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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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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손을 높이 들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다.


BY 낸시 2004-04-04

자넷, 서른 여덟, 한국 여자다.

고등학교 때 미국에 왔다고 하지만 아직도 영어가 나처럼 서툴다.

주로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봉제공장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영어를 익힐 기회가 없었던 듯하다.

전 주인이 있을 때부터 일을 하던 사람이라 내가 가게를 처음 보러 갔을 때부터 가게를 인수해서 지금까지 겪어 온 모든 어려움을 옆에서 지켜 본 사람이다.

일을 처리 못해서 힘들어 하는 나를 위해 토요일은 돈도 받지 않고 일하겠다고 하고 전 주인은 사실은 내가 주는 돈보다 더 적게 주었었다며 자기 월급을 돈을 벌 때까지는 전 주인이 주던 것만큼만 달라고 하기도 하였다.

아이리스, 서른 둘, 남자다.

필리핀 태생이라고 하지만 미국에서 자라서 영어가 유창하다.

디자인을 맡고 있고  가게에 문제가 생기면 영어가 서툰 나 대신 나서서 문제 해결에 앞장 선다. 미국에서 자라서 미국 문화에 익숙하고 중국인 엄마를 둔 까닭에 동양 문화도 잘 이해한다.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즉시 이해하고 내가 말하기도 전에 해결해 줄 때가 많다.

미국문화에 서툰 나를 위해 손님을 상대할 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일일이 조언을 한다.

턱없이 적은 돈을 주고 있지만 돈에 상관없이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일을 한다.

전 주인으로 인해 자기가 나보다 더 힘들다고 엄살이다.

하긴 손님들의 불평을 주로 아이리스가 해결해 주고 있기 때문에 전혀 엄살만은 아니다.

크리스, 마흔,  미국에서 태어난 흑인 남자다.

젊어서부터 커튼 일만 했기 때문에 커튼에 대한 전문가라고 하지만 아직 그 부분은 더 지켜봐야 한다.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커튼 디자인부터 만들기, 설치까지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랑 같이 일한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성실한 사람으로 보인다.

듬직한 덩치의 크리스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순진한 얼굴을 가졌다. 셈을 하는 것이 느리긴 하지만 그것은 수학선생 출신인 내가 언제든지 대신할 수가 있다. 난 사실 셈이 빠른 사람보다 좀 느린 사람을 선호하는 편이다.

때론 손해도 보고 때론 이익도 보지만 일일이 따지지 않는 사람이 편안해서 좋다.

울 남편, 나랑 동갑인 쉰이다.

내가 돈을 벌기 보다 잃고 있음에 대해 걱정이 큰 사람이지만 내가 가진 가장 든든한 후원자 중의 하나다.

자넷, 아이리스, 크리스, 남편과 나 다섯이서 조그만 자축연을 가졌다.

명목은 돈을 못내겠다고 하는 손님에게서 돈을 받아낸, 협조를 할 수 없다던 전 주인을 가게로 불러내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든, 자기 물건이 아닌 것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던 전 종업원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밝힌,  우리의 조그만 승리를 축하하자는 것이었다.

다섯 사람이 식사를 하면서, 내 옆에 있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이제  나랑 같이 인생의 새로운 모험길에 나설 선원들이 정해졌으니 서서히 닻을 올리고 항해에 나설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전 주인이 주문을 받아놓은 일들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음이다.

그들이 단순히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가족같은 생각이 드는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내가 경험이 없는 사람인 것도 알고, 지금 돈을 벌기보다 잃고 있음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기 보다 같이 사업을 일구어 적자를 흑자로 돌리자고 나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들과 같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의 모험길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선장이다.

조그만 배이긴 하지만 충실하고 능력있는 선원들과 함께라면 거친 파도도 능히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암초를 만나도 잘 피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랑 같이 일하기로 한 그들이 정말 고맙다.

출발!

나는 손을 높이 들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