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 일출봉 아래, 칸나가 7월의 태양보다 더 붉게 빛난다.
내가 탄 15인승 렌트카를 실은 우일훼리호가 검푸른 아침 바다에 흰 포말을 일으키며 우도를 향해 간다.
차창을 통해 보는 바다는 너무 생소해서,
차를 타고 바닷가를 달리는 건지,
바다가 나를 태우고 가는 건지 구분키 어렵다.
차창에 비치는 일출봉과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선 위에 방금 우리가 지나온 땅이 있고,
그 위에 길이 있다.
배는 하얀 뱃길을 만들며 간다.
바다는 시원스레 펼쳐져 있건만, 두명이나 정원을 초과한 차 안은 답답하기만하다.
바닷바람은 뱃머리로부터 밀려오건만, 차 안에는 17명의 뜨거운 체온이 고여,
에어컨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문을 열자, 바람이 코 끝에 먼저 와닿는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자신이 읽은 책,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너무 감동적이라며 열심히 말하는데, 3 인석 자리에 네명이 좁혀 앉아, 나와 밀착된 그녀의 엉덩이가 둥그렇게 흔들린다.
후원계좌를 신청했다는 그녀는 더 많이 도와줄 수 있게 자신이 부자였음 좋겠다했다.
그녀는 만원이 적다했지만, 나는 기아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위해 만원은 고사하고, 십원어치의 배려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도서관에서도, 서점에서 책을 살 때도 이 책은 나의 눈길을 끌었지만, 난 그 책을 선택하지 않았다.
세상의 부조리를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은 그 모든 부조리와 야합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부류의 사람이기에,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아름다운 세상을 일궈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게 상처를 준다.
나는 내 자신이 부조리하고 이기적이라는 걸 인정하기가 싫어,
이런 책을 피해왔다.
알면 행해야 하니, 차라리 마치 모르는 일처럼,
절대 들어 본 바도 없다는듯 시치미를 떼며 살아가고 있는데,
기어이 여기서 만나고 만다.
눈을 돌려 바다를 본다 .
정원초과의 차 안에 쪼그려 앉은 내가 너무 안스럽다.
밖은 출렁이는 바다다.
김혜자도 바다다.
그러나,
난 3인석 좌석의 4분의 1이다.
옆에 세운15톤 덤프트럭이 요란한 시동소리에 깜짝 놀라니,
옆자리 그녀,
"곧 도착하려나 보다. 저 차들은 출발 전에 예열이 필요해."한다.
나도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를 품고 사는 세상에 대해 뭔가 돌려 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 옴짝하기 힘든 이 자리에서 이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도 예열이 필요할 것 같다.
빨리 저 작은 섬에라도 내려 움직이고 싶다.
다리를 펴고
바다는 못 되어도
그 출렁임에 젖는 섬이라도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