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각또각 발치에서 드러눕는 그림자가 출렁거린다.
손에 쥔 까만 봉지가 유달리 무겁게 아래로 '쉭쉭'거리는 숨 뱉으며 뚱한 입술 내보인 채 다리사이로 자꾸만 감겨든다.
전방 30미터 목전에서 이리저리 헤매이는 언어들을 다 잡으며 이번에는 정말 빈틈없는 어거지로 걸죽한 입담을 물리칠 작정이다.
'그래, 손님은 왕인거야'
긴 호흡으로 氣를 불어 넣은 채 가게 앞에 당당히 섰다.
엉겹결에 살가운 인사로 맞이하던 눈길이 그녀를 발견하곤 이내 푹 퍼진 벌건 토마토 안색으로 변하더니 대놓고 기가 찬 듯 팍팍한 경상도 말투를 던졌다.
"뭔교! 또 왔는교? 아~따 정말 언성시럽네!"
"저... 어"
좀전에 다짐했던 말들은 보기좋게 부서지고 이내 무안함에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따끔한 침만 삼킨다.
"발...이 안...편해서..."
"참나! 꼴랑 만원짜리 신발 사 가가꼬 30분도 안 되서 3번씩이나 바까가는 사람은 내 생전 첨이네!"
쩡쩡거리는 주인의 화에 가게안에서 분주히 물건을 고르던 손길들이 뜨아한 눈길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일순간 당황스러움에 잔기침 뱉으며 꼼지락 거리고 눈치 보고있는 손가락을 뒤로 감추는 그녀.
"인자 이게 마지막이니께 또 오면 그 땐 물건 못 바까줍니더. 알그찌요!"
"아...예..."
화를 잔뜩 문 궁시렁 거리는 말 뒷전으로 물리고 다시금 신발을 둘러보는 눈길에도 조금씩 상한 감정이 비친다.
야무지게 골라보자는 생각은 깡그리 져버리고 애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앞 코가 펑퍼짐한 슬리퍼를 대충 집어 들었다.
생각해보면 주인 입장이 영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손님들이 있는 면전에서 핀잔을 받은 忿은 영 가시지 않았다.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도 없이 이내 등 돌리며 딴전을 피우는 주인 여자의 모습에 황망한 표정이 된 채 가게를 나서는 그녀.
그녀는 알고있다. 이번에도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는 걸.
늘 그래왔다. 모처럼 신발이나 옷을 살려치면 전선 처럼 미묘하게 얽힌 세포들이 하나 둘 피부를 뚫고 일어나 꼭 어디 한 군데라도 딴지를 걸고 넘어져야 분이 풀리는 듯 했으니까...
하여, 그 황당한 대우가 영 개운치 않으면서도 두고 두고 눈에 가시가 되어 어디 보이지 않는 곳에 쿡 쳐박아 두는 것 보단 뭉개지는 자존심 버리는 미련함이 한결 편하다 싶으니 어쩌겠는가.
날 때부터 태생이 이리도 못났으니 누구를 탓하랴만은 다른이처럼 옹골진 확실한 의사 표시가 맘 먹은대로 되지 않는 것이 두고두고 불만인 그녀였다.
역으로 굳이 따져 보자면 몸에 편안한 자연적인 것을 찾고자 함인데, 그게 잘 먹히지 않는 말주변 탓에 늘 우유부단이라는 딱지가 눌러 붙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자녀들의 옷이나 신발이나 속옷을 살 때는 덜컥 단박에 잘 골라대니 이 어찌 양다리 걸치는 모순적인 감정이지 않는가?
생각컨데, 꼼꼼하게 계산기 치며 적어대는 살림살이에 여사의 몫으로 떨어지는 배춧잎이 턱 없이 적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차린지라 간만에 벼루고 벼룬 맘으로 골라대니 그럴지도 ...
씩씩 거리는 콧김내며 성큼성큼 바람 내친 걸음이 어느새 문전에 이르렀다.
"엄마 왔어!"
과자 부스러기 묻은 입을 대충 털며 아이가 문을 열었다.
이리저리 그녀의 몸을 쭉 내려다 보는 눈길에 실망이 잔뜩 달렸다.
"에게? 뭐야! 엄마꺼만 샀잖아!"
달갑잖은 인사에 맘이 또 꼬인다.
"너,숙제 다 했어?"
던져지는 말투를 보아하니 심기가 편치 않음을 알아차린 아이는
"아차차차! 그걸 깜빡했네" 라며 호들갑을 떨며 사라진다.
순간,괜시리 자신에게 짜증난 손길로 냅다 봉지를 집어 던졌다.
"탁!" 외마디 비명과 함께 봉지에서 삐져나온 슬리퍼가 기세등등하게 그녀를 쬐려보며 딴지를 걸어온다.
"마음에 안 들면 어쩔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