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예수님 탄생'을 온 국민이 함께 축하하고, 봄이면 '부처님 탄신 일'을 모두 어울려 기리고 시절이 오면 축제의 한 마당이 곳곳에서 흥을 돋군다.
집집마다 잔칫날이면 차리는 손 푸짐하고, 찾아 드는 발걸음 흥겹고...울타리 너머 격없이 어우러지고,
그게 우리 민족의 정서 이길래 그래서 다툼없이 多종교가 이 땅에서 공존하며 존중 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 본다.
벌써부터 각 사찰 도량을 시작으로 주변마다 거리마다 이미 오색 등 행렬이 줄을 짓기 시작했음을 볼 수 있다.
불자가 아니어도 아, 이맘때 부처님 오신 날이구나 눈치채기 어렵지 않은 광경임에 틀림 없을 거다.
그것을 불교 용어로 '燃燈'이라 하는데 '등불을 밝힌다'는 뜻이 된다.
'蓮燈'이라 표현 하게 되면 '연꽃 모양의 등'을 일컫는 말이 되는 것이니 同音異意가 된다.
모름지기 보살은 연꽃같이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보면 그래서 등도 역시 상징적인 연꽃 모양이 주를 이루는 모양이다.
큰 사찰에서는 초파일 행사로 연등 만들기 시연도 하고 전시회도 하는데 만들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또한 색다르고 재미있는 축제가 된다.
말 나온 김에 잠시 蓮燈 만드는 과정을 소개 해 볼까 하는데 그냥 두서 없이 말 하자면 이러하다.
먼저 곱게 물들인 주름잡힌 한지를 한장 한장 떼 내고, 그 다음은 꽃봉오리를 봉곳하게 빚기 위해 풀 바른 손가락으로 끄트머리만 살짝 잡아 야무지게 비틀어 꼬고, 그리고 나선 초벌 바른 틀에 한 장 한 장 빚은 꽃잎을 균형 맞추고 색깔 맞춰 돌려 붙여 가게 된다.
연꽃 등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협업과 분업이 필수인데, 수십 명의 인원이 나란히 줄지어 앉아 등 제작 삼매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 이것만으로도 가히 장관이라 할 만 하다.
경험 없는 새내기는 철사를 이어 틀 만드는 일부터 맡게 되고, 그 다음 단계는 풀칠 하는 일, 그 다음은 초벌 바르는 일을 맡고, 그 다음 단계쯤 되면 다발로 되어 있는 연꽃 종이를 낱장 낱장 떼어 내고, 그 정도 수련이 이뤄져야 꽃잎을 비비게 되고 가장 고수는 꽃잎 돌려 붙이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쯤 되면 숙련공이라 할 만 하다.
단순한 일임에도 사람에 따라 속도와 모양내기에서 여간 차이가 나는 게 아니다.
나름대로 맡은 일에 능수능란 한 솜씨를 보이는 분들은 이미 한 두해 쌓인 경륜이 아니다.
허나 잘 하고 못 하는 솜씨가 어울러야 한바탕 웃음 잔치가 벌어지게 되고, 그 작업을 하다 보면 너나 없이 얼마나 환희심이 나는 지 해 본 사람 아니면 아마 모를 거다.
연분홍, 진분홍, 꽃 분홍, 연두, 초록, 진 초록, 노랑, 주황...나풀나풀 소복히 쌓인 한지 꽃잎과 그 꽃잎 빚는 동안 그대로 물들어 버린 오색 손가락...마치 유치원생 공작놀이 하는 듯 만지고 빚고 만들며 즐거워 하는 그 맘은 이미 천진佛이 따로 없다.
이렇게 공들여 완성된 등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한결같이 소망하기를 만든 이의 정성과 밝히는 이의 정성이 욕심없이 담겨 어두운 곳 한 곳 남김없이 불 밝히리라 그러면서 마무리 된다.
배운 것을 더듬어 잠시 연등의 뜻을 조금만 더 언급해 본다면 이러하다.
등을 밝힌다는 것은 어둠을 밝힌다는 뜻이니 지혜를 일컬음이 본래 뜻이라 할 수 있다.
허나 등 밝히는 본래 뜻을 잃어 등불에 욕심을 담고 또한 소원의 크기 만큼 등의 크기를 정하고, 돌아 올 복의 크기를 가늠하여 등 값으로 정하고, 그 욕심의 옳고 그름도 헤아리지 못하는 그런 경우가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비록 보잘 것 없는 등이었지만 부처님께 정성껏 공양한 가난한 여인의 등불은 아무리 끄려 해도 밤새 꺼지지 않았다는 '가난한 여인의 등불'이라는 교훈이 불가에서는 전해져 온다.
아무리 크고 화려한 등불도 기름이 다하니 꺼졌지만 그 꺼지지 않는 등불의 의미는 무얼까...
그래도 나는 이렇게 철없이 말한다.
소원을 좀 과하게 담는 들 그게 뭐 그리 큰 죄가 되겠느냐고
힘들어 어두워진 중생 맘에 등 하나 불 밝혀 부처님 가까이 달아놓고 '나 좀 봐 주세요...'
젖도 엄마가 보채는 아이 한테 먼저 물린다는데, 나 고픈 거 먼저 채우면 안될까 하는 그 절실하고 소박한 맘에 자비하신 부처님이 노여워 하실 리 없다.
등 달면서 행여 도둑질하고 강도질 할 심보 고약한 사람이야 있을 리 없고..(그렇죠?)
그러니 오색 찬연한 등의 불빛 만큼 다는 이마다 각색의 소원을 담아 나를 위한 등도 밝히고, 너를 위한 등도 밝히고, 우리 모두를 위한 등도 밝히고, 자비의 등도 밝히고, 감사의 등도 밝히고, 우정의 등도 밝히고, 지혜의 등도 밝히고...
어둡고 음습한 곳이 있다면 슬프고 암울한 곳이 있다면 그 하나하나 밝힌 불빛이 모여 그 어디라도 광명이 고루 고루 비추이게 될 텐데 각자 욕심을 좀 낸들 어떨까.
나는 올해도 발길 닿고 인연 닿는 도량에 등을 밝힌다.
올해는 이 아컴방 지기들을 위한 우정의 燈도 하나 추가로 밝힌다.
어느 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래야겠다는 마음이 불현듯 일었고, 일고 나니 이는 그 맘이 스스로 더 좋아 흥분까지 했지만 혹여 오해의 소지가 있으려나 순간 뒤미친 우려도 생겼다.
하지만 종교라는 의식을 떠나 그저 이웃사촌끼리 나누는 정표고 덕담쯤으로 생각 하면 내 이 작은 맘이 크게 곡해될 일은 없을 줄로 믿고 '가난한 여인의 등불'이 되어 이 아컴방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 되지 않을까 감히 그리 생각 한다.
그러니 아컴방 지기들에게 알립니다.
무거운 고민 꾸러미 있음 꼭꼭 묶어 택배로 보내시면 등 꼬리에 달아 불 밝히는 연료로 쓰겠습니다,
다 태워 재가 되면 '고민 끝!' 아니겠습니까?
참고로 제가 "아컴 가족들 행복을 소망합니다"라고 불밝힌 燈은 서울 봉은사 사찰에 있습니다.
그러니 골치 아픈 꾸러미 그리로 보내시면 되겠지요...*^.^*
모두 모두 행복하시기 진정으로 발원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즈음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