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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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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남편


BY 선물 2004-03-09

어제는 아들아이 학교에서 학급임원을 뽑는 날이었답니다.
이상하게 제 아이는 그런 임원자리에 통 관심이 없습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관심이 없다기보다 그런 자리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후보로 나가서 소견을 발표해야 하는 것이 대한 부담감이 크고 다음으로는 출마했다가 떨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도 꽤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엄마인 저는 남자아이인만큼 좀 더 대범하고 지도력있는 아이의 모습을 기대하게 됩니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아이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1학년 때부터 출마를 종용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1학년 때 일입니다.
선생님이 반장하고 싶은 사람 손 들라고 했더니 반 아이의 3분의 2가 번쩍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저희 아이도 엄마의 보이지 않는 압력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손을 들고 말았겠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후보가 너무 많으니 양보할 친구들은 양보를 하라고 하셨답니다.
그 순간 일착으로 포기했던 아이가 제 아이란 이야기를 선생님께 들었는데 그만큼 아이는 그런 자리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요.

사실 아이가 임원이 되면 엄마인 저도 어느정도는 학급일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제가 사정이 여의치 않은데도 아이가 출마하기를 바랬던 것은
꼭 당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닌 좀 더 적극적이고 자신감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지요.

그런데 그것도 엄마의 욕심이었던지 아이는 자꾸만 주춤거리면서 5학년 때까지 단 한 번도 출마를 하지 않았습니다.
전 못난 자식이라며 탐탁치 않게 생각했답니다.
덩치도 반에서 두, 세 번째인 아이는 사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꽤 많은 편입니다.
같이 놀자는 친구들의 전화로 집에 붙어 있기조차 어려울 정도이고 학교에서 발표도 잘하고 공부도 그런대로 잘 하는 편이지요.

작년에 중학생인 큰 아이 학교 입학식날, 선생님이 초등학교 때 임원을 한 학생들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반 아이의 반수가 더 넘는 아이들이 손을 들더군요.
그래서 이번에 6학년인 아들아이에게 그 말까지 하면서 떨어지는 것은 괜찮으니 한 번 앞에 나가 네 소견도 발표하고 그렇게 적극적이 되어 보라고 일렀답니다.
아이 아빠는 아이가 회장이 되면 그렇게 원하던 담배끊기를 해 주겠다는 참으로 어려운 약속까지 해 주더군요. 아마 임원이라면 기겁하는 아이라서 설마 당선까지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며 겁없이 한 약속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회유책으로도 마음을 바꾸지 않던 아이가 글쎄 아빠 담배 끊는다는 그 말에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는 그저께 임원에 출마하겠다는 말을 제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이 막상 출마하겠다는 아들아이의 말을 들으니 제가 덜컥 겁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일에 나설 생각도 없고, 형편도 못 되는 입장인 것이 마음에 걸려 뒷걸음질 치고 싶어하는 절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부회장에 출마하고 회장은 다른 아이에게 양보하란 말을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제 말 뜻을 잘 알아 들었지요.

어제 드디어 임원선출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소견 발표하러 가서 마음에 있는대로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친구의 말을 전해 들으니 제 아이가 저를 뽑아주면 아빠가 담배를 끊을 것이니 도와달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와의 약속대로 부회장에만 입후보했다고 합니다.
결과는 3명이 입후보했는데 제 아이가 26표 (40명 중)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몹시 기뻐하며 집으로 뛰어왔지요.
막상 그렇게 되고보니 회장에 못 나가게 한 것이 좀 미안해지더군요.
그리고 아이는 곧장 아빠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요... 아이가 울먹거리고 맙니다.
아빠가 회장이 아닌 부회장이라고 담배를 안 끊겠다며 아이를 약올린 까닭입니다.
비겁하게 담배 끊기 싫으면 그렇게 말할 것이지, 아이와의 약속을 무시해?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왜 아이를 약올리냐며 한 소리 했습니다.
남편이 그러네요.
"정말 담배 끊어야 하게 생겼네."
술은 못하고 담배만 죽으라고 좋아하던 남편인데 정말 골치 아프게 생겼지요.

아빠를 위해 그렇게 몸을 사리던 임원이 되어 준 아이가 고맙고 또 미안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아빠는 과연 아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요?
무척 궁금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