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던 날이었다.
이름도 예쁜 화란, 인향,그리고 나, 이렇게 예쁜 세아줌마가 모였다.
한아이가 양평에 전원주택을 샀다는말을 들은지가 1년이 넘었다.결국
이제사 약속이되어 그애의 별장에 가기로 한것이다.
한친구가 생일이기도 해서 ,그앤 직장을 용감하게 결근을 했다.-시어머
니가 편찮으시댔다- ㅋㅋ
차를 가지고 약속했던 사당역쪽으로 갔더니,
나이를 잊은듯 아직은 예쁜 모습의 두아줌마가 길옆에서 차를 향해 손을
들었다. 반가운 얼굴....
우리셋은 조금은 달뜨는 심정으로 양평으로 가기위해 차에 주유를 했다.
"꽉 채워주세요"
그만큼 우리 마음도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우리는 초등학교때부터 같이 자라온 친구이다. 지금은 아이들도 다
자라고, 모든게 안정이 되어 있지만, 서로 바쁘게 지내다보니 만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우린 잘자라 좋은 남자들을 만나 결혼을 했다. 제일먼저 결혼한 화란이
는 남매를 두었는데 아들은 벌써 장가를 보내,이쁜 며느리를 보았고,
교수부인인 인향이는, 나처럼 삼남매를 똑같이 나아 잘 길렀다.
평탄한생활로 걱정없이 산 우리들은 정말 선택받은 축복의사람들이다.
한아이는 남편과 일본에 주재원으로 나갔었고,
한아이는 교환교수로 가족을 모두 데리고 미국으로 갔었다.
어느날, 이국의 풍경이 있는 그림엽서를 받아들고,
'참, 얘는 외국에 나갔지!' 그러다보면 카나다의 소인이 찍힌 엽서를
받았고, 그러다보면 또 다른나라의 엽서를 받아들곤했다.
나도 아이들과 입시 전쟁을 하느라 전투적이었던 때이고.....
그래도 제일먼저 결혼한 아이답게 별장도 마련해서 여유있게 지내는
친구의 주말집은 1시간내의 거리에 있었다.
미사리를 지나 팔당대교를 지나고 양평으로 들어서니, 공기가 서울과는
다르게 느껴지고, 회색빛깔의 나무색 속에는 아름아름 연두빛이 보이고
완연한 봄볕으로 자켓을 입은 등에서는 땀이 났다.
성덕리라는 좋은이름을 가진동네에 친구가 마련한 전원주택이 있었다.
얘기로만 듣던 집은 앞이 트이고 전망도 좋은 하얀벽을 가진 아름다운
집이었다. 봄꽃이 핀 화분으로 집안도 아기자기 예쁘게 꾸며놓고,
서울의 집에 있던 눈에 띄는 가구가 옮겨져 와있고침대며 다른세간살이
는 부족함 없이 모두 마련되어 있는 훌륭한 집이었다.
가깝게 산도 보이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끼고 집들이 옹기종기 있었고
주로 서울사람들이 주말에 사용하는 전원주택들이 군데군데 눈에띄게
보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테라스에 꽃화분을 내놓고, 야외용 응접
세트에 커버를 씌우고 친구는 맛있는 차를 준비하고 나는 그애의 여유
로운 생활에 잠깐 부러운 마음을 가졌다.
여유가 있다는것은 느긋함과 평온함을 준다.
일상에서의 삶의 찌꺼기와, 자잘한 걱정일랑, 잠시라도,
모두 털어낼 수 있게 나는 두고온 집들은 모두 잊기로 했다.
미역국도 끓이고 맛있는식탁을 마련해 세아줌마가 앉으니 우린 옛날의
세여자아이로 돌아간 타임머신을 탄듯했다.
하하 호호 ....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르고, 난 손풍금님의 '구리무댁은 복도 많지' 를
선물로 주었다.
식사후에 우린 들로 나갔다. 추울지도 모른다는 말에 그애 남편의 잠바
를 입고, 친구는 장화도 신고 호미를 들고 냉이를 ?N는데 어찌나 많은지
금방 가지고 간 비닐백에 차고 말았다. 아직 쑥은 어리고 작아서 조금
더 있어야 할듯 했다.
친구의 안내로, 동네를 돌면서 맑은공기를 찾아 불나방처럼 찾아든 도시
사람들의 전원 주택을 구경했다. 집이 외양으로 화려한집도 있었고
정원을 신경써서 꾸민 집도 많았다.
아기가 없는 만화가부부는 이곳에 우연히 들어와 집을 꾸미고 살다가
감각이 있는 부인이 집을 잘 꾸며서 팔고, 또사서 고치고 해서 팔고,
그러다가 직업이 바뀌었다고 했다. 산밑쪽으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집도 고치고 있는데 수억대로 집을 내놓았다고 했다.
사교적인 친구는 비슷한 사람끼리 인사를하고 지내는지 아는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집도 안내해서 내눈은 모처럼 호사를 했다.
꼭 백설공주에나오는 난장이가 살것처럼 천장이 낮은 시골집을 개조한
정원을 잘 꾸민 집에서 차도 대접받았다.
꽃이 피면 너무 아름답다는 그집의 아줌마는 아이들을 모두 해외로 유학
을 보내고, 시간있는대로 두부부가 그곳에와서 꽃을 가꾸고 날아오는
새소리를 들으며 지낸다고 했다.
나라가 탄핵때문에 설설 끓고, 지금도 어려운 살림에 고된 노동 현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잠시 생각하니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동떨어진 딴세상이었다.
동네를 한바퀴돌고 나니까 어둠이 스멀스멀 닥아들었다.
밖을 내다보며, 내가 말했다.
"검은 바다 같애!"
친구가 대답했다.
"그래!, 파도가 없는 조용한 바다"
갑자기 친구네 별장에 바람을 쐬러간다고만 출근하는 남편의 뒤에다
말했든 기억이 났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다.
조금은 불안해진다. 퇴근 시간도 지났는데....
" 우리 오늘 자고 가려는거 아녔니?" 친구가 묻는다.
직장이 있는 친구가 어쩌겠냐는듯 내얼굴을 본다.
"야! 별장 주인! 너 신랑한테 말했어!'
"아니, 이제 전화해야지." 세여자는 너무 마음이 똑같았다.
'우리 오늘 가지말고 내일가자' 갑자기 우린 흥분해서 30년만에 같이
자는거라고 너무 신나 했다. 아이들에게 전화하고 우린 옥메트위에서
뒹굴며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갑자기 집에 안가는 세여자의 남자들은 우리의 빈자리를 어느만큼의
부피로 느낄까?
어쨌든 우리는 셋이서 같이 있다는게 좋았다. 다같이 믿음생활을 해서도
그렇지만 술한잔 못하는 주변머리없는 친구들은 -나는 아니지만-
그저 먹고 얘기만 하고 우리는 하얗게 밤을 지샜다.
아침일찍 출발해야, 출근하는 친구를 위해서도 자야 하련만........
우린 언제 또 셋이서 같이 밤을 지샐 수 있을까?
PS: 집에왔더니 식구들이 몸만 빠져 나간 집은 만수산이고,어제 집에
온 아빠는 우리집에도 막가는여자가 생겼다고 했다나,
그리고 사위될 녀석이 와서 나만 빠진 식구들이 와인을 마시며.
내흉을 있는대로 봤데나 어쨌대나, 어휴~ 휴대폰 밧데리가 나간지도
모르는 남편에게 백만번 전화한 나의 본의를 모르는 무정한 남정네!
뭐? 막간다고 정말 막가는 여자를 보여줄까? -사실은 가슴이 콩닥콩닥-
아! 어쨌든 또 집나가고 싶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