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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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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아는게 힘이여!


BY 억새풀 2004-04-04

어제 아래 그러니까 금요일날 표준말로 하자면 엊그제 날 첫 월급을 받았다.

6*****.띵띵띵띵 회사.

토요일날 출근하기전 아침 시간에 설레는 맘으로 통장을 확인해 보니 그렇게 적혀 있었다.

정말 그렇게 뿌듯 할수가 없고 나도 뭔가 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참으로 온몸으로 다가 왔다.

월급 칠십만원도 안되는  돈이 나에게 이렇게 크게 보인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날 초라하게 만드는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 무엇  보다도 값지고 소중하고 큰 것이다.

 

나이 사십고개에 전업주부.

아무 상식도 그 분야에  대한 조금의 지식도 없이  들어 갔기에 우선은 자신감이 없었고

그래서 나름대로 홈페이지에 찾아 가서 뒤 늦은 공부도 해 가며

연습장에 필기까지 하면서 입으로 쫑알 거리며 외우고 또 외우고 

사무실에서는 고참 선배들에게 이것 저것 물어 보고 또 물어 보고............

그래도 뒤 돌아 서면 또 잊어 버리고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쓰지 않던 용어들  따져 보면 그리 어려운 낱말도 아닌데  발음 자체 부터 혀가 잘 돌아 가지도 않고 분명 영어도 아니건만

왜 그리 이해가 안되고  알쏭 달쏭 애매한건지........

 

며칠 전에 일이었다.

전화 한통이 왔다.

"여보세요

"네 ****입니다

"여기요...저기 뭐가 날아왔는데요...내가 나이도 많은데 연금을 이렇게 올라서 내라면 우야라꼬?.....나는 이렇게 많이 내라 카면 못낸다. 내가 우리 마누라 하고 나이차도 많이 나는데.....농사 쪼끔 지어 가지고 우예 살라카노?

하시며 걸걸한 노인네의 성난 목소리가 내 얘기는 들을 생각도 안하시고 당신 하고 싶은 말씀만 쭉 늘어 놓으신다.

그래서 난

작은 목소리로 한편으로는 아주 정겨웁게

"예~~~그러세요?......예 좀 그렇겠네요........그래두요......그러면예...아버님이 농사 지으신다는 농어민 확인서 같은 서류 가지고 오시면요 조금은 할인을 받으실수 있는데요.....하며  친절하게 상담해 나갔다.

결국은 내가 얘기한 그 서류를 가지고 오신다며 내 이름을 물어 보시길레 누구 누구 라고 말씀 드렸더니 내일 당장 찾아 오신단다.

 

전화를 끊고 나서 옆 직원에게 물어 봤다.

이러 이러 해서 내일 그 아저씨가 찾아 오신다는데 했더니

대뜸 하는 말

'인제 내일 선미(가명 )씨 머리 다 쥐어 뜯기게 생겼네.큰일났네.....

그 농어민 확이서는 여기 우리 공단에서 가입자에게 주어서 확인서를 받아 오는 것이고

가게가 있으면 해택도 받을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이구! 이일을 우째?진짜 큰일 났부렀네.

내일이면 이 사무실에서 한 바탕 난리가 날것인데 아이구 우야노?

그럴줄 알았으면 전화번호라도 메모좀 해 둘걸......

아이구  등신아  선 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인제 니 큰일 났데이......알려면 확실히나 알고 있든가! 어디서 줏어 들어 가지고서는.........

머릿속에는 내일 벌어질 끔찍한 풍경들이 저절로 그려지고

거기에 쥐 죽은 듯이 벌벌 떨며 연신 죄송합니다 하는 내 구겨진 모습이 훤하게 비치는데........

 

이렇게 그 날 오후는 온통 걱정 근심으로 제대로 일이 손에 잡히질 않고

퇴근 하고 집에 와서도 내일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해 나갈지에만 신경이 바짝 쓰였다.

 

드디어 다음날

아침부터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하필이면 내 자리를 잠깐 비켜서 저 앞에 차장님 자리에 앉아서 오늘은 일좀 하라신다.

아이구 일이 안될라 카나!......에라 모르겠다.

닥치면 하겠지뭐.

앞으로 자리를 옮기고 맘은 자꾸만 조바심이 나고 거기에다 뒤에는 팀장님이 내 옆으로는 차장님들까지 떡 버티고 있으니......참으로 산 밑에 산이다 .

그래도 시간은 내 편인지 오전 시간이 후딱 끝났다.

 

오후 시간이 접어드니 어느 정도 여유도 생기고

사람이 첨 일하다 보면 실수 할수도 있는거지뭐! 하는 오히려 배짱이 생기는거다.

 

서너시 쯤 되니 몸도 나른해 지고 어제부터 신경을 바짝 썼더니 몸도 으실 으실 추워 지는게 몸살기운이 쪼금씩 보인다.

따뜻한 커피 한잔에  잠시 목을  적시고 있는데

민원실 학생이 들어와서 민원이이 오셨는데 나를 찾는단다.

으이쿠 드디어 일이 벌어졌구나!

나는 태연하게 모셔 오라 하고 의자를 내 옆으로 끌어 당겨 놓고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었다.

한번 해 보는 거지뭐 !

 

오는 민원을 상담하기는 오늘 이 첨이고 그것도 내가 실수한 민원인이니 어찌 당황하지 않겠는가?

안 그러면 사람 아니지뭐.

애써 태연한척 당당한척 하며 그 민원인과 얘기를 해 나갔다.

얼굴에  잔잔한 웃음을 띄우며 정겨운 목소리로 첨 입을 여는 첫 마디

"아이구 아버님 !어쩌지요 제가 실수를 좀 했거든요......제가요 착각을 해서 그런데요

가게를 하고 계시면 혜택을 받으실수 없다네요.그대신요 이렇게 먼 걸음 하셨으니까요

제가 최대한 등급을 낯추도록 해 볼께요 .

 

이렇게 선수치는 바람에 그 아저씨는 자기가 지금 어런 처지라며 죽 얘기 보따리를 늘어 놓으신다.

 결국은 최대한 돈을  적게 해 돌라는 말씀  뿐 내가 상상한 그런 장면은 전혀 연출할수가 없었다.

난 나대로 미안해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것 을 친절히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물론 보험료 등급도 적정하게 맞춰 드렸다.

오히려 그 나이 많은 아저씨는 아니 할아버지는

"오늘 색시가 잘 갈케 줘서 많이 알았네" 하시며 만족한   얼굴로 나가셨다.

 

그러게 얼굴도 모르면서 함부로 상상하고 지레 판단하지 않아야 되겠다.

그리고 공부를 해야 되겠다.

아는게 참 말로 힘이니까!

나가시는 뒷 모습이 한참을 내 눈에 담겨져 있었다.

꼭 시골에 계시는 내 아버지 같아서.

이렇게 나의 첫 민원인과의 상담은 해피 앤딩으로 마무리 하였다.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제가 아직은 미숙하지만요

그래도 열심히  할께요.

오래도록 제 기억속에 아름다운 첫 민원인으로 기억 될 꺼예요.

 

아참! 첫 월급으로  뭐 할꺼냐구요?

글쎄요........

할께 하도 많아서  그냥 입 쓱싹.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