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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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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복이 많았던 울 아버지


BY 옛 이야기 2004-03-08

어느날 책 을 보다가 오래된 사진 하나에 내 눈길이 머물렀다.

흑백으로 된 사진이었는데 안경을 쓴 지적인 남성이 싱긋 웃고 있었다.

밑에 설명을 읽어보니 소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이었다.

화가의 생애를 적어놓은 내용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화가 이중섭의 생애가 아버지와 비슷한 점 이 참 많아서였다.

이북에서 대대로 알아주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무엇하나 부족한줄 모르고

대학까지 나온 아버지였다.

 

축구선수도 하였고,악기를 잘 다루고 그림도 잘 그렸으며, 무엇보다

입담이 좋아서 아버지가 얘기를 하면 지나가던 사람도 걸음을 멈추고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거기다가 얼굴까지 요즘 인기있는 배우 장동건

처럼 이목구비가 아주 수려하게 생겼다.

 

그런 아버지가 전쟁 때문에 모든걸 잃어 버리고 그야말로 빈 털털이로

중년의 삶을 살게 될줄을 누가 알았으랴....

몇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피난을 내려와서 무작정 정착을 한곳이 대구였다.

잠시만 피해 있으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 가겠거니 여기며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타향에서 아버지는 막막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년의 세월이 흐르자 더 이상 혼자 살기에는 모든게 불편해진

아버지는 아는분의 중매로 엄마를 만나 결혼을 하고 살게 되었다.

부잣집 귀한 맏아들로 살던 아버지가 경제적인 능력이 있을리 없었다.

할줄 아는 거라고는 가난한 집에서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재주들 뿐이었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고 많이 배웠기에 힘든 농사일을 할수도 없었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의 처지를 충분히 헤아리고 스스로 가정을 꾸려 나가는

역할을 맡기 시작 하였다. 결혼 할 당시에는 살 집이 없어서 어느 부잣집 과수원

행랑채에서 살림을 시작 했다.

엄마가 생전에 우스개 말 로 해주던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너그 아부지하고 결혼을 하고 시집을 오니 살림살이가 어땠는줄 아나?

냄비한개, 수저 한벌, 이불 한채 달랑있고, 이가 서말이더라.

참! 더 기가 막힌건 목침이 하나 있는데 글쎄 잘때는 베개로쓰고 밥 할때는

도마로 썼더라 그래갖고 우예 살았을꼬 참말로 희한 하더라.

 

그런 아버지가 처복은 있었는지 알뜰하고 손끝이 야물었던 엄마가 시집을 온 후

불과 일년만에 마당이 있는 아담한 초가집을 장만해서 살게 되었다.

그 집에서 아버지의 솜씨가 아낌없이 발휘가 되곤 하였다.

먼저 아버지는 마당을 손질해서 온갖 종류의 꽃들로 가득 채워 놓았다.

생전 말다툼을 안하던 부부가 꽃밭 때문에 티격태격 거리기도 하였다.

 

엄마가 쓰잘데기없는 꽃보다는 먹을수 있는 야채들을 심읍시다 하면

아버지는 그것만은 절대로 양보 못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봄부터 서리가 내리던 늦가을까지 우리집 마당에는

온갖 색,색깔의 꽃들이 매일같이 피고 지면서

요술을 부려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나 가다가 발길을 멈추고

담너머로 고개를 빼어들고 구경을 하느라

기웃거리기도하고, 어떤 할머니는 꽃나무를 얻어 가기도 하였다.

 

담장 둘레에는 빙둘러가며 해바라기를 심고,장독대 바로 옆에는

포도나무가 넝쿨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여름이면 나는 친구하고 포도나무

그늘 아래서 꽃이파리를 찧고, 파아란 포도알을 따다가 소꿉놀이를 하며 놀았다.

 

돈이 수중에 들어오면 어지간해서는 쓸줄 모르는 엄마와, 돈 만 있으면 여행 다니고

맛있는거 사먹는거 좋아하는 아버지가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는 돈 을 벌기 위해서 힘든 일도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하였다.

장사를 다니다가, 농사철이 되면 누구보다 먼저 일하러 다녔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아련한 기억 하나가 있다.

 

언젠가 한번은 엄마가 누구네 모를 심어 주러 새벽같이 나갔다. 일 하는 양에 따라

돈 을 더 주는 거라며, 아침도 안먹고 부리나케 몸빼바지 입고 수건 둘러 쓰고는

나간 엄마가 안됐는지, 아버지가 부엌에서 뚝딱 거리며 밥과 반찬을 만들더니

날더러 엄마한테 갖다 주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물이 쏟아지지 않게 얌전히 들고 가라고 하였다.

 

구불구불 이어진 논둑길을 따라 엄마를 소리쳐 부르며 한참을 가니 엎드려서 열심히

모를 심던 엄마가 흙묻은 손을 몸빼바지에 닦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와!! 뭐하러 왔노? ."

"아부지가 엄마 밥 갖다 주라캐서 안 왔나. 엄마 어서 밥묵어라~."

드디어 논둑으로 나온 엄마가 털썩 주저 앉더니 내가 들고온 보자기를 끌렀다.

 

아버지가 정성을 다해 지은 따끈한 보리밥과, 열무김치, 그리고 오이 냉국이 있었다.

엄마는 배가 무척 고팠는지 냉국에다 밥 을 말더니 김치하고 맛잇게 먹는 것이었다.

"너그 아부지 냉국도 잘 만들었네 근데 좀 짜다 아버지 한테는 맛있게

먹었다고만 전해래이."

아버지가 엄마를 위해 만들었던 오이 냉국....어린 내눈에는 너무나 생소하고

신기하게 여겨졌었다. 아버지가 반찬을 만드는걸 본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오이 냉국을 만들때마다 우리 아버지가 생각나서 목 이 매이곤 한다.