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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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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쓰러질 것 같은 날에...


BY 天 2004-05-20

압력 솥 추가 "취-이익" 마른 숨을 뱉어 내고 있다.

꼬장꼬장한 성미가 이내 허연 수증기를 되새김 질 하며 제 몸 달아 오른다 안달이다.

'그래, 어서 일어나야지'하면서도 상반신과 하반신의 팽팽한 싸움질에 몸을 쓰질 못한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건만 증세가 변함이 없다.

몸이 아파서 인가 허기진 맘이 수저 하나 드는 것 조차 허락치 않는다.

 

'무리하지 말고 푹 쉬셔야 합니다.'

병원에서 내려준 얼토당토 않은 처방전에 쓴 웃음 지우며 4살 배기 딸 애 손을 잡으며 신호등 앞에 섰다.

넓다란 하얀 선 위로 쩍쩍 다리 벌리며 건너는 사람들 무리를 벌써 두 번이나  멍한 시선으로 흘려 보냈다. 발이 말을 듣질 않는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저 풀석 주저 않아 엉엉 울고 싶을 정도로 힘겹다.

몽롱한 약 기운에 잠시 다리 접고 새우잠을 청해 보려 하지만 이내 아이의 칭얼 거림에 그 마저도 배부른 투정이 되어 열 기운 가득 문 입술로 손을 놀린다.

이리저리 굴러 다니는 장난감과 세탁 되어진 빨랫감과 이젠 수분을 다 증발시킨 말라비틀어진 그릇들이 따가운 몸을 벅벅 긁어 대고 있다.

눈길에 잡히는 일감들이 눈물나게 버겁다.  어느 하나 시간을 놓고 마냥 기다 릴 수 없는 고통의 손짓이다.

누구도 살가운 도움을 주지 않은 탓에 훌훌 거리는 죽 한 숟가락 넘기는 것도 가당치 않은 일이다.

빠드득 거리는 손 마디로 힘겹게 냉장고 문을 열어 대충 잡히는 대로 씻고 자르고 끓여 댄다.

고무 장갑을 꼈는데도  수돗물이 날카롭게 살을 할퀴고 지나가는 것 같다.

습기를 빨아들인 머리칼은 눅눅거리고, 열기로 타 들어간 피부는 심하게 버석거린다.

퀭한 눈은 짠내나는 물기만 끈적 거리고, 입술은 굴곡진 거북등 처럼 깊게 패여 있다.

어느 하나 성한 게 없는 병자의 기색이다.

서럽고도 서러운 5월 햇살 가득 한 날, 그 아름다움을 이렇게 넋 놓고 보고만 있다.

나가자고 보채는 아이 등에 미운 눈길이 꽂힌다.

부산스런 움직임에 마지 못해 주섬주섬 챙겨드는 손길에 현기증이 감돈다.

정말이지 쉬고 싶다. 다 핑계로 물리고 깊은 잠 한 번 자고 싶다.

아이 신을 신기고 나서려는 찰나 시끄러운 계단 울림을 내며 큰 애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엄마! 내일도 학교에 모임이 있대!"

내 몸 아픈 걸 시샘이나 하듯 밀려둔 행사가 이번 주에 다 겹쳤다.

벌써 이틀을 다녀왔건만...

금요일은 아이 치과 예약, 토요일엔 전 주에 잡아 논 약속 두 건. 한 번을 펑크 낸 탓에 또다시 변명을 해대지 못함에 그저 몸 달아오르는 아픔만 원망스러울 뿐이다.

정말 아파서 쓰러질 것 같은 날에 속으로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는 위로만이 그리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