 출발지에서 다른 코스로 산을 타는 백두대간행... 
    오히려 안개에 쌓여 하차즉시 잠바를 껴 입었던 날씨였던 출발지 싸리재가 그날따라 
    맑은 하늘 지붕삼아 연보랗빛 꽃천지로 산초입에 모인 우리들을 충분히 안심시켜 
    놓았던 것이다. 

    산에 오른다 하면 우뚝 솟은 산정상까지 땀 뻘뻘 흘리며 정상을 정복했다는 희열감에 
    이구동성 '야호'를 외쳐댄다. 그리고 출발지와 같은 곳으로 다시 하산하거나 아니면 
    다른 코스를 택하여 하산한다. 
    하지만 두번의 백두대간 능선을 타면서 그 아름다움과 매력에 반해 개개인이 아니면 
    절대 가지 못할 백두대간의 구간을 능수능란하게 다니는 산악 대장에 의해 더불어 
    경험한다는 것이 특혜받은 산악회원이라는 것을 인지하며 힘들어도 묵묵히 산따라 
    몸을 맡긴다. 

    물... 
    사람이 물없이는 살수 없다는 말을 누누히 하면서도 체감하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가 
    없다. 지난 달의 산행에 물이 남아 태반이 그냥 가져간 경험으로 이번에는 거의가 물 
    한통만 준비해 간 실수였다. 
    이번의 산행이 장시간임을 간파하면서도 미처 대비하지 못한 무지함이 큰코를 다치게 
    한 것이다. 점점 지쳐갈수록 몇모금 남지않은 물이 아까와 입술만 적시는 정도까지 
    오게 되었으니 불안감이 다가와 몸은 더욱 처질수 밖에 없었다..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천둥이 그칠줄 모르고 몸서리 쳐 댄다.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듯 우리들의 마음은 다급해지고 몸은 말을 듣지 않아 점점 
    처지면서 탈진하는 회원들이 생기게 된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길, 후미를 놓치게 되면 되지 않는 상황에 자꾸 가는 발길 
    멈추게끔 일은 벌어지고 만다.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면서 갈증은 나고 물 한방울 남지 않은 모든 회원들은 
    이것은 산행이 아니라는 투덜거림이 나오기 시작한다. 
    산행초보에서 이렇게 장시간의 산행에 합류할수 있는 회원으로 향상된 것이 흡족했던 
    나 역시 지옥훈련인것만 같아 대장에 대한 원성이 절로 나오게 된다. 

    결국 환자발생에 대장이 업고 올라가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빗줄기는 굵어만 간다. 
    우리에겐 그야말로 단비였다. 
    내가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리라곤 어찌 생각했을까. 
    하늘 향해 입벌리지 않나, 챙모자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줄기를 물통에 받질 않나, 
    나뭇잎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에 혀를 대지 않나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내 생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목 마른 자들에게 힘이 되어 준 비가 그리 고마울 수가 
    없었다. 

    입넓은 물통을 고목나무에 가져다 댄다.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나무에서는 껍질 사이로 
    골이 패인 곳에 물통을 갖다 대니 콸콸콸 빗물이 그 속으로 금방 모아진다. 
    껍질사이가 넓을수록 물줄기는 굵고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물통의 물이 고여 얼른 
    원없이 목을 축이면서 갈증난 회원들에게 건내주니 모두가 물 한모금이 시금치 먹은 
    뽀빠이마냥 걷는 발에 가속이 붙기 시작하면서 힘을 내기 시작했다. 
    비록 먹지 못할 물일지라도 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던 것이다. 

    탈진한 환자발생에 다급해진 상황이 우리모두를 긴장시켰던 큰 원인이였고 목을 
    축이게 된 빗물 또한 우리들을 살렸던 고마운 생명수였던 것이다. 
    
    아직도 하산길은 멀었는지 빗속에서도 오름길은 계속되었고 온몸은 우비를 입고도 
    발 속까지 젖어드는 힘든 산행과 점점 불어오는 산길에 흐르는 물이 불어나 혹시 
    휩쓸려 가진 않을까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했다. 뉴스에서 접한 조난자들을 보면서 
    태풍이나 호우주의보를 알고도 산행이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모두를 무식함으로 
    치부하며 편안한 쇼파에서 퍼질러 누워 한마디 툭 던진 것이 내 일이 되고 만 것이다. 
    다만 조난자가 아닐 뿐이였지... 
    상황은 비슷했기에 말이다. 

    오르막길은 이제 없는 듯 했다. 
    어둠의 숲속을 빠져 나오니 반가운 하늘이 보인다. 
    두다리 멀쩡하게 아니 씩씩하게 걸어 내려갈 수 있음이 산이 베푼 큰 축복이라 
    여기면서 물 한통으로 10시간 정도의 산행을 하려는 몰지각함에 깊은 반성 해 본다. 

    나뿐만 아니라 몇년 째 산을 타 온 회원들도 처음 당한 큰 경험이었다. 
    흐르는 냇물에 불어난 물 한통 받으며 귀하디 귀한 물의 중요함을 새삼 느낀다. 
    타는 갈증을 잎새 끝에 달린 물방울 하나가 목마름 가시게 할 줄 누가 알았으랴.. 

    경험을 함으로써 깨달음이 크다 하지만 너무 무모했던 산행같았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예정대로 했더라면 한시간 정도를 더 가야 했던 산행.. 
    목표지점까지 가는 시간이나 하산하는 시간이나 같다는 대장의 말에 모두들 지쳐 
    그냥 하산하자는 말들이 튀어 나온다. 
    거기에서 더 오르고 내려야 할 산행이라 생각 하니 더이상 걷는다는 것 자체가 
    죽음같았다.. 

    어찌 되었든 무사히 내려온 산행에 감사함을 거듭거듭 느껴본다. 
    아마 힘이 들더라도 물만 충분했다면 그나마 조금 참을수 있었을텐데 누누히 충분한 
    물을 준비하라는 대장의 말을 우이독경식으로 흘려 들었던 우리네의 잘못이 더 컸기에 
    무모한 산행이다 어떻다 말할 당당함은 없다고 본다. 

    살면서 겪은 물의 중요함을 새삼 느꼈던 산행.. 
    지금은 폭우로 변해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산에서 만난 비가 우리를 
    살렸다는 생명수였다는 사실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