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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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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패다.


BY 후지 2004-05-27

17년만의 통화였다.

그녀의 결혼식을 끝으로, 마치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처럼 우린 연락이 뚝! 끊겼었다.

그리곤 어제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어찌어찌 내 연락처를 알게 됐다며 전화를 해온 그녀가, 난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신 무장(?)이 덜된 나는 헤헤거리며 반가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저 상황이 그랬어서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시집오게 된 나는 그녀가 들려주는 고향 친구들 소식에 정말이지 유쾌한 시간을 보냈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나누자니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한 쪽 귀를 내 쪽으로

향하고 있는 남편 눈치도 보이고, 그 쪽 전화비 걱정도 쪼메 되고 해서 다음에 다시 전화

하자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었다.

아직도 하고 싶고, 하지 못한 말이 목구멍을 차고 넘쳤다.

전화를 해야만 했다. 바로 조금 전,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정말로 그런 여자들을 싫어 했었다.

오랫만에 만나 자기 자랑만 일삼는 친구들을 말이다.

그런데......

 

어제의 설렘이 많이 사그라든 싯점에서 우리의 대화는 이랬다.

 

......

......

 

아이들은 공부 잘하지?  (선공이다. : 허걱! 너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말이구나.)

아니, 초등학교때 외국 생활을 전전하다보니 별로......(수비: 초등학교때 일이 왜 중학교 성적하고 연결되는데??? 나의 수비는 조잡하고 비열했다. 인정한다.)

이번 중간고사 성적이 어떤데? (켁! 갑자기 말문이 막혀 채 내려지지 않은 녹차를 급하게 따라 마시다 목구멍을 데었다. 제길...)

컥...저기...뭐...못 봤어. 처음 시험이라 어찌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고....(말을 할 수가 없다. 그저 내 속의 자신감이란 것이 저 멀리 달아나 뭉게지는 걸 느꼈다.)

너 공부 잘했었잖아. 괜찮을 거야. 늦되는 애들도 있잖니?(오마낫! 그러니까 지금 우리 애들이 공부 못하는 걸 인정한다는 말이네?)

그렇게 못하는 건 아냐. 내 말은 1~2등을 못한다는 말이쥐~~~(이다지도 구차스럽고 사기스러울 수가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전교 1등으로 초등학교 졸업하고....(........그만!!!!!!!!!!!!)

......

......

나의 완패다.

공부가, 내 자식들의 성적이 나를 이처럼 작고 초라하게 만들 줄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나를 반성하려 한다.

내가 먼저 그녀을 자극했고(조기 유학 문제로), 그녀는 정확하게 나를 읽었고, 자기를 방어(?)한 것이다.

네가 행한 조기유학으로 넌 무엇을 얻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돈 들이지 않아도 공부만 잘하는데......라고 그녀는 나에게

말하려 한 것이다.

 

친구야,

내가 잘못했어. 잘난 척을 했었어.

그러나저러나 넌 좋겠다. 그렇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자식으로 둬서......

 

그런데...그런데 말이지....

오늘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내 표적이 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친구야.

이를 워쩌냐???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