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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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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겨질 지도 ...


BY 낸시 2004-04-26

부쩍 잦아진 남편의 기침소리가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이 년 전 폐암 수술을 받은 남편의 기침은 여느 사람의 기침과는 다른 의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년 전 남편이 수술을 받을 때 난 아무도 병원에 오지 말라고 했었다.

병원에 와서 수술실 앞에서 기다린다고 도움이 될 것도 아니고, 숨이 막힐 만큼 사람이 많은 병원의 엘리베이터를 보면서 필요없는 사람이 병원을 찾는 것은 정말 필요해서 병원을 찾는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앞세워서...

혼자서 수술실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다가 초초함도 극복할 겸, 수술이 끝나고 나오면 간호하느라 밥 먹을 시간도 없을 것 같아 휴게실에 가서 죽을 사 먹었다. 

폐암 수술을 받는 남편을 두고 휴게실에 앉아 죽을 먹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실소하면서...

그 때는 그래도 지금처럼 불안하지 않았다.

초기에 발견했기 때문에 수술 결과가 좋을 것이라는 낙관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기침소리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이다.

수술 후 폐암이 재발했을 경우 치료 가능성에 대해선 낙관할 수 없는 것이니까...

남편의 기침소리를 들으면서 난 이 세상에 혼자 남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난 잘난 체를 많이 하지만 그 만큼 많이 의지하고 기대고 살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자존심을 코에 걸고 사는 사람이 그 만큼 열등감이 많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엊그제 일이다.

남편의 기침소리에 불안해진 나는  아침 밥상을 차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남편에게 투정처럼 밥먹기가 싫다고 하자 남편이 퉁명스레 말을 받았다.

먹기 싫으면 그냥 굶고 일을 하러 가라고...

그리고선 남편은 자기가 한 말이 미안했는지 부엌에 가서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난 남편의 퉁명에 삐진 사람이 되어 밥먹기를 거부하고 그냥 출근 준비를 하였고...

밥먹고 가라는 남편을 뿌리치고  남편에게 농담처럼 진담처럼 한 마디를 하고 출근을 했었다.

"야, 각시가 밥맛이 없다는데 그렇게 퉁명을 떠는 남자가 어디 있냐?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나는 간다."

초등학교 사학년 때 만난 남편에게 가끔  이런 말투를 사용한다.

그리고 출근했는데 슬그머니 남편이  걱정이 되어 점심 때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이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지만 내 입에서는 엉뚱한 소리가 나간다.

"여보, 나 배고픈데 밥 사먹을 돈도 없고, 크레딧 카드도 당신이 가지고 있고, 당신 각시 배고파 죽겠다."

그 정도 융통성도 없으면 굶으라고 한번 더 퉁명을 떨고, 자기는 선배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 되돌아 가 점심을 사 줄 수도 없다고 남편은 대답을 하였다.

"알았어, 별수 없지. 그럼 그냥 점심도 굶을 수 밖에..."

그리곤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남편은 나타났다.

점심을 사 주기 위해...

남편은 늘 그랬다.

입으로는 퉁명을 떨지만 이 세상 누구보다 날 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알 수 있을 만큼 내 투정을 받아주었다.

"난 당신 아버지가 아니야."

막내딸로 자라 어리광이 심한 내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지만 그는 내 아버지 만큼이나 내 억지를 잘 받아 주었다.

화가 나서 너랑 안 살겠다고 팔팔뛰는 나를 억지로 끌어안고 그는 말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정말 모르겠냐?"

나를 혼자 남겨 놓고 먼저 가면  내게 얼마나 나쁜 짓을 하는 것인 줄 아느냐고 물으면 그는 안다고 한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갑자기 내가 한없이 어린애가 된 느낌이 든다.

남편이 없으면 난 어떻게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