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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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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이야기


BY 캐슬 2004-03-11

 아버지를 만난 동생과 나는 높게 쌓인 나무가 가득 실린 리어카 뒤를 따라 걷습니다.

아버지가 앞에 계시는데도 내 뒤를 쫒아오는 어두움때문에 머리 뒤꼭지가 시렵도록 무섭습니다. 아버지는 높게 실린 나무때문에 보이지도 않고 아버지의 숨소리만 간간이 들립니다. 나는 무서움증을 잊으려 아버지를 자꾸 생각해 둡니다. '아버지가 앞에 계시다 우리 아버지가 저기 앞에 계시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견딜수 없을 만큼 무서우면 아버지를 급히 불러 봅니다.

 "아버지! 아버지!"

크게 앞을 향해 불러 봅니다.

"오냐! 아버지 여기 있다".

아버지의 음성을 그렇게 확인하고 아버지가 앞에 계시다고 나 자신에게 이르며 무서움을 밀어 내다보면 아버지는 갑자기 뒤를 향해 크게 소리치십니다.

"얘들아 올라 타거라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에선 리어카 뒤쪽 모서리에 동생과 제가 각각 한쪽씩 올라타야 균형이 잡히고 아버지는 수월하게 잘 내려가시는 겁니다. 재미있어 좋아하는 동생을 보며 저는 행여 아버지가 나의 무게로 하여 더 힘드실까봐 엉덩이를 조금 들고 숨을 멈추는 재주도 부려 봅니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왔어도 아버지는 '내리라'는 소리를 좀체 않으십니다.

나는 눈치껏 내렸지만 동생은 다 내려온줄 알면서도 태연하게 리어카 타기를 즐깁니다.

저만치 어둠속에 우리 집이 보이고 집 안에서 흘러 나오는 희미한 백열등 불 빛이 엄마만큼이나 반갑습니다.

"이제 오세요 "

앞 치마에 젖은 손을 훔치며 부엌 문을 여시던 엄마는 동생과 나를 단번에 양쪽 품에 안아주십니다.

"아가 춥지?. 어서 방에 들어가 아랫목에 발 넣고 있으렴. 엄마가 저녁 차려올께"

아버지는 엄마가 쇠죽 솥에 데운 따뜻한 물로 손발을 씻으시고 방으로 들어 서십니다.

"어~춥다".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눈길을 주시는 이는 세살박이 남동생입니다.

아기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깡총이는 걸음으로 아버지 품에 파고 듭니다. 아기를 아버지의 무릎위에 앉힌채 늦은 저녁상을 받은 아버지는 엄마에게 핀잔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추운데 애들은 왜 마중 보내누…어린 것들이 추워서 쓰나"

아버지의 걱정에 엄마는 웃기만 하십니다.

아버지의 걱정을 들으니 마치 우리가 대단한 일이나 한 것인냥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겁니다.

"엄마! 진~짜 추웠다 엄마. 쟤는 무섭다고 징징거렸다".

"내가 언제…"

동생과 나의 토닥거림에 아버지도 엄마도 웃기만 하실 뿐입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쉬는 날마다 해 모으셨던 나무들은 크고 단단한 덩어리로 묶어져서 차곡차곡 쌓여 봉양 장이 서는 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마당 높이 쌓였던 그 나무들도 봉양 장날 장꾼들이 우리 집 마당을 몇 번만 들락거리면 다 어디로인가 실려가 버리고는 했습니다. 장이 서는 곳이 집 앞이라 장날이면 나무를 판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아버지가 가지런하고 예쁘게 묶고 쌓아 놓은 나무들을 사가지고 가버려 마당은 금세 텅 비어 버리고는 했습니다.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나무하러 늘 박달재고개 어디쯤으로 가셨습니다. 동생과 나의 아버지 마중나가는 일이 간간이 있던 겨울은 그렇게 깊어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봉양'이라는 역에서 일하시고 계셨습니다. 우리 집에서 봉양역으로 갈려면 철 길로 한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보러 몇 번인가 역에 가 보았지만 아버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일하시던 봉양 역에서는 가끔 철 길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해에도 젊디 젊은 마을 처녀가 달려오는 기차에 치어 죽어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마을에 떠도는 소문은 죽은 처녀가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졌다고도 하고 철 길을 걷다가 기차를 미쳐 피하지 못 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만 저는 그  이유를 모릅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면 아버지는 가끔 집에 들어 오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집에 들어 오시는 밤이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동생과 저를 흔들어 깨우십니다. 실 눈을 뜨고도 반은 졸고 있는 동생과 저에게 아버지는 말씀하십니다.

"얘야 꼬맹아… 너희들 둘은 절대로 철 길로 걸어 다니면 절대 안된다. 알았지?. 아버지한테 올 생각은 아예 말아라 "

하며 몇 번이고 신신 당부를 하셨습니다. 나는 아주 가끔 아버지가 일하시는 봉양역을 몰래 찾아 갔었지만 아버지를 한 번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왜 여기까지 왔느냐' 고  야단이라도 맞을까봐?. 였는지 한 번도 '역에 갔더니 아버지가 안계시더라'고 아버지에게도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어느날인가  혼자 놀다가 심심해진 나는 타박타박 걷다보니 아버지가 계신 봉양역이 저만큼 보이는 곳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그때 꽤~액 세상을 온통 뒤흔들며 내게로 달려오는 기차가 산 모퉁이를 돌아 오고 있었습니다. 놀란 나는 철 길 아래로 굴렀습니다. 기차가 커다란 바람소리를 내지르고 지나간 후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엎디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엎디어 있는 그 곳이 하필 젊은 처녀가 죽었다고 소문난 그 어디쯤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르자 나는 자지러질듯 놀랐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달려간 대문간에서부터 엄마!를  소리쳐 불렀습니다. 극심한 공포에 파랗게 질린 나를 앞 집으로 마실가셨던 엄마는 한 걸음에 달려 오시고 눈물범벅이 된 나를 영문도 모르는채 꼭 안아주십니다.

"아가 너를 누가 때리든…우리 아가 팔딱이는 가슴 봐. 아이구 많이 놀란 모양이네 괜쟎다. 아가 이제 엄마가 여기 있으니…"

그때 한참을 폭 안겨본 엄마 앞 가슴에서는 우리 아기에게서 나던 젖냄새가 폴폴 났습니다

.

 

 겨울이 더 깊어지고 벼를 베어버린 집 앞 논에 얼음이 꽁꽁 어는 밤이면 아랫각단 웃각단 아이들이 모여 쥐불놀이를 했습니다. 강통에 숭숭 구멍을 뚫어 그속에 숯을 넣고 불이 꺼지지 않도록 돌리는 것이었는데 불이 꺼지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언제나 나는 먼 빛으로 그 아이들이 노는 걸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아직 어린 꼬마였던 나는 한 번도 그 아이들이 하는 놀이 속에 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나를 언제 보셨는지 아버지는 어느날 밤 내 손목을 잡아 끄셨습니다. 아이들 틈에 저를 세우시고는 언제 만드셨는지 쥐불놀이 깡통을 보여 주십니다. 소리없이 웃는 제게 아버지는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아마 내 것이 가장  좋은 깡통일게다. 이 깡통은 여기 아무도 가진 사람이 없는 미제 깡통이거든…여길 보렴 이 꼬부랑 글씨를…?"

하십니다. 정말 깡통위엔 알수 없는 글자들이 군인 아저씨 옷색갈 같은 바탕위로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만들어 오신 깡통에 동네 오빠에게서 불씨 하나를 얻어 제 깡통에 넣어 주십니다. 불이 붙지 않은 나무토막 하나도 함께 넣어 주십니다.

"이렇게 세게 돌리렴 그럼 불이 꺼지지 않고  이쪽 나무토막에 옮겨 붙는단다".

아버지는 팔을 크게 돌려 아주 큰 동그라미 모양을 그려 보이십니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크게 크게 돌려 보지만 깡통안의 불은 나에게만 오면 시름시름한 모양으로 죽어 가기만 했습니다. 오기로 몇 번인가 돌려 보던 나는 힘에 부치는 그 쥐불놀이 보다도 논 바닥에 스케이트 타는 일로 관심을 돌려 버립니다. 신기하게도 쥐불놀이 하는 아이들은 이쪽저쪽 논둑께로 몰려서 깡통을 돌리고 스케이트 타는 아이들은 논 가운데로 모여서 깡통에서 나오는 불빛을 의지하여 스케이트를 탑니다. 밤 깊은 줄 모르고 스케이트 타기에 신나하던 저에게  아버지는 낮은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얘야 들어가지 않으련 …아버지는 졸립단다"

아버지는 제가 타던 나무 스케이트에 송곳 칼 두개를 꽂아 어깨위에 지십니다.

아버지 손을 잡고 돌아오다 무심히 쳐다 본 밤 하늘엔 별들이 총총히 박혀 반짝이고 있습니다.

-3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