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체력의 한계에 다다를 즈음 드디어 산정상의 평온 지대에 도착했다
계단식논이 둥글게 산을 휘감돌며 펼쳐져있고
커다란 통나무집이 2층으로 세워져있는
약간의 한기를 느끼는 산정상에 우뚝섰다
우리를 맞아준 고산족 마을 사람들은 친절한 미소로 답해주었고
곧 저녁을 준비해주었다
저녁이 준비될동안 통나무집 2층에 방을 잡은 우리는
더위에 지친 얼굴을 씻고 마당에서 남자들의 세팍타크로 경기를 구경하였다
오버액션을 취하는 아저씨와 수줍음을 타며 끼어 놀고있는 한국인학생에게
우리는 화이팅응ㅇ원을 했다
산속의 어둠은 금새 찾아왔고 모닥불가에 앉아 식사를 한후
조금은 센치한 마음이 되어 앉아있었다
고산족아주머니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과자를 내오셨고
청년들은 악기를 들고나와 조용히 음악을 연주했다
잉? 듣고보니 아리랑 아닌가?
우린 반가운 마음에 조용히 따라불렀다
그다음엔 영국민요를 연주했다
호호~~~ 그들도 반가워했다
돌아가며 각자 노래를 부르는 분위기로 흘렀는데
고산족 청년차례가 되자 이 청년이 담다디를 부르는거 아닌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오긴하나부다
정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고산족 사람들은 공통점이 많아
서로 더욱 친해지나보다
이렇게 밤은 깊어가고 있었으나 나에게 산행은 너무 무리였었기에
일찍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좀 쌀쌀했기에 양말을 신고 긴옷을입고 있는 담요는 다아 덮었지만
추워서 잠을 잘수 없었다
오직 하면 막내동생은 얼어죽는 꿈까지 꾸었을까?
통나무집은 바깥의 한기가 다아 들어올 정도로
엉성하게 벽이 지어져있고
전기도 안들어오는 고산지대라 ----
5명이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잠을 청해보았지만
결국 잠을 자는둥 마는둥 뒤척이는데 닭이 홰를치는 새벽이 되고 말았다
얼른 일어나 모닥불가로 가니 따뜻한 물과 커피,코코아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비록 컵은 맥주잔이지만 따뜻한 물이 안에 들어가니
몸이 따뜻해졌다
아이들도 모두 일어나고 세숫물이 너무 차가워
고양이세수를 한 후 서양식 아침 식사를 하였다
태국에 온후 난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어서
아침식사에 나온 따끈한 토스트와 쨈이 반가웠다
커피와 함께 양껏 먹고 났더니 속이 쓰려왔다
와아~~~진짜 이러다 다이어트 되겠다
각자 짐들을 챙기고 마을 사람들과 아쉬운 작별을 한 후
산을 내려갔다
작은 아들은 하룻밤 더 묵자고 난리였지만
난 밤새 너무 추워서 더 있고싶지가 않았다
침낭을 반드시 챙겨서 다음에 다시오자고 약속을 한후 아이를 달랠수 있었다
내려가는 길은 오라올때보단 힘은 덜들었지만
길은 더 어려웠다
가파른 길을 내려오려니 미끄러워서 아이들은 넘어져
다리가 온통 흙에 긁혀 핏줄이 어렸다
드디어 코끼리와 헤어졌던 자리에 와서 점심을 먹고
네비게이터들과 작별을 했다
작은아들은 고산족청년과 울고있었다
그새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그 청년은 아이에게 손으로 직접 만든 대나무 딱총을 선물로 주었다
아이는 보물처럼 그것을 품에 안고 눈물 가득한 눈으로
손을 흔들었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가고 우리는 또하나의 이벤트인
뗏목을 타러 갔다
대나무로 엮은 생각보다 큰 크기의 뗏목에 4명이 타고
급류라기엔 전혀 아닌 강을 타고 내려갔다
래프팅ㅇ을 한번도 안해본 나는 그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빠른 물살은 아니었지만 주변의 바위에 부딪히고 물을 튕겨가며
뱃놀이하는 맛이란-----
한시간가량을 타고 내려가다
썽태우로 갈아타고 치앙마이 시내의 숙소로 돌아왔다
맥스와 찰리는 여행용 차량을 가지고 왔기에 숙소에서 헤어지고
올리아나와 그녀의 친구도 시내의 다른 숙소로 가고
다리품을 팔아 다른 숙소로 찾아갈 힘이 없는 우리들은
그냥 이곳에 묵기로 했다
이틀동안의 묵은 때를 씻고 아이들은 숙소에 있는 수영장ㅇ에서
수영을 하고 놀고있는 사이
나와 막내동생은 약국도 찾을겸 숙소주변의 탐험에 나섰다
골목밖으로 나가니 우리나라 시골읍정도의 번화가가 있었다
커다란 학교도 하나 있었는데 학교 뒷문의 노점에서
후라이드 치킨과 또띠야 햄 등등의 음식을 사서 저녁으로 때우기로 했다
밤에는 치앙마이의 유명한 야시장을 구경가기로 했으니
휴식을 좀 취하기로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