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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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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BY 아리 2004-04-19

부부간에 일어나는 모든 분노나 배신이나 몰이해를 어쩌면 이 책에서 처럼 다른 구역에서 온 ..사람 다시 말해서 육체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으로 절대로 다를 수 밖에 없는 한 인간으로 논다면 좀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상황전개가 될른 지도 모르겠다

그는 지금 화가 나 있다

보다 더 먼저 내가 더 많이 화가 나 있다

그래 그 화의 근원이 무엇인지 서로 모르기 때문에 이것은 더욱 심화될 수 밖에 없고

코드는 점 점 어긋나 버리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 때는 하해와 같이 넓고도 넓고 심연과도 같이 깊은 마음 속이 작은 상처에 연연하고

아파하고 분노에 가득차서 쉽게 털어내지 못하는 나의 감성이 문제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


늘 그래 왔듯이 아내는 집에서 자기를 그리워하고

자기만을 기다리며

붙박이 장농처럼 서 있다고 생각하는 그 오만함이 오류를 불러 일으켰다

그는 늘? 자기는 먹고 살기 위해서를 내세우며

자기는 그럴 수 있고 나는 그럴 수 없다는 식의 논리가 앞서 있다

얼마나 이기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사고인가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해서 그가 인자하다고 생각할 때는 그래 이것도 너그럽고 저것도 너그럽다고 수많은 위안과 감사를 온몸에 두르고 행복함에 득의 만만 하다

그러나

어느날 슬픈 파도가 밀려오면 걷잡을 수 없이

그동안 쌓였던 감정의 찌꺼기가 온 가슴을 헤집고 온 몸을 떨게 한다

가족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따스하고 가장 필요한 존재이면서

기대에 대한 배반은 말로 할 수 없는 아픔을 가져다 주는 존재이다

그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렇게 하는 행동에 나는 얼마나 상처 입는지 아느냐고  하면

때로는 상처 입는 것도 필요하다는 억지같은 답변을 얼른 꺼낸다


큰 아이가 대학에 가고 나의 모든 세심한 손길은 이미 다 무용지물이 되고 둘째 녀석도 고2로 올라가며 야간 자율학습이다 학원이다 해서 나의 손을 탈 일과 시간은 이미 필요가 없어졌다

그 와중 일년에 한번 가는 수련회 날이 잡히고 집안은 절간 같이 고요하고

해야할 집안 일도 없고 집안의 모든 물건은 정열을 시작한듯 제자리에 가 있다

혼자가 된 충족감은 때로 불안 스러울 만큼 커져있다

늘 술과 일과 친구로 바쁜 남편도 일년에 한번쯤 주어지는 이런 황금의 고요속에서 서있는 나를 불러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보여주는 여유를 줄 것을 기대하는

보통의 여자인 나의 욕심은 생각과 즉시 차여버렸다

아내보다는 바깥일을 우선시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보수파 남편에게는 남에게 아내와의 약속을 이유로 거절을 내세울 일은 절대로 없으니까 ...


몇번이고 아니 몇날이고 아니 몇달이고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고

혼자서 지내야 하고

순간 순간 가족에게는 즉시 즉시 필요한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필요한 자판기에 가까운 듯한 느낌 마저 없지 않다

지금도 나는 그에게 돈을 버는 유세를 그리 대단하게 내어놓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에게 어떤 자격과 능력이 특별히 있어서가 아니다

정말로 집안이 어렵고 시어머님의 병원비로 막강한 돈이 필요한 그 시절에는 내가

꼭 돈을 벌 수 밖에 없었고 조산을 한 둘째녀석의 무사한 생존을 위해서 기꺼이 나는 일자리를 내어 놓아야 했다

그래 듬직한 남편의 등을 업고서

언젠가 내가 다시 일자리에 손을 내밀고 당당히 일을 시작하겠노라고 선언했을 때

그는 단호한 거절의 의사로 나를 집안에 밀어 넣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서 그래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고

강요하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도덕적으로  강박에 가까운 엄마나 아내의 자리에 내 스스로 내 자신을 처박아 버린 것이다

늘 창을 내어다 보며 국을 덥혔고 반찬을 만들었다

방금 만든 음식의 따스함과 정성과 온기를 받으라고 ....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혼자만의 위로로

남들 모두 핸펀을 사고

남편 주변의 아내들이 골프를 치고 당당히 돈을 써 재켜도

나까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나스스로를 애써 조율하면서

검소가 지나쳐 궁상스러운 나의 모습에 자위를 하면서


그래 그 모든 것들도 넘치는 신랑의 사랑앞에서는 당당하고 아름답고

자랑스럽기까지 하지만

알아주지 않고 제멋대로이고 자기 편한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날에는

더없이 내 자신이 측은하고 서럽고 못나보일 뿐이다

그래 누가 나보고 그렇게 살라고 강요한 적이 있던가..

내 스스로 그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가 있었지

아무리 아프게 이야기 해도 그 누구도 나와 똑같은 아픔을 느끼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리 섧게 울어도 그 아픔과 분노는 쉽게 가시질 않는다


친구의 말대로

늘 나의 자리를 상실하며 살아온 탓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를 오그라뜨리고 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일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

기대를 버린다는 것

그것이 내게 그렇게 어려웠다는 말인가

버리고 또 버리자

서로의 공간과 영역에 대해서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자 .......

 


토해도 토해도 토해지지 않는 비가 내리는 저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