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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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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BY 아리 2004-05-10

어제는 종일 비가 내렸다

아이들이 클수록

접촉하는 시간은 줄고

따라서 본의든 아니든 간에 대화하는 시간은 무척 줄어든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늘 일기장에 답글을 쓰면서 그 속에 잔소리와 참견과 좋은 소리와

소리 소리로 내어놓아야 할 것들을 글로 담아주곤 했었는데 ...지금은 형편이 다르다

요즘의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아이들은 컴퓨터에서 꼭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메신저를 켜놓고 이 친구 저 친구와 접속하여 대화하고

가끔 엄마가 들여다 보면서 이것 저것 물어보면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마저 들 지경이다

더구나 큰 아이인 경우에는 핸 펀을 꼭 쥐고는 누군가에게서 온 전화라도

엿들을까 전전 긍긍이다

적당한 간격속에 본인만의 프라이버시를 인정하라는 소리없는 메시지다

혹은 가끔 메신저 안의 친구들이 이상한 닉네임으로 나타나서

나는 전혀 못 알아들을 것  것 같은

대화를 시작하면 창을 가리고 엄마가 비켜주었으면?하는 눈치가 간절하다

 

예전에는 언제나 대문이 열려있고 온 집안에  행상이나 거지나 심지어 상이군인 아저씨까지

이사람 저사람 별사람이 다 드나들었다

그들의 신분이 무엇이든

끼니 때가 되면 찬이 부실해도 밥을 챙겨주었고  정말로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주인집이니 셋집이니

한집에 여러가구의 사람들이 득실거리며 몸을 부딪히고 감정을 달리한 싸움까지

일어나기까지 했었다  

 

한집에서도 예닐곱의 형제들이 한방에서 이일 저일을 겪으며

늘  이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면서 밤이 짧다는 듯 하루가 지나갔다

그 속에서 늘 시끄럽고 복잡하고

너의 입장과 나의 입장이 확연히 달랐다

나름대로의 입장은 달라도 만들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규율이 생성되고

우리는 늘 본의든 아니든 남을 배려하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지금은 원룸이 인기고 심지어 독신까지도 인기가 있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겠다는 고집이다

 나만의 공간에서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도 않고

 나 자신의 영역의 확실한 구분 같은 것으로 규정지어놓고 사는

 

 이율배반적으로 외로움에 처절히 몸부림 치면서도

 그 자유를 방해받지 않은 공간을 즐기고 싶다는 데야 ..

 이래 저래 부모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대화 또한 쉽지는 않다

 대화의 시간이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상대에 대한 인식은

 더욱 더 멀어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더구나 딸일 경우에는 매사를 모두 설명하려 들고

 세심하고 자상한 부분이 많지만

 아들의 경우에는 대체로 무덤덤하고 무관심이 생활화 되어있다

 할 수 없이 나 혼자 따라다니며?이야기를 시킬 수 밖에

 그나마 아직 퇴물 기생 취급을 하지 않아주니 고맙게 생각하는 수 밖에...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며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이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끔씩 아들아이를 차에 태우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엄마가 있어서 인지 대화가 술술 이어진다

 

"다들 결혼하는데 @이 형아는 정말 결혼이 늦어지는 거 같아"

 

"그래 막상 결혼이란 걸 놓고 보면 어려운 문제이지 평생을 같이 할 사람인데

평생이란 생각을 하면 공연히 어려워지잖아 왜?

더구나 본인이 잘났다고 생각하는데 눈은 높아지고 이상은 먼 것 아니겠니

거기에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사고 방식의 차이도 상당하고

이래 저래 결혼이 늦어질 수 밖에 없구나 "

"이담에 너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

"남자는 여자를 하나의 편린으로 밖에 생각하는데 그 문제가 있지 "

" 편린이 뭐야 ?"

"하나의 조각 하나의 부분 .."

 "엄마는 네가 정신적 수준이 높아서(ㅎㅎ)

 이 정도의 말은 거뜬히 알아듣는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했지..."

"이야기는 항상 청자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해야하는 거여여 ..."

갑자기 목소리가 깔린다 (요녀석이 제법이네 )

중얼거리면서 '차라리 그럼 주석을 달아주시던지'..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따가왔다

말을 하되 청자의 입장을 배려하고 하는 이야기라 ...

다시 생각케 하는 말이다

 

같은 거리를 지나면서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를 하면서

청자의 입장을 배려하면서

좀 더 가까워지는 대화를 익혀야겠다

좀 더 마음의 문을 여는

 

 

언젠가 동아리 후배가 전해준 메모가 생각난다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많아도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적은 것 같아요 ..

누나는 그 적은 사람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

물론 나에게 아부하듯이 써준 메모다

그리고 그때 그 말이 정말로 피부에 와 닿았다

모두가 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경청하거나 온전히 이해하고 보듬어 주려는 마음이

정말로 부족하다는 느낌과 함께

 

어쩌면 나는 말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반성을 하면서

이 저녁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