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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할머니에 대한 기억


BY 예원맘 2004-05-12

울 할머니에 대한 기억....


울 할머니가 투병생활 7년만에 어제 세상을 뜨셨다.

내가 할머니의 품을 떠난지가 14년째...

딸아이 예원이가 유치원에 다니게 된 뒤로 아침마다 

머리를 손질해 줄라치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스테인레스 대접에 스테인레스 젓가락 한짝 그리고 참빗...

투박한 손을 대접안에 들어있는 물로 적신다음 젓가락으로 나의 앞가르마를 

가르신다...잔머리 한올이라도 나풀거리면 큰일날것처럼 그렇게 할머니는

건조한 손에 물을 발라가며 나의 머리를 묶어 주셨다.


나 어렸을때 학교에서 돌아와서 할머니가 계시면 참 좋았다..

할머니는 항상 내편이셨고 항상 “내딸..내딸..”하시며 엉덩이를 다독거려주셨다.


울 할머니는 42살에 울 엄마를 낳으셨단다.

그래서 울 엄마 기억속에 할머니는 항상 할머니셨단다..

8남매중 울 엄마가 막내딸이니 그럴 수 밖에....

못미더운 막내딸을 위해 할머니는 늘 우리집에 오셔서 며칠씩 계셨고

난 할머니가 계시면 늘 마음이 안정되고 포근하고.....그냥 좋았다.

지금도 그때 그런 느낌을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고2때 오빠와 자취를 했었다.

그때 오빠는 고3이었기 때문에 늘 집에 늦게왔었고 

난 늘 할머니가 집에 와 계시기를 기대하면서 귀가를 했었다.

간혹 집에 돌아왔을때 방에 불이 켜있으면 입가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할머니..”

하고 들어가면 할머니는 늘 짠한(안쓰러운) 표정으로 날 맞아주셨다.

.................

[할머니는 따뜻한 밥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여서 밥을 먹이신다.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고 단지 김치와 식용유와 할머니의 사랑만 들어간 김치찌개가 

냄비에서 보글보글 거리며 내 입에 군침을 돌게 한다]

.................

고3이 되어서는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외삼촌댁에서 할머니와 같은방을 쓰며

지냈다.

너무나 깔끔하시고 근검절약하시는 삼촌은 내가 밤늦게 까지 불켜놓는 것을 

싫어하셨고 그런이유로 할머니는 나를 더욱 감싸셨다.

고3의 귀가 시간은 9시 ..

할머니는 늘 늦은시간에 시간맞춰 교문가까운 골목에서 늘 나를 기다리셨고 

할머니는 내 도시락가방을 메고 난 할머니의 팔짱을 끼고 ...버스로 한 3정거장 되는

거리를 걸었다. 마치 이세상에 나와 할머니만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어떤날은 할머니에게 생리대 심부름을 시키고 난 가게 밖에서 기다리고...


어느날이었다.

마중나오신 할머니가 “은갱아, 니 좋아하는닭괴기 튀겨놨다...”

방문을 여니 흠~내가 좋아하는 닭고기 냄새~

그런데 닭고기는 어디있는거지?

할머니는 책꽂이 뒤에서 꼬깃꼬깃한 종이에 싸여진 봉지를 쫙 펼치지도 못한채

고기를 두어점 꺼내어 내손에 쥐어주시고는 “얼릉 묵어라..먹고 싶었제?”.....

.........

차디찬 닭고기를 쥐어들고 아주 맛나게 먹었다..

‘도대체 언제 튀겨다가 감춰 두셨을까?’

할머니는 “이따 공부함시롱 다 묵어부러라 잉?”하시며

이번에는 마술처럼 콜라 한병을 내 놓으신다..........


..........................


올해 97세 연세로 세상을 뜨신 울 할머니는

기억력도 좋으셨고 말씀도 잘하셨고 글도 읽으실만큼 그 연세에 

총명하셨다..이시대에 젊은이셨다면 아주 멋있게 사셨을 울 할머니...

....

결혼 후 두어번 할머니를 뵈었을 적에 할머니는 

“은갱이왔냐...아이고아이고내딸왔냐.......”하지만 할머니는 사람의 형체만 알아 보실뿐

노안으로 내얼굴을 뚜렷하게 보실 수는 없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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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 

난 성당에서 기도드렸다.

주님! 우리 할머니를 주님곁에서 편안히 쉬게 해주셔서

엄마의 울적한 마음을 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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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편히 쉬세요...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삼촌들이랑 이모랑 우리 아부지 

만나셔서 외롭지 않게 지내세요...

할머니 손녀 은경이 할머니 가르침따라 바르게 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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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제....그라제......그랑께 내딸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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