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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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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이야기


BY 캐슬 2004-03-16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동네 아이들이 학교로 다 가버려 텅 비어버린 듯한 한낮입니다. 아이들이 있다고 하여도 어차피 내 또래 여자아이는 없고 친구는 남자인 앞 집 성일이 뿐입니다. 성일이는 엄마가 서울에서 장사를 하신다고 외할머니 댁에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하고 동갑인 성일이는 처음에는 양지쪽에 앉아 있는 날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인가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성일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곳 아이들과 다른 하얀얼굴의 성일이가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게 된 것은 성일이 할머니의 엿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동네 아이들을 노는 곳으로 엿을 담은 작은 바가지 가득 가지고 가십니다.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시며

 "우리 성일이하고 사이좋게 놀아라"

하시며 서너개씩 나누어 주십니다. 그중 덩치크고 아이들의 리더격인 만수에게는 특별히 몇개의 엿을 더 주시며 별로 착하지 않은 만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십니다. 엿을 받은 아이들은 잠시 성일이 주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이내 아이들의 입속에서 노란빛갈의 엿은 침 속에 녹아 이내 목구멍을 넘어 가 버립니다. 아이들은 엿이 녹아 버리는 그 순간 성일이 하고 '사이좋게 놀라'는 당부도 녹아버리는 엿처럼 쉽게 잊어버리고 저네들끼리 달아나 버립니다. 엿을 몇개 더 받은 만수도 성일이는 까마득히 잊었는지 아이들을 몰고 논둑으로 달아납니다. 성일이는 슬그머니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로 옵니다.

"뭐해'

"응!. 그림 그린다"

성일이는 도랑또랑한 서울말을 하며 내 곁에 쪼그리고 앉습니다.

"무슨 그림인데…"

"그냥 아무거나 그린다"

잠시 내 옆에 앉아 땅바닥에 그리는 내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듯 하던 성일이는 이내 지루한 표정을 짓습니다. 가늘고 긴 막대를 쥔 내 손을 덮석 잡고는 큰 눈을 더 크게 뜹니다.

'야 이거 그리지말고 우리 대장간에 가보자"

내가 애써 그린 땅바닥의 그림을 발로 싸~사삭 소리가 나도록 지워 버립니다.

그래 놓고는 얼른 내 손목을 잡아 채어 당깁니다. 나는 못이기는척 손을 털고 일어납니다.

나도 쪼그리고 앉은 다리가 아파서 일어날 생각을 하던 참이었습니다.

대장간은 바로 우리 뒷 집입니다. 가끔 우리는 심심하고 갈 곳이 없을때나 비가 오는 날이면 대장간 처마밑이나 아저씨가 앉아 쉬시는 더럽고 낡은 그 나무의자에 앉아서 퀘퀘한 쇳물 냄새 가득한 대장간을 지켜보고 앉아 있고는 했습니다. 대장간에는 풍개를 돌리던 아저씨가 점심을 드셨느지 입속으로 자꾸만 찍!찍!하는 소리를 내며 담배를 태우고 계십니다. 아저씨는  듣기 싫은 그  이상한 소리를 밥이나 막걸리나 무엇이든 드시고 나면  한참씩 그렇게 하셨습니다. 느닷없이 아저씨는 아버지를 물어 보십니다.

"꼬맹아 아부지 출근하셨냐?."

"네"

아저씨가 풍개를 돌릴 준비를 하십니다. 성일이하고 나는 알아서 두어걸음 뒤로 물러섭니다.

풍개를 돌리시면 불이 확!하고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더운 불의 열기가 순간 우리에게 날아오기 때문입니다. 붉디 붉은 쇳물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낫이나, 곡괭이, 호미, 칼의 모습을 한 쇠 덩어리로 바뀌어 집니다. 그러면 아저씨는 쾅!쾅! 망치질을 시작하십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검은 쇠 덩어리가 구정물같은 희부연 물 통에 담가지면 지지직! 하고 가라앉았던 통 속의 물이 위로 용솟음을 칩니다. 수없이  망치질을 하는  아저씨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 방울이 송글송글 맺힙니다. 아저씨 모습에 혼을 뺏기고  앉아 있는 내게 엄마는 어느새 내 뒤로 살금살금 다가오십니다.

"내가 누구게…"

나는 단박에 엄마라는 걸 알 수 있지만 일부러 모르는척 합니다.

"성일이 할머니, 용진언니야, 수만이…엄마! 엄마 맞지?."

라고 알아 맞힙니다. 엄마는 하!하! 웃으시다가는 나를 얼른 일으켜 세우십니다.

언제나 대장간 아저씨는 엄마가 몰래 내 등 뒤에 오신다는걸 아시면서도 한번도 알려 주시지 않으시고는 늘 재미있다고 우리 모녀를 보고 껄껄 웃으십니다.

"밥 먹으러 가야지?"

하며 엄마는 내 손을 잡으시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성일이 손을 잡아 주십니다. 엄마가 밥을 먹고 가라고 해도 성일이는  우리집 마당으로 난 개구멍으로 바람처럼 할머니에게로 달아나 버립니다

*풍개- 화로에 불을 일어나게 하는 것. 풀무라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