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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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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튀김


BY 남풍 2004-05-13

불을 켜 놓았는데도 눈이 침침한 듯 느껴지는 것은 안개 때문이다.

 

가루 입힌 고구마에 튀김 옷을 입혀 끓는 기름에 떨어 뜨린다.

풍덩..하면 바로 튀어 올라야 튀김이다.

그러나 하나, 둘, 셋.. 을 세어도 기름 안으로 빨려 들어간 고구마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건  기름 온도가 180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 후, 떠오른 고구마는 새까만 기름 찌꺼기가 묻어 점박이 튀김이 되고 말았다.

도무지 손님 상에 낼 수가 없어 다시 네개의 고구마를 튀겨 낸다.

 

아침에 딲아냈는데도, 점심 손님을 치르고 나자, 튀김 팬 밑에는  찌꺼기들이 팬 바닥에 내려 앉아 있다.

기름 온도을 식히고, 휘저어진 기름의 흔들림을 가라앉히고...

조심스레 팬을 기울여 살짝 밑에 가라 앉은 것만 남기고, 스텐 양푼이에 기름을 쏟아낸다.

검은 팬에 있어 검게 보이던 100% 옥수수 식용유는  은색 그릇 안에선 고운 연노랑색이다.

 

두루말이 화장지를 뜯어 팬의 밑바닥에 남아 있는 검은 입자들을 딲아 낸다.

흰색 엠보싱 화장지는 이내 검은 기름 투성이가 되고 만다.

딲아낸 팬에 기름을 옮겨 부으니, 기름은 도로 검게 보인다.

 

튀김 기름을 다시 끓인다.

튀김 반죽을 조금 떠 떨어 뜨리니, 파스스 하며 기름 위에 동동 뜬다.

고구마를 넣으니 하나, 둘.. 고구마 주변에 포말을 일으키며 끓는 기름은

고구마를 익히고 있다.

 

저 고구마처럼 나의 내면으로 풍덩 던져 지는 일들.

가만히 내면에  가라앉아 있다가,

 다닥다닥 달라 붙어 올라오는 찌꺼기 같은 기억의 부스러기들은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아름답게 보지 못하게 한다.

흰 고구마 반죽을 점박이 튀김으로 만들 듯이.

 

어버이날, 나의 동업자의 부모님이 식사하러 왔다.

공연히 내 가슴이 튀김팬의 기름처럼 끓더니,  심술 묻은 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건 필시 질투다.

내 내면에 가라 앉아 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다.

내가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너무 쉽게 맞이 하는 동업자에 대한 부러움이다.

시커먼 저 입자들이 본래 하얀 가루였듯이, 이 날카로운 소리는

'아! 어머니!'하는 그리움의 소리다.

 

 

고요해 보이는 내 안에 불쑥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여, 아파지는 일이

어디 그일 뿐이랴.

 

딲아내 본다. 다른 그릇으로 옮겨 담아 본다.

질투를 골라내고, 화를 가라 앉히고...

새까맣게 찌꺼기가 묻어 난다.

 

화나 질투는  안개처럼 눈을 침침하고, 어둡게 한다.

틱낫한 스님은 말했다.

화는 감자이니 잘 익혀야 한다고.

화를 다스리기 위해선 자기 안의 화를 인정해야 한다.

 

나는 고구마를 익히고 있다.

'너 화 나고 질투 나는구나.~그래.

어머니 보고 싶구나.~그래

너의 동업자가 부럽구나.~그~래. 토닥토닥

 

나는 내 안의 어린 아이를 안아준다.

내 안의 화난 아이가 잠이 든다.

 

고구마가 잘 익었다.

건져내니, 뜨거운 김과 함께 고소한 냄새가 난다.

투명해 보이는 튀김 옷 안으로 노란 고구마 속살이먹음직스럽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