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도시 낙동강 자락에서 모래알을 밟으며 내 꿈을 키워가던 어린 시절에의 향수...
내가 지금에 와서야 행복속에서 살았었음을 안다면 너무 늦는걸까?
이제는 나루터도 사라지고 쭉뻗어 곧은 다리를 거대한 콘크리트 교각이 떡하니 받치고 서있다. 이름하여 산호대교. 낯선 풍경에서 또다시 서먹해 하며 떠나온 지난 날을 나 다시 동심의 눈으로 그려 본다.
아련히 먼기억으로 그려내는 파스텔조의 은은한 시골풍경...
아마 내가 학교 입학할 때 쯤 되었을까?
동네 뒷편으로 낙동강이 유유히 흘렀다. 모래가 서걱이는 밭을 조심스레 몇걸음 걷노라면 늘 손님을 기다리는 나룻배가 한척 서있었다. 손님이 있으면 즐거웠고 또 없으면 어떠리 늘 그자리서 기다려 주었던 걸.
그 옆으로 강둑 비탈에는 울퉁 불퉁 바윗돌이 비눗물에 절여서 뿌옇게 변해버린 빛깔로 버티고 있었다.늘 찌든 삶을 분풀이라도 하듯 쉴새없이 내려치는 빨래 방망이질에 시퍼렇게 멍들었던 바윗돌 위로 동네 아낙들의 빠른 손놀림은 쌓였던 삶의 찌든 때를 강물에 흘려 보내려는 듯 빨래가 한창 이었고 또한 우물가에서 떠도는 소문 처럼 쑥덕쑥덕 수다도 한창이었던 것 같다.
해마다 추수가 끝날 무렵이면 중년의 뱃사공이 집집마다 곡식을 걷으러 오던 기억이 난다. 그건 바로 매번 나룻배를 탈때마다 배삯을 내는 것이 아니라 현금이 흔치 않던 시절 추수끝에 일년치를 선불로 내는 일종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나루터 근처에 살던 뱃사공 아저씨는 어린 나의 눈에 정말 부자처럼 보였다. 우리 마을에서도 집집마다 곡식을 걷어갔었고, 강건너 마을에서도 그렇게 했으니 아마 그집 곡식창고는 내 어린눈에 넘쳐났을거란 생각을 했었다.
물위를 둥둥 떠서 달리는 배도 신기했고 길다란 삿대로 얕은 물을 지날때는 힘겹게 물밑을 밀어 뱃머리를 돌렸고, 점차 깊은 곳으로 향하면 그땐 노를 저어서 항해를 했다. 노를 고정시킨 고정틀에서 이리 삐걱 저리 삐걱...
늘 저어대는 노가 꼭 그자리만 닳아서 움푹패인 걸 보면 그 노도 세월의 나이를 먹었나 보다.
정해진 뱃시간도 없이 손님이 모이면 하루에 몇차례씩 왕복하던 그 나룻배, 장날 제삿장을 봐오시던 강건너 아주머니의 질끈 묶은 빛바랜 나일론 봇따리. 멋쟁이 아저씨의 촌스런 양복에 넓적한 넥타이, 머릿기름을 얼마나 발랐는지 번들거리는 헤어 스타일, 나름대로 한껏 멋을 낸 강건너 사람들...
그렇게 나룻배는 슬픔도 희망도 매일 같이 실어다 날랐었다.
가끔씩 재미로 나룻배를 타보고 싶으면 친구들과 기웃거리다 손이 드문날 뱃사공 눈치봐서 슬쩍 올라탄다. 물살을 가르며 유유히 떠가는 나룻배, 어린 마음에 행여 돌아오지 못할까 하는 염려도 있었을 법 한데 뱃전을 스치듯 찰랑대는 물결을 보노라면 또 손끝으로 만지노라면 그런 걱정은 물살위로 흘려 보낸다.
강건너 나루터에 당도하면, 끝없이 죄우로 펼쳐진 버들숲이 우릴 반긴다. 걷기도 힘겨운 모래밭길을 키다리 버들숲 사이로 달음질 치노라면 종달새도 조각구름도 모두 친구가 된다.
한살림 차려서 소꿉놀이 한참 살다보면, 어느새 저녁놀이 붉게 물든다.
벗어둔 신발일랑 두손에 챙겨들고 소꿉살던 살림살이는 버드나무 밑둥에 꼭꼭 숨기고 그위엔 버들잎 주워모아 살짝 덮는다. 음,, 아무도 모를거야.
그리고는 다시 만나 살림차릴 그날 까지 무사하기를 빌며 그렇게, 지는해를 아쉬워 하며 우린 뒤돌아서 나룻배에 몸을 싣는다.
어느새 노을은 삐걱대는 노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서녘 하늘을 붉게 태운다.
한폭의 싸구려 액자 속의 촌스러운 풍경처럼...
그렇게 유유히 버들숲은 내게서 멀어져만 갔다.
내 유년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다시 떠오르는 것은, 언제 떠나도 나를 반겨줄 마음의 고향에 코흘리개 소꼽친구가 그때 그자리서 기다리고 있음이 아닐까...
순수했던 그 모습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