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보다 더 혹독하게 느꼈던 추위는 예감하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설마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은 더 깊게 우리를 떨게 만들듯이 믿었던 봄이었기에 그 추위는 더 강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며칠을 와들와들 떨다가 훈훈한 봄공기에 움츠렸던 어깨를 펴 본다. 그래서 황사는 차라리 견딜만 하다.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다. 늘 아기같아 마음이 놓이질 않는 아들이었다. 그랬는데 교복을 차려입고 나서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맴돈다. 으젓하다. 그래서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 아들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사랑해'하고 말해주었다. 사랑해라는 이 말이 이렇게 절실하게 내 입을 걸어나간 적이 있었던가. 아들은 웃고 돌아선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옛말이 하나도 낯설지 않다. 저렇게 불쑥불쑥 나이가 들어 청년의 모습으로 내 앞에 서 대문을 나서는 날도 멀지 않았겠지. 나이가 들어가는 내 얼굴이 슬프다가도 점점 남자가 되어가는 늠름한 아들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설레인다.이렇게 자식을 통하여 살아 온 지난 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가는 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자에게 자식이 없다면 거울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싶다. 늙으면 미우나 고우나 남편밖에 없다는 이웃의 말을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지만 그러나 옆에서 고운털 다 뽑히고 미운털만 듬성듬성 남아있는 나이 들어가는 늙은 그 남자보다 푸른 나무처럼 빛나게 내 삶의 순간순간이 모두 보석처럼 박혀있을 아들의 삶을 지켜보며 살아가는 일이 더 가슴설레지 않을까. 친구처럼 생을 마감하는 그 시간까지 함께 해 줄 사람은 남편이겠지만(?) 그러나 어쩐지 남편은 영영 완전한 내 편은 아닐 것 같다. 이는 나만의 별스러움일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소심한 성격이다. 그러나 곧고 반듯하다.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구별할 만큼 생각도 깊다. 그러나 어미가 너무 안으로만 키운탓인지 혼자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어서 걱정이다. 늘 책을 안고 사는 아들은 꿈이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교수였다.그랬는데 오늘 아침 가방을 열어보니 꿈이 달라져있었다. 자신의 일생을 도표로 그린 종이 한 장을 발견했는데 그 속에는 엉뚱하게도 검찰청장이 되어있다. 왜 갑자기 검찰청장이 되고 싶었을까? 아이는 별스러운 걸 유난히 싫어하는 편인데, 으시대는 것도 드러내는 것도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가끔 그것이 걱정이었다. 요즘은 자신을 자랑하며 드러내야 되는 시대이니 만큼 그것에 대해 민감하리 만큼 별스럽게 구는 아들이었기에 걱정이 되었었다. 그랬는데 뜬금없이 검찰청장이라니. 아이가 귀가 하는대로 한 번 물어봐야겠다.
꿈은 매번 바뀐다. 그래서 꿈이다. 그 꿈대로 살아 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인생은 너무나 다른 방향으로 돌진해버린다. 그래서 어미된 자로 아들이 어떤 꿈을 꾸든 성실한 꿈을 꿔주었으면 좋겠다. 편안하게 남들보다 더 편안하게 잘먹고 잘 살기위해 꾸는 꿈이 아니라, 어느 아침 일어나 보니 대궐같은 저택에 누워있는 옛날이야기같이 일확천금의 꿈이아니라 가지런한 하루, 어린 새싹이 여린 뿌리를 내려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듯이 때로는 눈보라도 때로는 폭풍우치는 무서운 밤도 견뎌 내어 줄기를 키워내고 뿌리를 깊이내려 흔들리지 않는 너그러운 나무같은 꿈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욕심을 아주 버린다면 그것이 어찌 인간이겠는가. 욕심을 갖되 나의 성실한 하루가 주는 당당한 욕심을 가져주었으면좋겠다는 거다.
아들과 난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강제적인 어미가 되지 않으려 한다.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으리라 믿기에 얼마나 많이 어미가 널 사랑하는지 인식시켜려 늘 애썼다. 그래서 아들이 아주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안다면 더불어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이 소중해 지는 것이리라 믿었기에 말이다. 아직 나는 과정에 있는 어미다. 나의 아들이 어떻게 자라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난 믿는다. 아들을 말이다. 내 입김과 내 눈물과 내 젖으로 키워져 세상에 나간 내 아들을 나는 마지막까지 믿고 사랑할 것이다. 그것이 어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