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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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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


BY 개망초꽃 2004-06-10

갑자기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새벽 두시가 다 되어서 밥을  먹는다 했다.
그것도 냉동실에 얼려 놓은 밥을 녹여 먹는다 했다.
고기도 아니고 생선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스크림은 더더욱 아닌데..밥을 녹여 먹는다니..
난 한참 혼자서 웃다가...나도 냉동실을 뒤적여 봤지만 먹을게 없다.
얼마동안 얼려 있었는지 모를 냉동닭 한마리가 온 몸을 웅크린채 업드려 있고
돈까스 할 때 쓰던 빵가루가 냉동실 문간방에 살고 있었고
검게 변한 고기 짜투리와  두 눈이 멀어져 촛점 없이 날 바라보는 생선이 있었다.

난 버릇이 되어 버렸다.
새벽 두 시까지 안자는 버릇말이다.
이 못되고 기분 나쁘고 불편한 버릇이 언제부터 몸에 익숙해지게 되었는지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보면...

남편은 언제나 새벽 한시가 넘어야 집으로 들어 왔다.
결혼한지 두 달이 넘어서기가 겁나게 새벽 바람이 불어야 내 눈치를 살피며 들어왔다.
이유는 일 때문이라고 했지만 거짓말이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매일같이 새벽까지 일 시키는 회사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술에 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람을 피우는 향내도 나지 않았다.
언제나 바지 가랭이가 지져분하고
독한 담배 냄새가 향수를 뿌려 놓은듯 걸죽하게 내뿜고 있었다.
남편을 기다려야하는 새벽까지의 시간은 내겐 죽어 있는 시간이었다.
신혼방에 놓여 있는 거라곤 숨만 겨우 붙어 있는 마취당한 개구리 같은 불안한 내 심장과
뭔가에 지쳐 쓰러져 잠든 남편을 옆에 두고 새벽 두시가 넘도록 흘렸던 한숨소리.
커텐도 치지 않은 창에 검은색 도화지를 발라 놓고 세상과 차단을 한지 일년이 되어갈 때쯤
남편은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하고 내게 울며 스스로 자백을 했다.
카드빚과 사채와 회사돈을 많이 써서 회사도 그만 두게 되었다는...
그래서 이제 그 죄를 치뤄야겠다는...
빚을 많이 지게 된 건 자신이 잘못해서가 아니고 도박이 자기를 망쳤다는...
도박을 시작한 건 결혼전부터고 결혼전에도 빚이 많았다는...

이 모든 사실로 인해 우리 가정은 끝을 맺어야했지만
곧 태어날 아이로 인해 끝내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배속에서 눈물로 떠다니던 아이는 커텐을 가린 내 자궁속밖으로 밀려 세상안으로 들어오던 때는
환장하게 가을이 물든던 시월하고도 초입이었다.

결혼하기 전 나는 12시전에 잠을 꼭 잤었다.
다음날을 위해 잠을 못자면 하루가 피곤하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이유 때문이었다.
남편은 총각때부터 새벽엔 술을 마시든지 도박을 하든지 돌아다니든지
그걸 평범하게 생각하는 평범하게 즐겼다는 한심스런 타입이었다.
남편은 결혼해서도 자신의 버릇을 냅다 던지지 못하고
새벽 한시가 넘어 들어와 끌어 안고 자다가
분신처럼 아침에 같이 출근하고 새벽까지 놀다가 내 옆에 나란히 눕혀 놓고 잠을 잤다.
질투로 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편과 평생 헤어질 수 없는 도박이 때문에 난 노란병이 들고
윤기는 점점 없어지고 까칠해지고 웃음을 어떻게 웃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우울증을 앓아가고 있었다.

신혼 땐 새벽 두시까지 이를 잡듯 텔레비젼을 뒤적였고,
도박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자백하고서도 남편은 도박이를 미친듯이 끌어안고 살았을 때
난 첫아이를 끌어 안고 도망 보따리를 챙겨서는
새벽 첫차로 이 집을 떠나야겠다고 결심을 했다가
다시 아이를 끌어 안고 푸른 새벽녘에 잠이 들면
다시 똑같은 결심만 해야하는 아까운 이십대를 처참하게 넘어가고 있었다.
책을 보기 시작했다.신경숙님의 수필을 읽었고
쥐스퀸트의(작가 이름이 확실하니 않아요.정확한 이름 아시면 갈켜 주세요.) 좀머씨를 알았고
일본작가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밤을 새워가며 읽었다.
그리고 또 오미희님의 가요응접실과
자정부터 새벽 두시까지 에프엠을 들어가며 십자수를 놓았다.
그러다가 찾지 말아야할 첫사랑에게 새벽마다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새벽잠을 못이루며 온 정성을 다해 쓰던 되돌아 올 주소도 없는 편지가 마지막 편지가 될 때
컴을 배우게 되었고 새벽 두시까지 눈물로 너덜거리는 얼굴로 잡글을 버벅거리며 쓰게 되었다.
드디어 새벽에 들어오는 남편과 십육년만에 헤어졌을 때,
아무런 슬픔도 없었다. 한 줄기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가을빛으로 접어 드는 세상살이가 알싸하게 시원했고 섭섭했을 뿐.

이제도 나는 새벽 두 시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
버릇이 되어서도 그렇지만 새벽 두 시의 정적과 고독을 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갑자기라는 친구와 컴에서 새벽 두시까지 수다를 떤다.
쪽지로 별별스러운 세상 안과 밖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즐겁다.
친구도 나와 같이 푸르른 새벽녘의 고독을 나만큼 즐기고 있다.
새벽에 냉동실에 있는 밥을 볶아 먹고, 나도 새벽에 냉장고를 뒤적이며 간식을 먹는다.
그리 허기지지도 않는 가슴과 위장에 밥을 넣어도 잡다한 간식을 먹어도 우린 둘 다 말라깽이다.

뜨거운 감잎차 한 잔을 식히려고 새벽 바람이 들어오는 창 앞에 놓았다.
구운계란과 함께 먹으려고 준비중인 것이다.
내가 앞으로 해야할 첫번째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살을 좀 찌워야하고......
친구는 쉬는 날이면 산에 올라 바위를 끌어 안는 일이 요즘 들어 제일 즐거운 일이라 한다.
바위는 적당히 끌어 안고 멋진 남자나 하나 끌어 안고 산을 내려 올 것이지......
에그그...쯔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