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에서 어깨가 아파 침을 맞는데 어깨나 목 주위 팔 만 맞는 게 아니라 양말도 벗으라고 합니다. 양말을 벗어버린 발을 보니 박 속처럼 하얀 것이 빛나 보입니다. 내가 봐도 아기가 바르는 분가루를 뒤집어 쓴 것처럼 뽀샤시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어디서 생겼는지 기억에 없지만 "금강제화" 구두 티켓이 생겼습니다. 처음으로 비싼 구두를 사러 가는 마음에 설레 이기까지 합니다. 친구와 둘이 명동을 나가서 번쩍거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갑니다.
하얀 와이셔츠와 그 위에 검정 조끼를 입은 멋진 종업원이 와서 이것저것을 골라 줍니다. 이것도 좋은 것 같고 저것도 예쁜 거 같아서 금방 결정이 되지 않습니다.
구두를 골라놓으면 종업원이 무릎을 꿇어서 구두를 신겨 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발 "미스코리아가 있다면 아가씨가 일등은 맞아 놓은 당상이라고 합니다. "하필이면 발이야... ". 하지만 손이면 어떻고 발이면 어떻습니까? 그저 어디든지 밉다 는 거 보다는 예쁘다니 좋은 기분 이 되는 걸 말릴 수는 없습니다.
크림색 가죽에 발등위로 끈이 달린 귀여운 디자인의 구두를 골라서 포장을 부탁합니다. 구두가 들어 있는 종이 백을 가져 다 주면서 "진짜 아가씨는 발이 예뻐서 구두가 더 예쁜 것 같아요" 합니다. 아마 "진짜루..."라는 말만 안했어도 그 말을 이리 오랜 세월 동안 굳게 믿진 않았을 겁니다. 지금도 "엄만 어디가 제일 예뻐?"하고 물어오는 딸아이한테 자신 있게 대답 합니다 "발이지. 봐봐! 진짜 예쁘지?"
그때까지 발이란 몸에 딸린 일부분이겠거니 하면서 무심하게 살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그날 밤에 발을 가만히 자세히 관찰해 봅니다.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가 벌어지지도 않은 것이 얌전하게 붙어 있습니다. 다섯 개의 발가락들의 키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두 번째 발가락이 길면 엄마가 오래살고 엄지발가락이 길면 아버지가 오래 산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순서대로 돌아가시려는지 엄지부터 새끼발가락까지 길이가 일정하게 작아지고 있습니다. 발 모양도 틀어지거나 휘어지지 않고 적당하게 일직선으로 뻗어 있습니다. 발뒤꿈치도 갈라지거나 트인데 없이 동그랗고 반질반질 합니다. 예쁘다고 생각하니 발목 뒤에 잡히는 주름도 웃으면 콧 잔등에 잡히는 주름처럼 귀여워 보입니다. 흠이라면 엄지발톱이 살을 파고드는데 그거야 남들이 알게 뭡니까?
그해 여름에 풀장을 갔었습니다. 풀장에 가서 하라는 수영은 안 하고 맨발로 돌아다니는 사람들 발만 구경하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 저사람 발은 유난히 둘째 발가락이 삐죽하게 나왔네...어머머 저 사람 발은 왜 저래? 발가락 사이사이가 다 벌어져 있네. 평생 무좀은 안 걸리겠다. 앞부분이 휘어버린 사람에 엄지 발가락위에 둘째 발가락이 올라가있는 사람에 오고가는 사람들 발을 보고 있자니 얼굴도 가지가지 이지만 발도 참 여러 가지 입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마음에도 발에도 세월의 때가 조금씩 끼고 보니 발이 예쁘다는 그 말은 구두를 사려는 사람들에게 추임새로 쓰이는 빈 말 이라는 걸 알아 차렸습니다.
가끔씩 사과껍데기로 발등을 쓱쓱 문지르거나 얼굴에 붙였던 오이 몇 개를 띠어내서 발등 위에다 붙여주기도 합니다. 인심 쓸 때는 얼굴에 바르는 로션도 발라줄 때도 있답니다.
오늘 밤에도 발을 하늘 높이 올려 세우고는 샅샅이 살펴봅니다. 그리고는 혼자소리로 "하이구 발도 참 예쁘게도 생겼네" 합니다. 어디선가 웃음 소리가 들립니다 . 듣고보니 약간 기분이 상하는것이 비웃는 소리인거 같습니다.
비웃거나 말았거나 예쁜건 예쁜거지....
그런데 조용히 들리는 저 소리가 가슴을 져밉니다. "얼굴이 안 되니까 아무도 안 보는 발이 예쁘다고 난리네 . 엄마 발 좀 저리 치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