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벛꽃의 아쉬움


BY 해나 2004-04-08

4월은 매년 그렇게 아름답기만 해야하는 달이다.  봄 햇살에 겨우내 냉장고에서 묵은 김치같은 쾌쾌한 걱정 근심 이 훌훌 털려나가야 하고 이불속에 꽁꽁 감춰두었던 추운 마음도 그 햇살에 널어 따뜻히 말릴수 있어야 한다.  특히 워싱톤 디씨(DC) 지역 4월의 봄 맞이는 항상 그런 기대에 부풀어 오르는 때이다.  곳곳이 솟아난 봄의 첫소식 크로커스의 앙증맞은 꽃들과 뒤이어 피어나는 배꽃, 개나리, 튜립과 벛꽃.  이렇게 화사하다 못해 숨막히는 색깔들을 맞으며 칙칙한 겨울을 계속 품고 있는것은 거의 죄와 같았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했다.  4월 첫주서부터 부슬 부슬 몸이 쑤시더니 급기야는 침대에서 끙끙앓게 된것이다.  게다가 날씨까지 갑자기 온도가 떨어지고 바람이 태풍불듯 불고 비까지 간간이 내려 그렇게 화창함을 기다리던 나로써는 해빛 그림자 조차 구경하지 못하고 침대에 숨어버린 게 정말 한심할수 밖에 없었다.  때는 이때다 하며 침대에 누워 집안일 부엌일 걱정안하고 누워서 푸욱 쉴수있는 기회였지만 그것도 이번에는 안되는 일이였다.  일년 내내 기대하고 있었던 벛꽃 축제와 일본거리 축제가 바로 내가 아파 앓아 누운 하루후인 4 3일 토요일 인것 이었다.  각국의 대표들이 펼치는 화려한 퍼레이드며, 3블럭 이상에 펼쳐진 일본 거리 축제, 그리고 제퍼슨 대통령 기념관을 풍경으로 둔 타이들 베이진 (Tidal Basin) 을 둘러싼 3750그루의 벛꽃은 매년 그 눈내리는듯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데 아파서 집에 있다니!!  전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그 축제를 보러오는데 나는 바로 여기 있는데!!  4월인데!!  봄인데!! 

 

훌훌 털고 일어나 밀린 집안일을 할 정도는 안돼면서 벛꽃 축제에 가겠다고 하는 나에게 남편은 역시 안됀다고 했다.  속상해서 애원도 하고 짜증도 내다가 결국은 남편이 두손들고 토요일 우리는 축제로 향했다.  코트에 목도리에 장갑에 모자까지 남편은 나를 꽁꽁 싸매다 시피 입혔다.  날짜는 분명 4월이고 벛꽃은 분명 축제 분위기인데 나만 겨울이었다.  이래저래 죄인이었다. 

 

죄인이건 뭐건 일본 거리 축제에 몰린 사람들 사이로 섞여들어간 나와 남편은 곧 그 축제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쑤모경기가 한쪽에서는 일본 다이코 (북춤) 공연이 또 다른쪽에서는 일본에서 직접온 초밥요리사들이 날개돋힌듯 팔리는 초밥들을 정신없이 만들어 대고 있었다.  매년 벛꽃축제만 구경하고 갔던 우리는 처음 참여하는 일본거리축제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은 또 왜그리 많은지  우리는 그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뭘 할것인지 너무 많은 사람들 사이로 보이지도 않았는데 까치발을 해가며 혹 끼어들어갈 틈새가 있는지 요리조리 살피며 처음으로 일본식 북춤을 구경했다.  강렬하고 빠른 북소리에 한시간 이상이 지난것도 모르고 정신을 놓고 들었다.  북춤 이 끝나고 간단히 허기를 채운후에는 미국-일본 협회에서 마련한 어린 아이들의 일본춤 공연을 구경했다.  5살짜리 노랑머리 미국아이들이 인형사이즈 기모노를 입고 버선발로 춤을 추는 것을 보니 너무나 아증맞았다. 

 

그러다 문득 한국 꼭두각시 춤이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데하는 생각, 쑤모보다는 씨름이 훨씬더 수준 높고 볼만한데하는 생각, 다이코 보다는 한국 북춤이나 농악단이 더 흥이 나는데  거기에다 소리와 창까지 하면 정말 축제 같을테데하는 생각이었다.    일본은 1912년에 미국에다 이 벛꽃 나무들을 선물했다고 한다.  한국사람들은 그렇게 일본이 미국에 일본을 심었음을 인정한다.  지금까지 내려온 축제들을 볼때에 그것은 정말 사실이다.  게다가 일본에서 직접와서 하는 공연이나 파는 물건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다 자신의 나라를 이곳에 더 심기위해 노력하는지 그 사실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는지 볼수있다.  노랑머리 미국인들이 똑같이 노랑머리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기모노를 입히는 것을 보고, 허옇고 까만 미국인들이 쑤모를 배우고 선수가 되는것을 보고, 미국인들이 싸뽀로 맥주를 칭찬하는것을 들으며, , 초밥에 흥분하는것을 보고 일본이 얼마나 뿌리깊게 일본을 이곳 미국에 심었는지 인정할수 밖에 없다. 

 

미국에는 거의 모든 초밥집이 한국인에 의해 운영되도 초밥집에 초밥맨이 한국인 이어도 미국인들은 초밥이 일본음식 이기에 주인장도 초밥맨도 일본인인줄만 안다.  얼마전에 초밥먹으러 회사사람들과 같이 초밥집에 갔는데 그곳은 중국인이 운영하고 있었으나 회사사람들은 그들이 일본인인줄로 당연히 생각 했단다.  이곳 미국에서는 일본인은 만나기가 어렵고 한국인은 어디를 가나 만날수 있어도 미국 사람들은 한국인이 일본인 인줄 혹은 중국인인줄로만 생각하고 있다.  내가 한복을 입은것을 미국인이 보면 나더러 기모노가 뷰티풀하다고 한다.  발끈해서 한복이라고 가르쳐줘도 생소한 이름에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 하고만다. 

 

축제에서 돌아서면서 서운하고 안타까운 마음과 힘든몸에 내남편만 고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