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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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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여행 : The Entrance


BY 김임옥 2004-06-25

 

고스포드역 앞 마주 보이는 그리 높지 않은 산등성이 꼭대기에 가느다란

탑이 높이 서 있는 것이 우리 모두에겐 진해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는

8거리 옆에 있는 탑산같다는 느낌이 들게 하였다. 

갑자기 어디서 날아왔는지 은은한 하늘색과 약간의 초록과 다른 색을 섞은

새 한 마리가 어머니의 어깨에 앉았다.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 집에서 키우는 새인가?

“무슨 새니? 예쁘니?”

갑작스러운 일에 약간은 당황하시고 궁금해 하셔서 내가 손을 내밀어

발을 살살 만져 옮겨오게 하여 어머니께서 볼수있게 하여드렸다.

그리곤 아버지의 손으로 옮겼다.

집을 잃어버렸나, 가엾게 동그란  눈만 꿈벅꿈벅 거린다.   

기차대신 버스를 기다리느라 오가던 사람들이 날아가지 않는 것에 의아해 하며 손과  손으로 새를 계속 옮기우고 있었다.

“아마 이 새는 여자 인가봐요. 참 친절하지요?”.

자신의 손바닥으로 옮겨 놓으며 신기하듯이 웃음짓는 아줌마,

때로는 어른들의 마음에도 아이들과 같은 동심이 감추어져 있음을 들쳐내니 즐거운 마음이 든다. 

 

햇살 좋고 바람잔 공휴일, 지난 주 나의 차를 자기것인양 몰고 다니던 큰아이가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오늘은 엄마를 섬기지요” (그건 그동안 차편이 없어 보지 못하였던 볼일을 보아주겠다는) 하던 말이 아직 귓전에 남아 있지 이유가 아니어도 더 춥기 전에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그 분들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나들이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쪽의 기차 노선을 수리를 하는지  기차가 다니질 않아 4번의 버스로…

첫번 버스는 집 가장자리 담 밑과 화단 깊숙한 곳에 도라지와 더덕이 묻혀있을 친구네 집을 지나고 또 다른 버스로 아버지께서 처음 일하시던

독일식당 그곳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상하리 만큼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혼스비에서 갈아탄 여행기분을 한껏 갖게 한 아래는 짐을 싣게되어 의자가 높은 장거리 관광버스가 막 움직이자 “이 곳 생각나니” 아버지께서 물으신다.

“알고 말고요. 우리가 처음 시드니 와서 살던 집이 있었던 곳이잖아요”.

옛모습은 간데없이 나즈마하게 지어진 빌딩들엔  회사들의 간판들이 다른

모양들로 붙어있었다.

 

우리가 살던 집은 코너였는데 그 옆집에는 마이클, 지나 그리고 동생들이 여럿인 이태리 가족이 살고 있었다. 처음으로 접하는 외국인이여 신기하기도 하였지만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하게 생겼었다.

어머니는 그 아이들이 참 예쁘다고 곧잘 말씀하셨다.

넓은 뒷마당 전체에 흰색에 약간의 노란색이 섞인 실국화를 가득 재배하여 5월이 되면 한아름씩 꺾어 프라스틱 통에다 담아 집 앞에서 팔던 생각이 난다. 5월 어머니 날이 있어 이곳은 집앞에서 화단에 심은 꽃들을 꺽어 판다.  

아마도 그 집 주인은 화훼 전문가였는지도 모른다. 이곳에선 취미로 가꾸었지만.

우리도 뒷켠 한 모퉁이에 밭을 일구어 배추와 열무등을 가꾸기도 하였다. 

 

세월이 가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수직으로 깍기운 다른 무늬들의 돌산을 지나면 이내 초록의 수풀들이 나타나고, 간간히 지나는 다리아랜 굴 양식장이 펼쳐져 있었다.

꼬불꼬불 가파르게 곡선으로 이어지는 가는 길은 벌써 오래 전에 하이웨이로 바뀌어  다니기가 휠씬 편리하고 더욱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수 있는 것이 오히려 버스를 이용하게 된 것이 행운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The Entrance, 시드니에서는 근 100km 정도 북쪽으로 떨어졌으며  이곳에서는 센츄럴 코스트와 사우스 코스트로 나뉘는데 이곳은 센츄럴 코스트에 접어든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과 주위들이 마치 진열장안에 있는 것 처럼 사방 커다란 유리 벽으로 되어있는 버스는 모든 것을 시원하게 담아내어

기분을 한결 더 상쾌하게 하여주었다. 

지루함도 모른 채 1시간 남 직 달려오니 종점에 이른다.

아주 오래 전에 차로만 한번 왔던 곳이라 전혀 다른 도시를 만나는 듯 낯설었다.

 

운전기사 분이 말한 대로 낮은 건물사이로 잠깐을 걸어가니  물이 보인다.

갈매기와 사람들이 같은 숫자로 함께 어울리고 있는 그리 넓지 않은 깔끔하게 단장되어진 관광지었다. 전에는 나무로 지어진 집들이 주위에 있었고 맨발로 집을 나와 잠깐을 걸어 바로 물로 들어가 얕은 물가에서 놀던 아이들, 모래 색을 한 납작하게 엎드린 모래 무치가 낚시에 딸려오던 불쌍한 모습은 찿아볼수 없게 주위는 예쁘게 지어진 아파트와 호텔, 그리고 각기 다른 상점들이 공원을 가운데하고 축대를 쌓은 물과 구분되어 지고 있었다. 

식사시간에 맞추어 모여드는 100마리 정도나 되는 엄청나게 많은 빛 바랜 핑크 색의  긴 부리를 한 페리컨들이 던져지는 생선을 먹는라 긴 부리를 위로 치들고 막대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안간힘을 쓰는 것이 왠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물속의 물고기만 잡아 먹어도 부족할 것 없을 덴데 관광객들의 볼거리로 이용당하고 있는 것 같아 …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긴 다리는 여전히 낚시를 드리운 꾼들을 싣고 그대로 있는데.

오랜 세월 지남에 그 때의 모습은 깡그리 사라져 버리고 말았구나.

결혼 전 옆집에 사시던 호주 할머니 할아버지의 홀리데이 하우스가 바로

물가까이 있어 신혼여행으로 우리를 그때는 꼬불꼬불 구길을 이용하여야 하여 행여 찿는데 힘들세라 일부러 이곳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흐르는 세월 속에 그들도 갔고 나 역시 얼마나 달라진 모습으로 여기에 있는가?.

 

바닷물이 길게 들어와 자잘한 파도가 이는 이곳엔 작은 물고기들이 때지어 헤엄치고 내 가슴 한켠에 애뜻한 사랑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이곳.

지금보다 훨씬 이전의 자연의 모습으로 있던 조용하고 아름다웠던 이곳을 생각 속에 다시 그려보며 쉬이 어둠이 내리기 전 서둘러 돌아오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겨울해는 퍽이나 짧기에.

지금은 내가 서있어야 하는 그곳으로 가야 하겠기에.

(6월 14일 영국여왕 생일 공휴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