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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경비아저씨


BY 개망초꽃 2004-07-08

그리 작은 키를 가지고 채송화는 꽃을 한가득 머리에 이고 있었다.
키작은 사촌여동생이 뻘건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냇가로 빨래하러 가던 모습과
큰 꽃을 머리에 이고 있는 채송화와 두 영상이 겹쳐졌다.
화단을 표시한 돌맹이 안으로 채송화는 맨 앞에 서서 키다리 접시꽃에게 안지려고
까치발을 세우고 있었다.어쩌면 키높이 구두를 신고 있을 수도 있었다.

고향엔 집집마다 채송화를 꼭 심었다.
얼굴 넓적한 맨드라미도 심었고
봉선화는 빼 놓적이 없었다.
백가지 색을 가지고 태어난 백일홍도 언제나 마당 한켠에 씩씩하게 자랐다.
가난한 고향사람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비탈진 돌작밭에 부지런히 씨를 뿌렸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조잡하고 보잘 것 없는 마당한쪽에 마련한 화단에 또 꽃씨를 뿌렸다.
여름엔 볼품없는 화단에서 꽃들은 제각각 자신의 얼굴을 주인님께 보여 주려고
열심히도 치장을 했다.
키 작은 채송화는 항상 화단을 표시한 돌틈에서 봄을 보내고 여름이면 조용히 꽃을 피웠다.
그 작은 몸집에서 채송화는 여름내내 힘에 부칠듯한 무거운 꽃을
온 힘을 다해 속치마같은 야들야들한 꽃잎을 이고 지고 지고 이고 있으면서도
이맛살을 구기지 않고 웃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엄마네 소형 아파트로 이사오던 그 다음해 아파트 앞 화단은 보통 화단처럼 평범했었다.
봄이면 개나리가 피고 여름엔 자주 달개비꽃이 피고 가을엔 자주색 국화가 피어나던
그냥 화단이었다.
그러나 올 봄엔 심심했던 화단이 심상치가 않았다.
출근을 할 때마다 화단엔 낯익은 꽃들이 심어져 있는게 아닌가?
저번주는 봉숭아들이 두 팔을 벌리고 옆으로 나란히를 하고 있었고
며칠전엔 접시꽃이 넓적한 손바닥을 벌려 하늘을 우러르고 있었고
어제는 백일홍 잎이 차렷 경례하는 자세로 반듯하게 서 있고
오늘은 채송화가 꽃이 피어 있었다.
어라? 어제까지만 해도 채송화가 없었는데?
시간이 없어 침대보 휘딱 뒤집어 놓고 잠자던 옷도 한쪽 구석에 밀어 넣고
샌달도 대충 발에 끼워 넣고 아무도 없는 승강기 안에서 제대로 신었는데
채송화 앞에서 발을 멈췄다.누가 이리 추억어린 어린날의 꽃들을 심을까?
누가 하염없이 철없이 바라보던 고향꽃을 심어 놓을까?

새로오신 경비 아저씨가 범인이란다.
누구 보다도 꽃을 좋아하신 친정 엄마가 다 알아보시고 내게 줄줄 이야기를 해 주셨다.
아파트 화단을 꽃물결로 뒤집어 쓰게 만든다고 하셨단다.
경비 아저씨 집사람이 "꽃이랑 결혼해서 살으셔~~"했다나...
내년에는 계단식으로 화단을 만들어 멋지게 꽃잔치를 벌이시겠다고

자신이 가꿔 논 꽃들을 지긋하게 보며 말하셨단다.
엄마도 꽃보는 재미로 들락날락거리셨고
퇴근을 하면 엄마는 내게  경비 아저씨 꽃 이야기가 꽃처럼 만발한다.

"꽃봉오리를 꺾어 놓으면 속상해요.이쁠텐데 왜 꺾을까요?"
"오늘은 누가 꽃을 뽑아 갔어요.가지고 가서 잘 키우면 좋지만..."
"못들어가게 표시를 해 놓아도 짓밟아 놓았어요."
경비 아저씨는 엄마만 보면 꽃걱정을 하신단다.
엄만 내 이야기를 경비 아저씨에게 하시기도 했다.
"우리 딸도 꽃을 엄청 좋아하는데,키 큰 백일홍이 이쁘데요."
꽃 잘 키우는 남자가 좋다는 말까지 덧붙이셨다고 해서
쓸데없이 그런 말까지 했냐고 뭐라했지만 그 말이 사실이긴 사실이었다.

가지각색으로 꽃을 피우던 백일홍은 고향마을에 자식을 못낳다가
뒤늦게 귀한 아들을 낳았는데 안타깝게도 약간 모자랐었다.
그 집 뒷마당에 여름이면 같은 색이 없을 정도로 만발했던 백일홍이 떠오른다.
어린눈에도 백일홍은 화려하면도 정말 이뻤다.
내가 백일홍에 반해 꽃을 보고 서 있으면 모자란 아들이 나를 보고 헤죽 웃고 있었다.
모자란 아들이지만 고등학교를 꼴등으로 졸업을 하고 장가를 가서 잘 살고 있다고
고향소식을 통해 들었다.아직도 그 집엔 여름처럼 뜨겁게 백일홍꽃이 타오르려나...

경비 아저씨가 심어 논 꽃들중에 맨먼저 봉숭화꽃이 잎사귀 사이마다 졸망졸망 피어났다.
뒤를 이어 내 키와 맞먹는 접시꽃이 두 눈을 뎅구랗게 뜨고
한 낮에 출근하는 나를 뜷어지게 쳐다 보았고,
백일홍이 짙은 자주색, 옅은 분홍색, 야한 주홍색, 중간 분홍색, 여리디 여한 자주색으로
시들지 않고 오래도록 자신의 영역을 표시해 나가고 있고,
채송화도 꽃을 피운채로 이곳으로 이사를 와 애기때부터 살던 터박이 꽃들과 잘 사귀고 있다.
코스모스는 이번 장마비에 쓰러질듯 쓰러져서도 자주색 꽃을 피어 물었다.
맨드라미도 과꽃도 사루비아도 금송화도 참나리꽃도 꽃피울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가난한 소형 아파트가 꽃부자가 되었다.
외로움 때문이지 돈이 부족해선지 싸움이 많던 마을 사람들이
어릴적에 흔히 보던 꽃들을 옆에 두게 되어 많이들 편안해졌음 좋겠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가꾸어 논 꽃들을 함부로 꺾지 말고
한번쯤은 쳐다불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꽃과 결혼할지도 모르는 경비 아저씨가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내가 집을 사서 이사할 때까지라도 바뀌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