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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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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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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먹도 울 때가 있다.


BY 엘라 2004-07-05

어젯밤, 남편과 늦은 시간에 외출을 했었답니다.
자동차 극장에 영화 '트로이'가 들어왔다고 해서 꼭 보고 싶었거든요.
결혼생활 16년이 되도록 아이들 키우는데 바빠서 남편과의 호젓한 데이트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sf물을 좋아하는 남편은 다 아는 내용이라며 투덜댔지만 아내를 배려하는 차원인지
못이기는 체 따라나서 주더군요.
서둘렀는데도 영화는 벌써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검표원에게 10분이 늦었으니 조금, 아주 조금만 깍아달라고 아줌마 아니랠까봐
사정했더니, 끝나면 다음 상영을 또 보라더군요. 야박한 총각같으니라구.
비가 주룩주룩 처량히 내리는데도 모여있는 자동차의 수는 꽤 되었습니다.
자리를 잡고, 평소 좋아하던 브레드 피트의 금발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가을의 전설'에서 보았던 브래드 피트에게 반해서 그의 브로마이드를
샀었습니다.
부엌의 싱크대 문 안쪽에 붙여놓고, 수시로 그 문을 열 때마다 '어? 깜짝이야~'라고
했었지요.
매력적인 남자가 싱크대 문에 붙어서 나를 쳐다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브래드 피트를 수도 없이 인신공격을 하더군요.
아킬레스와 아내를 빼앗긴 아마겜논이 거대한 전함들을 이끌고 상륙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비 때문에 와이퍼가 내는 작은 소음과, 옆 차의 시동소리도 그런 대로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바로 남편이었습니다.
케이블에서 방영해주는 '헬렌 오브 트로이'의 내용과 한참을 비교하더군요.
조용하게 있어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한적한 곳에 혹시나 나를 버리고 갈까봐
참았습니다.
비교가 심드렁해졌는지 느닷없이 핸드폰을 꺼내서 이것저것 눌러보기 시작합니다.
요며칠, 핸드폰을 바꾼 지 얼마 안되어 기능을 연구하기는 하지만 꼭 그런 자리여야
하는지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잘 모르겠는지 핸드폰은 집어넣더니,  극장에 가기전에 잠깐 쇼핑한
장바구니에서 치즈소시지를 꺼냈습니다.
껍데기가 안 벗겨지는지 실내등을 켜고 한참을 부시럭거립니다.
그리고는 치즈소시지를 세개나 먹더군요. 와자작 오물오물 짭짭.....
그나마 세 개만 먹어서 다행이라고 위안했습니다. 이십개를 다 먹었으면 어쩔뻔 했는지...
영화는 트로이의 왕자인 헥토르가 아내에게 피신처를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느새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왕관을 쓰고는 전장에 나가는 지아비를 애끓는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던 차였습니다.
조금전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갔던 남편이 들어오더니 아주 은밀하게 말했습니다.
"간이 화장실이 뒤편에 있더라?"
오래간만에 비디오가 아닌 영화를 관람하는데, 이만저만한 방해꾼이 따로 없었습니다.
나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투자한 돈도 아깝고, 그러다가 만에 하나 부부싸움이라도 나면
저만 손해 아니겠어요?
참아야 하느니라를 수도 없이 되새겼습니다. 인내는 정말 너무나.....썼습니다.
목마가 성 안으로 들어오며 영화는 클라이막스를 치닫고 있었습니다.
배경음악이 처절하게 깔리면서 아비규환이 벌어질 때였습니다.
갑자기 차체가 조금씩 흔들렸습니다.
옆을 돌아다보니 남편이 코털을 잡아 뽑고 있었습니다.
힘주어 잡아챌 때마다 차가 흔들린것이었어요. 정말 한 대 올려치고 싶더군요.
도대체 언제까지 뽑을 거냐고 윽박질렀더니 세개밖에 안 뽑았다는군요.
분명히 차가 다섯 번이 흔들렸는데, 왜 세 번만 뽑았다고 하느냐고 했더니
글쎄 두 번은 실패했다나요?.
내가 저렇게 비협조적인 비문화인하고 다시 영화를 보러가면 트로이를 몰살시킨
'헬레나'라고 속으로만 중얼거렸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같이 영화를 보러온 제가 잘못을 한거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