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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꿈


BY 낸시 2004-04-22

하루종일 걸려 만들어진 커튼을 바라보며 한없이 흐뭇하다.

정말 내가 만든 것이 맞나 싶게 이쁘다.

물론 디자인은 디자이너 아이리스가 한 것이긴 하지만 그 디자인을 보고 만든 사람은 나다.

아이리스의 디자인은 작품으로 만들어내기가 결코 수월하지가 않다.

여러 종류의 천을  이용하기 때문에 천을 서로 이어 붙여 모양을 내야하고 무늬 있는 천을 즐겨 사용하는 까닭에 무늬를 맞추어 리듬감도 살려야 한다.

아이리스가 다자인한 커튼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천을 앞에 놓고 고민을 해야한다.

어떤 무늬를 살려서 주름을 만들것인가도 정해야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주름을 몇 개로 할 것인지, 주름과 주름 사이의 간격은 어떤 무늬가 들어가도록 하며 그 거리는 또한 몇 인치로 해야 무늬가 가장 이쁘게 보일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주름을 잡는 것도 그저 평범한 주름이 아니다.

주름 하나하나가 컵 모양을 이루어야 한다.

어떻게 주름을 접어야 컵 모양의 둥근 선이 가장 잘 살아날까 또한 한참을 고민해야 한다.

주름과 주름 사이의 공간은 끝부분이 조가비 모양을 내야하는데 그 또한 곡선을 어떻게 그려야 컵 모양하고 자연스럽게 어울릴지 생각해야 한다.

윗부분의 줄무늬와 아랫부분의 단색천이 연결된 부분은 시접을 어떻게 처리하면 가장 깔끔해 보일 것인지도 한 번쯤 생각해 볼일이다.

이런 저런 것들을 고려해서 커튼을 만들면서 커튼이 조금씩 모양을 갖추어 갈 때마다 마음이 뿌듯해진다.

 

어려서부터 바느질이 좋았다.

하지만 한번도 그것이 내 직업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혼자서 재봉틀을 이용해서 이것 저것 만들기를 즐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취미 활동의 범위에 머물렀다.

아이들이 자라고,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내게 직업을 가질 기회가 다시 주어졌을 때 막연히 바느질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바느질을 직업으로 할 만큼 경험도 없거니와 눈도 어두워지고 손도 옛날처럼 섬세하지 않다는 생각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음식점을 해 볼까, 부동산 중개인을 해 볼까,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았지만 조용한 혼자만의 시간에 나는 바느질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되는 생각이라고 저만치 밀쳐 냈지만 슬며시 내 생각의 틈새에  다시 끼어들곤 하였다.

그리곤 그저 구경이나 한번 해 보자는 마음으로 찾아갔던 커튼  가게를 덜컥 인수하기로 했고 그것이 내 직업이 되었다.

이제 세 달이 지났다.

명색이 기술자라는 사람을 이 사람 저 사람 바꿔 써 보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커튼 일을 구경해 본 적도 없는 내가 세 달 만에 기술자를 자칭하는 사람보다 났다는 생각을 감히 할 만큼 제대로 일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기술자를 자칭하는 사람을 네 사람을 써보고,세 달이 지나서 요즘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 어쩌면 내게 천부적인 재질이 있었는지도 몰라.'

'바느질이 직업이었던 그들보다 바느질이 취미였던 내가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당연한거야, 직업인 사람은 직업이라서 마지못해 하지만 취미로 하는 사람은 그것이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

 

만들어진 커튼을 바라보며,  커튼을 만들고 남은 천으로 무엇을 만들어 선물할까를 생각하며,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꿈을 다시 찾은 것 같은 흐뭇한 마음이 된다.

'그래, 바늘을 이용해서 무엇인가 만드는 것이 내 꿈 중의 하나였지... '

'그래, 나는 손재주가 있는 사람인데 하마터면 그 재주를 썪힐 뻔 했었지...'

'눈이 더 어두워지고, 손이 더 둔해지기 전에 다시 찾은 내 꿈을 소중히 해야지.'

내가 만든 예쁜 커튼이, 필로가, 침대 커버가, 이집 저집에서 사랑 받을 생각을 하면 나는 신이 난다.

아침이면 어서 빨리 일하러 가고 싶고 저녁이면 조금이라도 더 일하고 싶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을 미룬다.

그래,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사모님, 소리 들으며 꽃이나 가꾸고 쇼핑이나 다니던 때 내 안에 이런 기쁨이 자리했던 기억이 없다.

내가 꿈꾸던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 그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