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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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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가 꿈틀거려본날.


BY rosemary 2004-04-21

결혼을 하면서 손에서 일을 놓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가 생겼고 난 유난스럽게 보채고 우는

아이 키우는일에 몸과 맘이 지쳐서 다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두아이를 낳아서 키우다보니 어느새 훌쩍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얼마전 우리부부는 집을 넓혀가기위해 새아파트를 계약했다.

적잖은 대출을 받아야하기에 많이 망설였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더크기전에

감행하는게 나을거라는 판단을 했다.

대출땜에 난 더욱 내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얼마전부터 늘 생각은 있었지만 아이들땜에 번번히 주저앉고는했다.

 

내게는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다계시지만 아이들을 맡길만한 상황이 아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니 맡길만한 쳐지도 아니고  일을 하기 위해선

오로지 남의 손을 빌려야만했다.

하지만 늘 엄마목을 감고 사는 큰아이와 수월하게는 커줬지만 몸이 약한

작은아이를 남에손에 맡기면서까지 일을 시작할수가 없었다.

늘 그렇게 망설이면서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오늘 드디어 이력서를들고 병원을 찾았다.

한달에 5~6번의 당직이 있지만  남편의 협조와 도움을 받으면 

무난하게 할수 있을거 같았다.

정말 오랫만에 써보는 이력서가 낯설고도 설레었다.

길게 생각하면 또다시 수포로 돌아갈거 같아서  그길로 구인광고를 낸

병원 문턱을 넘어섰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마음이 설레었다.

 

한참을 기다려 병원의 사무장을 마주할수가 있었다.

이력서부터 내밀고 눈치를 살폈다.

이리저리 나의 그동안 경력을 꼼꼼히 살피던 사무장이 아이들이 몇살인지를 물었다.

10살 7살이라는 내대답에 사무장은 좀 난감해했다.

내게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있는가 묻길래 난 없다했다.

그말에 사무장은 망설여지는가보다. 왜 안그렇겠는가.

어린 아이가있는 아줌마를 썼다가 금방 다시 못한다는 말을 할까봐

그게 부담 스러웠을 것이다.

 

내속에서 또다시 주저앉는 느낌이 든다.

난 병원에  차질이  없게 할수 있다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사람일을 어찌 알겠는가.

당장 말은 그렇게 했다가 내사정으로 아쉬운 소리 해가면서  같이 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게되는 일이 생길까봐서..

난 그앞에서 할수있다는말도 포기하겠다는말도 할수가 없었다.

 

사무장은 병원장과  또 다른 사람들과도 상의해봐야 한다며

일단은 내 이력서를 접수했다.

병원문을 들어설때와는 다르게 난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나는 '저를 채용해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뒤로하고 

병원문을 나서야했다.

이렇게 또다시 주저앉아야만 하는지 마음이 심란스러웠다.

 

병원측이 제시한 급여는 내게는 적은액수는 아니었다.

그정도면 남편이 대출받는데 내가 적잖은 도움이 되는 액수였다.

하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린  아줌마가 되버린  내가 일을 시작한다는건

아직은 무리인가보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뜨거운 햇볓에 끈적하게 녹아버린 사탕처럼

길바닥에 끄덕끄덕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자꾸만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되어가는 내자신을 찾고 싶어서도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꼭 돈때문만도 아니었고 그저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아이들에게 잔소리나해대는 아줌마로 남아있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일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두녀석 다 일했으면 좋겠단다.

'허이구~ 녀석들 정작 지들땜에 못하는구만...'

 

오늘 이렇게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꿈틀 거려본  10년이 넘은

아줌마는 다시 주저 앉아야 할려나 보다.

그돈을 벌려고 아이들을 남겨놓고 나갔다가 그액수보다 더 큰걸 잃어버릴까

두려운 마음조차 드는 소심한 아줌마가  되버린거같아서 마음이 씁쓸하다.

아이들이 좀 더 컸을때는 이미 나를 필요요하는곳은 없을거 같다.

그래서 마음이 슬프고도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