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학번인 남편. 가끔 흘러간 팝송을 흥얼거린다. 84학번인 나, 6년이란 세월의 문화적 차이 때문일까, 가락은 따라 흥얼거리지만 가사는 알 수가 없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남편은 어쩌다 술을 찾는다. 대부분 몹시 울적한 기분일 때다. 남편은 포도주 한 잔 마시고 베란다로 나간다. 빡빡한 창문을 열어놓고 담배연기를 길게 날린다. 그리곤 그렇게 흘러간 노래들을 흥얼거리는데 그 뒷모습을 보노라면 나도 울적해지고 가슴이 아리다.
내 남편.
이 남자는 혼자만의 생각과 혼자만의 감정에 취해 자기만의 세계로 가 버릴 때가 많다. 아무 근심 없고 아무 생각 없던 나는 슬며시 화가 난다. 그런 뒷모습 정말 싫어, 여보야, 제발 그러지 마. 나도 눈물이 나. 나도 쓸쓸해져.
예전에 정시에 퇴근한다는 사람이 연락도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 기다림은 슬그머니 재수 없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급기야는 화가 끓어오르게 한다. 전화 한 통이면 마음 편히 기다릴 텐데 그 작은 것조차 배려 없는 남자 정말 짜증 나, 하며 툴툴거린다.
그러나 늦게 돌아 온 남편을 보는 순간 미움은 눈 녹듯 사라지고 반가움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남편은 왜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냐는 추궁에 다 큰 어른 무슨 걱정이냐며 유난 떨지 말라는 말을 한다. 반갑고 별 일 없이 돌아온 남편이 고맙지만 그래도 끝까지 묻는 말은 있다. 왜 늦었지?
그냥 무작정 걷고 싶을 때가 있어. 하염없이 걷고만 싶을 때가...
회사에서 전철을 타고 오다가 갑자기 걷고 싶어 내린 뒤에 2시간 거리를 그냥 터덜거리며 걸어왔다는 말을 하는 남편.
남편이 반갑다가도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또 짜증이 난다.
당신은 좋겠어. 걷고 싶다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하고 싶은 대로 행할 수 있는 당신은 자유인이야, 늘 꿈꾸지만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아이들의 엄마, 시부모님 모시고 사는 며느리. 죽도록 원하지만 결코 갖지 못할 그 찬란한 이름. 자유인. 당신은 참 좋겠어. 참... 좋...겠...다.
어느 날, 이웃 엄마가 쓸쓸히 걷는 내 남편을 보고 자신의 감추어진 어떤 면을 보는 것 같아 내 남편이 왠지 이해가 되더란 말을 하는데... 난 그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구나 그래요. 우린 누구나 쓸쓸하고 혼자예요. 어쩜 누구나 그렇게 버거운 인생을 살며 조금은 병적인 우울한 감정을 갖고 사는 지도 몰라요. 그런데요. 난 그런 감정을 단 한 번도 발산할 수가 없네요. 그게 너무 아프네요.
왜 그랬을까? 남편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울적하고 난 또 무슨 이유로 그것을 한없이 부러워했을까? 가끔 자기만의 세계 속에 틀어 박혀 슬픈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남편의 감정 속r을 비집고 들어가 묻곤 했다. 왜 우울하냐고... 아이들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집안 화목하고 비록 크게 가진 것 없어도 이 정도면 행복하고 재미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그 때 남편은 이런 말을 했다. 난 이상하게도 삶이 재미있다, 즐겁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아. 그러나 그런 질문을 하던 그 때 나도 남편과 크게 다를 바는 없는 그런 기분을 갖고 있었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그 분은 무슨 일이든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사시는 분이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성가를 부를 때 성가집을 그냥 마음대로 펼치기만 해도 그 때 불러야 할 곳이 척 펼쳐지고 우산이 없을 때 당신이 버스에 타면 비가 내리고 당신이 버스에서 내릴 때는 또 비가 탁 멈춘다고 하시며 아이처럼 행복한 웃음을 보였었다. 늘 당신은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며 그러니 매사 감사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던 그 분. 어느 날 그 할머니가 목욕탕에서 나오다가 미끄러지셨다. 심하게 다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 동안 몸이 불편하셨다. 그런데도 그 분은 감사 드린다는 말씀을 하셨다. 따님과 함께 사시는데 넘어졌을 때 옷이라도 걸친 상태였기 때문에 사위 분 앞에서 민망하지 않았다며 그런 다행이 어디 있냐고 발가벗고 넘어졌으면 어쩔 뻔했냐며 아이고, 주님, 감사합니다. 하신다.
모든 일상 생활에서 감사할 일 만을 생각하며 찾으시던 그 분. 지금 그 분이 그립다.
요즘 나는 여전히 크나 큰 고통 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계속 화가 나 있었다. 슬픔 뿐이고 암흑뿐이었다. 예전에 남편과 내가 울적했을 그 시절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해야 했던 시간들이었는지를 너무도 절절하게 깨닫고 있다. 그 때 왜 밝게 웃지 않고 왜 감사 드리지 않고 무슨 불만에 우리 마음이 그리 울적했는지 과분한 것들을 받고도 만족을 몰랐던 우리의 미련이, 우리의 교만이 자꾸 가시가 되어 내 맘을 따갑게 한다.
아주 작지만 지금 어렴풋이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그 깨달음 때문인지 더 이상 불행하지 않다. 내 옆에 가족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를 진심으로 깨달았으니 나는 지금 평화롭다. 그 깨달음이 눈물나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