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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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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 따라가며...


BY 개망초꽃 2004-07-21

산을 가로질려 놓여 있는 길은
작은 가게 하나 없는 산골마을을
새우깡을 맛보게 하고 아스팔트 신작로 길을 걷게 할 수 있는 유일무일한 통로였다.

알 수 없는 돌멩이가 머리를 내밀고,
여차하면 쭐떡 미그러질 것 같은 가파른 산길을
날 달걀 한 알을 손에 쥐고,
산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학용품과 바꾸었던
옛날 이야기로만 남아 있는 시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산 하나를 반드시 넘어야만 했다.
고향마을을 굽이굽이 흘러 가던 냇가가 학교 앞으로 지나게 될 때면
냇물은 두배나 불어 있었다.나는 미술 특기생이어서 맨날 남아서 그림을 그려야했다.
친구들이나 친구들 부모님은 내가 부러웠을지 몰라도
난 늦게 남아서 혼자서 집으로 가는 시간이 쓸쓸하고 싫었다.
그것보다 더 두려웠던 건 산고개를 혼자 넘어야한다는 그...그것이었다.

그래도 산고개를 혼자 넘어야하는 두려움외엔 그림 그리는 것이 유일무일한 희망이었다.
아버지를 두번 다시 만날 수 없어도 엄마와 떨어져 살았어도
그림은 내게 있어 희망의 첫번째 손가락이었다.
그러나 가정 형편으로 그림을 계속 그리면 안되어서 도중에 포기를 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고등학교때는 글을 쓴다고 공부도 안하다가
결혼을 하고 내가 아이들을 책임져야할 막중한 업무가 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될때쯤
한복그림을 배우게 되었다.한복 바느질을 배워야 돈 버는것하고 뭔가가 연결이 될 줄 알면서도
그림 그리는 일을 선택하게 되었다.그림이 나의 희망과 돈과 연결이 안될 줄 뻔이 알면서도...
잠자리 날개 같은 한복 천에 그림 그리는 일은
하루 종일 손가락이 저리도록 그려도 먹고 살기가 빠듯했다.
하루종일 그려할 한복 일이 없다는 게 더 문제가 되었지만.
그래도 절약에 절약의 기질을 발휘해 먹고는 살았는데..
그 일 마저 줄어들게 되어 희망의 첫번째 손가락을 접어 두어야만 했다.

혼자서 미루나무 신작로 길을 몸 크기만한 화판을 들고
자주색 주름치마를 팔락거리며 걸을때부터
가슴이 떨리기 시작해 산고개 밑에선 한숨이 다 나왔다.
혹시나 나처럼 산을 넘어갈 사람이 없나하고 버스정류장에서 막차를 기다려도
워낙 외진 산길이라 그 길을 동행할 사람은 드물었다.
산 중턱쯤에 변함없이 앉아 있는 무덤들을 보지 않기 위해
동요를 부르며 빠른 걸음으로 올라갔던 숨가뿜,눈물이 쑥 나올 정도의 무서움.
숨가뿜과 무서움을 뒤로 두고 고개 위에서 내려다 본 마을은
수채화 붓으로 자연스럽게 그려 놓은 듯한 냇물줄기와
멀리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엷은 구름과...
그리고 요즘같이 입맛없는 여름에 강원도 찰 옥시기,강원도에선 옥수수를 옥시기라 했다.
옥시기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산길가 풀섶에 정말 먹고싶게 생긴 빠알간 산딸기가 바로 그...그것이다.

후끈한 한증막 같은 여름...
햇볕에 익는 것은 산골마을 아이들과 햇볕색깔과 닮은 산딸기가 있다.
여름날의 우리들 살갗은 발갛게 익음을 지나 까맣게 타들어 가고
끝내는 기름 바른 개떡처럼 반들번들 해진다.
산딸기도 연녹색이였다가 끝끝내는 익을대로 익어 참기름 바른 것처럼 반지르르거린다.
산언저리마다 잘 익은 산딸기는 알알이 구슬같기도 했다.
손가락 위에 올려 놓으면 반지 같고 머리에 얹으면 구슬핀 같고 귓볼에 대면 귀걸이었다.

산딸기가 한꺼번에 모여서 밭을 이루면 붉은 꽃밭이었다.
분홍 패랭이꽃이 여린 가슴을 심하게 요동치게 만들었고
달빛 닮은 달맞이꽃이 얼굴을 가린 채 휘청거리며...
칡꽃이 엉클어진 곳에 산딸기가 여름꽃들과 함께 지천이었다.

두 손으로 따서 배가 부르도록 먹었던 햇볕에 익은 따끈한 딸기.
산고개를 넘어 한숨을 돌리고 산길 끝 언저리를 돌아가던 길에
산딸기와 함께 쉬엄쉬엄 쉬었다가 집으로 털털털 들어 가곤 했었다.
늦게 들어 가도 누가 잔소리 할 사람도 없었고,
옛날엔 그랬다 먹고 살기 바빠서 어둡기 전에만 들어 가면 학교 갔다 왔나보다 했다.
요즘처럼 학원가야 하는데 왜 늦었냐고 눈을 치겨 뜨지 않았고,
학교에서 뭐 배웠느냐?숙제는 없냐? 이런 물음표도 없었다.
책가방 던져 놓은 채로 다음날 아침이면 그대로 들고서는
헐레벌레 산을 넘어 학교을 향해 걸었고,
책이 없으면 없는대로 연필 한 자루를 침을 발라가며,
누런 종이에 꾹꾹 눌러가며, 쓰게되면 쓰고 말게되면 말고 그랬었다.
잘하면 칭찬받고 못하면 나머지 공부를 하면 되었으니까.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달콤새콤한 산딸기를 실컷 먹고,
배부르면 산딸기가 주렁주렁 달린 가지와 들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었고,
목마르면 쫄쫄 흐르는 옹달샘물을 마셨고,
더우면 세수를 푸드득하면 금방 시원해졌고,
그래도 더우면 한달음에 달려 냇가에 풍덩 빠지면 되었다.
하얗게 빛을 내는 차돌을 주워서 냇물 한가운데 던져 놓고 차돌 먼저 찾기 놀이도 하고...
이 놀이를 한참 하다보면 두 눈이 토끼눈처럼 핏줄이 선다.
물속에서 눈을 뜨고 차돌멩이를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친구 팬티를 잡아 당겨 엉덩이 까기도 하고,허어연 엉덩이...아고~~ 재밌어.히~~~

다시 생각해 봐도,
다시 걸어가 봐도,
걱정도 없었고,고생도 몰랐고,불편함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
어제는 지나갔고 오늘을 살았고 내일은 오겠지 했던 철딱서니 없었던 시절.

동요를 부르며 산언저리에 있던 산딸기를 따라 다녔던 30년전의 이 맘 때.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하늘 끝 닿은 저기가 거긴가~~~~
고향에는 지금쯤 산딸기 익어 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