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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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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스스한 체코 경찰서에서


BY Dream 2004-06-18

프라하에서 남편이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것 까지 얘기하고는
서울에가서 이사갈 집을 계약해 놓고 내려와
이사가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친구들과 의논을 하다 보니 몇일이 후딱 가버렸습니다.

 

인혜엄마 기다리셨습니까?^*^
오늘부터 다시 시작할께요.
이사하고 나면 바쁠것 같으니
이사하기전에 빠리의 드골 공항에서 서울을 향해 출발하던 날까지
바삐 써 내려가야 할듯 하군요.

 

지갑을 잃어 버리고 나니
참 여러가지 생각이 스치더군요.
딸애가 인형하나만 사달라던것도
다큰애가 무슨 인형이냐며 안사주고
막내가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장난감 하나 사달라 해도
금방 고장나 못쓰게 된다며 안사주고
버스표나 지하철 표를 두장만 달랑 끊고는
혹시 애들 차표 검사나 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다니던 짓....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잃어버린 돈이 아까왔습니다.

 

우선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신용카드 분실신고를 하고
경찰서에 가서 분실 확인서를 받기로 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하기전에
여행자 보험을 들었기때문에 나중에 얼마간이라도 보험료를 받아내려면
경찰의 확인서가 필요했습니다.

호텔에서 경찰서의 위치를 알아보고
시내로 나왔습니다.
지하철에서 나와 바츨라프 광장에서 지도를 보며 경찰서를 찾고 있는데
마침 이동파출소 비슷하게 경찰승합차가 나와 있는게 보였습니다.
그곳으로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니
어디어디로 가라고 길을 알려 주더군요.
햇빛은 뻑뻑 내리쬐고
기분은 쥐똥씹은 맛이고...
남편과 말없이 한 5분쯤 걷다보니
경찰서를 가르키는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표지판의 방향대로 두리번거리며 잠시 걷는데
경찰서는 보이지 않고
경찰제복입은 사람이 지나가길래 물어봤더니
바로 우리가 서있는 길 옆 나무로 된 건물벽을 가르키는 것이었습니다.

 

도데체
그곳이 경찰서라고는 알아볼 수도 없는것이
그냥 건물과 건물사이를 나무판넬로 막아서 벽을 세워놓았고
자세히 보면 거기 작은 문이 달려 있었던것입니다.

그 작은 나무문을 여니
쇠창살문이 잠겨져 있었고 그 옆에 벨이 있었습니다.
벨을 누르니 잠시뒤 쇠창살문이
철컥 열리더군요.

남편과 문안으로 들어서니
그쇠창살문은 저절로 저혼자 다시 철거덕하고 잠겨졌습니다.

으시시한 기분으로 긴 복도끝으로 걸어가자
다시 철문이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문앞에 다가서자
이번엔 그철문이 저절로 알아서 철컥 열리고
우리가 들어서자 다시 저혼자 철커덕하고 잠겼습니다.

머리카락이 일어서는 공포가 느껴졌지만

지깐것들이 뭐 어쩔것이여.
우리가 잘못한것은 한개도 없고
지네 나라에 돈 쓰러 왔다가 돈 잃어버린 죄밖에 없는데
지깐것들이 우리한테 도로 절을 하면서 사과를 할일이지
우리가 주눅들 일이 하등에 어딨단 말이여.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컴컴한 복도를 걸어가자
이번엔 나무문이 나타났습니다.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자
서녀평 되는 방에 긴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고
들어간문 반대쪽으로 나무문이 있었습니다.

 

왁자지껄 사람 떠드는 소리와
무언가 타다닥닥 두둘기는 소리가 나무문안에서 들려오더군요.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하자

고 몇일전 밤 뮌헨발 프라하행 기차에서 보았던 경찰의 분위기와 비슷한
작은키 노란눈 노란머리 노란 콧수염의 경찰이
벌떡 일어서며 우리를 보고 밖으로 나가라는 손짓을 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안먹고 안쓰고 아껴서 들고온
대한민국 건전한 가족베낭여행객의 피같은 돈을
즈이나라 지하철에서 소매치기 당한 우리에게
즈깐것들이 뭘어쩌겠습니까?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지하철에서.
분실 확인증을 해주셔야겠습니다."

그 노란 콧수염 경찰은
알았으니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

밖으로 나온 우리는 그제야 이곳저곳 둘러보니
그방은 경찰서에 일을 보러 온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방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스케줄을 이야기 하며
한참을 기다려도 안에서는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다시 문을 열고
-바쁘다. 빨리 처리해 달라.
말하자
-알았다. 기다리라.
고 하더군요.

다시 한참 기다려도 감감무소식
허리춤에 권총찬 어느경찰이 어디론가 나가고
나는 다시 문을 열고
-언제까지 기다리냐.
고 묻자 그 노란콧수염은 너무나도 뻣뻣한 태도로
-어쨌든 기다리라. 지금 바쁘다.
라고 했습니다.

그 경찰 앞에는 입술을 빨갛게 바른 할머니 두사람이 앉아
조사를 받고 있더군요.

그랬습니다.거기가 얼마전까지 공산국가였고
내가 있는곳은 

나무대문,두개의 잠겨진 철대문과 또하나의
나무대문안에 깊숙히 자리잡은 체코의 경찰서였던것입니다.

권총찬 경찰들이 왔다갔다 거리고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맘대로 나갈 수도 없는

체코 경찰서.

 

죄없는 피해자
대한민국 건전국민 가족베낭 여행객 저, 착한아줌마는
한없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이번엔 노랑 콧수염 경찰에게 애원조로 말했습니다.

 

"저기요... 우리 애들이 지금 기다리거든요.
아직 어린데... 지금 길거리에 두고 왔어요.
빨리 돌아가봐야 된답니다.
빨리 처리해주세요. 부탁드려요."

이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오게 생긴 체코의 노랑콧수염은

"그럼, 너는 가서 애들 보려무나.
여기는 남편 혼자 있어도 되지않냐?"
요따위로 말하는것이었습니다.

남편 혼자 삼중사중 철문안 체코경찰서에 두고
저혼자 지하철 두번 갈아타고 버스타고 호텔로 돌아갈 수?

 

없지요.
애들은 즈이들 셋이 호텔로비에서
잘놀고 있을텐데....

좀더 기다리고 있으려니
서양노인부부가 씩씩 거리며 들어왔습니다.

 

"오오--- 오오--- 지갑을 잃어버렸어.
오오-- 오오-- 여기다 넣어 놓았는데 지갑이 없어졌어..."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말씀하시더군요.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저희는 지하철에서 잃어버렸는데
어디서 잃어버렸어요?"

 

"구시청사 앞에서. 사람들이 많아서 이리저리 몰려다니다 보니까
지갑이 없어졌어."

 

"예.. 분실확인증 받으시려고요? 여기서 기다리랍니다."

 

그 노인부부를 만나니 적잖이 위안이 되더군요.
미국인이었는데
서울에도 두번이나 다녀갔다며 의례적인 말이겠지만
서울은 원더풀하다고 할머니가 호들갑스레 이야기 하시더군요.
우리의 다음 여행지는 비엔나라 하니
자기들은 비엔나를 거쳐서 푸라하로 오는길이라며
보험은 들어놓았냐, 몇일간 머물 예정이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취조받던 빨강입술 할머니 두분이 손을 앞으로 내밀고
밖으로 나오더군요.
열손가락에 검은 잉크가 묻어있었습니다.
아마,
지문을 찍었던 모양입니다.

 

그할머니들이 나가자
드디어
그 노랑콧수염이 종이두장을 들고 나와
미국노인부부와 저희부부에게 한장씩 나누어 주며
작성하라 더군요.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작성해 내자
잠시 후에 확인증을 내주었습니다.

우리는 그걸 들고
처음 들어온 길을 되짚어
열어주는대로 네개의 문을 지나
경찰서밖으로 빠져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좋은나라! 대한민국 좋은나라!를 외치면서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경찰서엔 가본일은

고등학교때 주민증 만들러 가보았던게 다지만...

우리나라 경찰은 무지하게 친절하지 않습니까?^*^

 

딸래미 인형, 막내 모자,기념품, 마실것 먹을것을 사서 부지런히 호텔로
돌아오니 아이들은 로비 구석 쇼파를 차지하고
한잠씩 자고 일어나 놀고 있었습니다.
햄버거와 콜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짐을 챙겨 끌고 지고
비엔나로 가는 기차를 타러 나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