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을 팔아 삼남매를 키우셨던 엄마.
좋은 과일만 골라 자식에게 먹였던 엄마.
힘드셔도 힘들어 하시지 않고 새벽 거친 바람에 몰래 우시던 엄마.
철부지 아이들 셋을 보듬고 지금까지 혼자사신 엄마.
지나고 나니 기억속이라지만 그 시절엔 고단한 삶을 원망하며 사셨을 우리 엄마...
어떤 사람도 엄마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못했다.
스물여덟에 엄마는 과부가 되셨다.
동네사람들이 내가 어려 못 알아 듣는 줄 알고 내 등뒤에서 가슴에 꽂힐 말을 했다.
그때 내 나이가 여덟살이니까 가슴이 없는 애기로만 생각을 했겠지만...
"남편 잡아 먹은 년이여."
"얼굴이 너무 예뻐서 팔자가 더러워."
엄마는 한줄로 쫄로리 붙은 금낭화꽃처럼
딸만 여섯인집에 얼굴도 안보고 데려 간다는 셋째딸이었다.
얼굴도 기억이 안나는 나의 아버지는 조상대대로 짧게 살다 짧게 떠나는
혼탁한 체질을 갖고 태어나셨다.
아홉 형제중에 아버지 마져 삼십초반때 돌아가시고 단 두 분만 살아 계시는데
지금 두 분 다 고혈압과 성인병으로 고생을 하고 계신다.
단명을 하는 집안의 아버지를 만난 엄마 팔자가
남편 잡아 먹은 년 팔자가 되었다는 걸 어느정도 큰 다음에 알았지만
동네사람들이에게 들은 그 말은 지금도 내 수첩속에 볼펜자국처럼 남아
흐려지긴 했지만 잊혀지지는 않는다.
아버지를 잃고 엄마는 돈을 벌어야했다.
일단은 서울로 가는 보따릴 챙겨 내가 초등학교를 가기 위해 넘어야하는 고개를 엄마는
어린 자식 셋을 두고 뒤돌아 보며 뒤돌아보며 눈물로 눈물로 넘어가셨다.
엄마가 해 본 장사는 술장사만 빼고 다 하셨다.
왕십리 중앙시장에서 터를 잡고 노점을 하셨는데
맨나중까지 오래도록 한 장사가 과일장사였다.
새벽부터 밤 12시까지 과일을 반질반질 닦아 수북히 쌓아 놓고선
지나가는 행인들의 시선을 끌어 들였다.
학교가 끝난 뒤 엄마에게 가면 제일 좋은 과일을 먹으라고 골라 주셨지만
그것조차 달갑지 않았던 철없던 나이의 큰딸 같지 않은 큰딸인 나.
내 나이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어서야 엄마의 심정을 지난 수첩처럼 뒤적이게 되었으니...
엄마는 가끔씩 새벽에 일어나서는 기도를 하시다 우셨다.
맨처음엔 평범하게 "하나님 아버지~~~오늘도 일용한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다가 "애비없는 우리 아이들 어디가서 구박받지 않고오으으흐흐흐~~~
학교에서도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게에에혀~~~주시고오오으흐흑~~"
그러면 나도 같이 슬퍼져 옆으로 돌아 누워 귓구멍으로 눈물이 고이도록 숨죽여 울었었다.
그러나 엄만 아침이면 기도를 아무리 해도 풀어지지 않는 서러움과
새벽에 나가 밤이 으쓱하도록 장사를 해도 위장에 밥넣기도 바쁜 고단함과
고만고만한 자식 셋을 홀로 키워야하는 힘겨움과 불쌍함을
후둑후둑 털털털 털고 일어나셔서 과일 장사할 때 두르던 앞치마를 걸치고
따뜻한 밥과 된장찌개를 끓여 아침을 차려 주셨고 도시락을 싸 주셨다.
엄마가 방바닥이 꺼지도록 한숨을 쉴 때 나도 앉은뱅이 책상이 주저앉도록 숨을 쉬었다.
엄마의 눈물 팔자따라 나도 눈물 서린 팔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엄만 자식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셔서 나도 힘들다고 표시를 내지 못했다.
사춘기가 뭔지 혼자 치러냈고 고민이 있어도 혼자 끙끙거리다 지우곤 했었다.
가난이 지겨웠고 가난이 무서웠다.
가난은 비 온 다음날 길게 늘어져 죽은 지렁이 보다도 징그럽고
나이론 끈보다 질기고 파내도 파내도 끝이 없던 흙구덩이었다.
싸워도 싸워도 너만 잘났다 하는 싸움이었다
내가 가진 고민이 제일 클거라 단정짓지만
그래도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다는 걸 보아왔고 지금도 보고 있다.
제일 불쌍한 아이들은 아버지가 안 계신거고
아버지가 안 계신 것 보다 힘든 건,어머니가 안 계신거다.
그리고...더 힘든 건 부모님이 다 안 계신거다.
난 어머니가 살아계시니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인가...
사랑이란 가소로운 것이 나를 속이고 어깨에 짊어진 두 아이들 삶이 무거울 때.
엄마의 삶과 나의 삶을 견주어 보았다.
그래도 내겐 남아 있는 것이 많았고 추수릴 것이 한웅큼씩 되었다.
그러면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 냄비에 밥을 얹어 놓고
하늘이 넓다란 창밖을 보았다.살아서 숨쉬고 있는 풀꽃들을 보았다.
나도 지금 이 순간은 힘들고 고단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래 그렇게 힘든적이 있었지 하겠지.
지금 총천연색인 일들이 한 순간에 찍힌 흑백사진처럼 흐릿해지겠지.
지금은 질기고 긴 싸움이 오래 달리기처럼 숨이차고 주저앉고 싶지만
흰띠쳐진 종착점은 보이겠지.
그리곤 잊혀지겠지.컴컴한 흙구덩같이 망막했던 일들은 잊혀지겠지.
그랬다,참.
엄마보고 남편잡아 먹은 년이라 하면서 딸도 엄마 팔자를 닮아간다더니
나도 홀로되어 과일 장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난 노점이 아니고 가게가 있다.엄마는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러신다.
엄마는 제일 싸구려 과일을 파셨지만 난 제일 비싼 농약 안 친 과일을 판다.
엄마는 내가 농약 안 친 과일을 파는 걸 동네사람마다 교회사람마다 자랑하신다.
나의 엄마는 과일장사 아줌마였다.
나도 과일을 파는 엄마가 되어 있다.
참으로 재미있는 두 여자의 닮은 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