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는다.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햄이나 겨자쏘스에 피자나 좋아할 세대인 내 며느리가
고추장만 넣고 밥을 비벼 먹다니 놀랄일이 아닌가?
놀라는 나에게 도리어 놀란 며느리는 어리둥절하다.
나도 종종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는다
아직까지 나랑 똑같은 사람을 본적이 없다.
물론 해외여행중엔 제법 볼 수 있는 광경이긴 하지만
평소에 반찬을 두고 고추장에 비벼먹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내 어릴적 고추장이 식탁에 오르면 그날은 요샛말로 쨩! 이다.
고추장에 벌겋게 비벼서 번개같이 치워버린다.
목구멍에서 잡아당겨서 입안에 그 맛을 즐길 사이가 없다.
신세대 며느리에게서 동질감을 느낀 나는
내 며느리는 시어머니인 나랑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다.
며느리에게 또 한번 놀랐던 기억을 기록해 두고 싶다.
아들과 결혼하기전 내가 집에 없을때 우리집을 방문한 적이있다.
장래 시아버지감인 내 남편의 밥상을 차려 주었다고 한다.
살펴보니 된장찌개를 끓여서 식탁을 차렸는데
된장찌개에 아무것도 들어간게 없다.
그저 된장만 풀어서 끓인 것이다.
남의 집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도 했고
어려운 집에 와서 냉장고를 들들 뒤질수도 없었을 것이다.
있는 된장으로 간을 맞춘 모양이다.
슬쩍 맛을 보았는데 정말 맛이 좋았다.
이때 나는 내 며느리 될 아이에게 점수를 팍! 주어버렸다.
궁해도 통할 아이로구나. 융통성이 있는 아이로구나.
오늘 아침 식탁엔 고들배기가 있다.
쌉쌀한 맛을 내는 봄맛을 누가 알랴.
옛날 할아버지께서 봄엔 씀배(씀바귀)를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기억이 새롭다.
쓴 나물이 입맛을 돋운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이해가 안되던 할아버지 먹던 음식을
지금 이 나이에 내가 먹고있다.
음식 하나에도 인정과 역사가 흐른다.
동질감을 느끼고 가문의 맥을 이어간다.
나는 고추장에 밥 비벼먹는 내 며느리랑
어느새 한가족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